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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트럼프의 이란 2인자 제거 승인, 군 당국도 경악한 충동적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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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철군 소신과 모순… ‘임박한 공격’ 근거 제시 못해

대선 앞두고 ‘강한 이미지’ 보여주기 위해 결정 내린 듯
한국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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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2인자로 꼽히는 거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 제거를 승인한 것은 군 당국을 놀라게 할 정도로 전격적으로 이뤄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민에 대한 ‘임박한 공격’ 위협을 막기 위한 결정이었다는 게 트럼프 행정부의 설명이지만, 그 근거가 모호한데다 중동 지역의 철군을 희망해온 그의 평소 소신과도 모순돼 작전 배경을 두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란과의 전면전까지 야기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중대 결정이 대선을 앞두고 ‘강한 이미지’를 원한 트럼프 대통령의 충동적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로버트 오브라이언 국가안보보좌관 등은 지난 3일(현지시간) 솔레이마니를 제거한 후 일제히 그가 미국 외교관과 군인을 겨냥한 임박한 공격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설명을 내놨다. 하지만 솔레이마니가 모의한 공격 계획이 무엇인지 공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비공개 브리핑에서도 세부사항을 내놓지 않아 작전 근거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고 주요 언론들이 전했다.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이 확보한 솔레이마니와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간 통화에서 하메네이가 어떤 공격 계획도 승인하지 않았다며 임박한 공격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일부 참모들은 공격의 뚜렷한 증거 없이 공습하는 데 따른 법적 정당성을 우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NYT는 또 솔레이마니 제거는 트럼프 대통령이 선택하리라고 생각지 못한 극단적 옵션이어서 국방부 고위 참모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고 전했다. 미 국방 당국자들은 이란 선박이나 미사일 포대, 민병대 공습 쪽에 무게를 뒀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달 27일 미국 민간인 1명이 이라크에서 로켓포에 사망한 후 초기 대책회의 때는 솔레이마니 제거를 거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친(親)이란 시위대의 바그다드 주재 미 대사관 습격이 트럼프 대통령의 화를 돋우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란이 선을 넘었다고 느꼈고 이에 대응하지 않을 경우 약한 모습으로 비치는 것을 우려했다는 설명이다.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해 6월 미국의 드론 격추에 대한 반격으로 대이란 보복 공격을 승인했다가 막판에 철회한 것을 두고 언론이 트럼프 대통령을 약한 이미지로 보도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해석했다.

특히 이번 대사관 습격이 전임 오바마 정부의 외교 참사로 기록된 2012년 ‘벵가지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당시 무장 시위대가 ‘무슬림 모독’을 이유로 미국 영사관을 공격해 리비아 주재 미국대사 등 4명이 목숨을 잃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사건을 대선 후보 시절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공격하는 주요 소재로 삼았다. 트럼프 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 의원은 “벵가지는 그의 마음 속에 크게 드리워져 있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 때 정치적 적수를 공격하는 데 활용했던 사건과 유사한 일이 혹시라도 발생하면 재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곤경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을 중동분쟁의 수렁에 빠뜨릴 수 있는 중대 사안이 대통령의 심기에 따른 즉흥적 결정이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NYT는 “변덕스러운 방식으로 무력 사용을 결정한 또 하나의 사례”라며 “지난 3년간 이란,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등을 다루는 과정에서 전쟁과 평화에 대해 결과를 심각하게 고려하거나 주의 깊게 생각한 증거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WP는 “이번 조치는 트럼프의 충동적 접근법이 어느 정도로 혼란을 야기하는지를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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