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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40년 앙숙 美·이란, 출구가 안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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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이슬람혁명이 도화선

2018년 핵합의 파기후 더 악화

미국과 이란은 '앙숙'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지난 40여 년간 끊임없이 갈등을 겪었다. 한때 이란이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핵심 우방이었던 적도 있었지만, 신정(神政) 일치를 내세운 이슬람 혁명으로 1979년 팔레비 왕조가 무너진 후 두 나라는 외교 관계까지 단절될 정도로 완전히 돌아섰다.

특히 1979년 이란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에서 외교관 등 미국인 63명이 인질로 잡혔던 사건은 지금의 양국 관계를 만든 발단이 됐다. 미국은 인질 구출 작전을 하다 미군 8명이 사망하는 실패를 겪었고, 이는 미국민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미국은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때에는 이슬람 원리주의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당시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편에 서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인 2015년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와 이란이 핵 합의를 맺으면서 해빙 분위기가 잠시 생기기도 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일방적으로 이를 파기하면서 양국 관계는 더 얼어붙었다. 특히 미국이 핵 합의 파기 후 이란에 대한 제재를 복원하면서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다.

미국이 달러 결제망에서 이란을 퇴출시키고 주력 수출품인 석유 등 거의 모든 제품 수출입을 막으면서 이란 경제는 빈사 상태로 빠져들었다. 경제난이 이어지면서 이란 내부 혼란은 커졌다. 지난해 11월 이란 정부가 휘발유 가격 인상을 발표하자 이에 항의하는 반(反)정부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반정부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여성 400여 명과 미성년자 17명을 포함해 약 1500명이 죽었다.

그러면서 정치·군사적 긴장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작년 5월 미국이 이란산 석유에 대해 예외 없이 전면 금수(禁輸) 조치를 내리자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경고했고, 이후 이란이 배후로 의심되는 공격이 이어졌다. 그해 5~6월에만 유조선 6척이 공격당했고, 9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시설 단지와 유전(油田)이 드론(무인기) 공격을 받았다. 미국은 6월에는 '신(神)의 대리인'으로 추앙받는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에 대한 제재까지 단행했고, 자국 드론이 이란 혁명수비대에 격추당하자 보복 공습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조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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