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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단독]정부, 이란에 줄 750억 ‘ISD 패소금’...미국 제재 땜에 방법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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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가 지난달 이란 다야니 가문이 제기한 국가ㆍ투자자 소송(ISD)에서 패소한 뒤 패소 대금 750억원을 돌려줄 방법이 없어 고심하고 있다. 자칫 잘못 송금했다가 미국의 이란 제재에 유탄을 맞을 수 있어서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미국의 제재를 회피하고 이란과의 관계도 고려해 정부는 해외 송금 대신 배상금을 국내 투자로 돌리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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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6월 2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이란 최고지도자와 최고지도자실, 혁명수비대 장성 8명에게 경제적 제재를 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왼쪽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오른쪽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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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도 끝도 이란 제재가 걸림돌



미국과 이란 사이에 낀 정부의 사연이 이렇다. 이란의 다야니 가문은 2010년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를 시도했다. 그러나 같은 해 미국의 이란 제재 시행 등의 영향으로 다야니 측이 총 인수액을 낮추려 하자 한국 채권단은 이를 근거로 계약을 파기하고 계약금(578억원)도 돌려주지 않았다. 이에 다야니 가문은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 소송을 제기, 중재 재판을 거쳐 지난달 패소가 최종적으로 확정됐다. 그간 지연이자 200억원이 붙어 한국이 돌려줘야 할 돈은 750억원에 육박하게 됐다.

문제는 그새 돈을 돌려줄 방법이 마땅치 않아졌다는 점이다. 2018년 5월 미국은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탈퇴하고 같은 해 '이란 금융제재 규정(IFSR)'을 전면 복원했다. 이란 중앙은행 및 50개 은행ㆍ금융기관을 제재 대상으로 올리면서 외국 금융기관들이 미국의 금융기관을 거쳐 이란과 금융 거래를 해선 안 된다고 한 것이 핵심이다.



‘원포인트’ 이란제재 면제신청 했지만



외교부는 지난달 윤강현 경제외교조정관을 미국으로 파견해 다야니 건 등과 관련해 ‘원 포인트’ 제재 면제를 미국 정부에 요청했다. 돈을 돌려주더라도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 차원에서 문제가 없다는 보증을 받기 위해서였다. 외교부는 이와 더불어 지난해 5월부터 묶인 국내 시중은행들의 이란 중앙은행 원화결제 계좌 가운데 인도적 지원 등 특정 항목에 대한 제재도 면제해달라는 요청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한 달 새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군사적 충돌까지 확대됐다. 이 때문에 '미 재무부의 보증'은 어려울 것이라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OFAC 면제를 기대하는 건 최후 수단”이라는 말이 나온다. 미 정부는 대북제재 관련 특별면제를 한 적은 있어도 이란과 관련해선 보다 강경한 입장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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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신속대응부대(IRF)가 지난 1일(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 브래그 기지에서 C-17 수송기에 탑승하고 있다. 미군은 이라크 바그다드 주재 대사관 습격 사태 대응을 위해 제82 공정사단 소속 보병대대 등 병력 750명을 급파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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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우회로 찾기



이란 다야니 가문은 미국의 직접 제재명단에 올라있진 않는다. 직접 제재보다 무서운 건 금융기관의 ‘세컨더리 보이콧’이다. 이란 제재상 '미국의 금융기관을 거치지 말라'는 얘기는 이란과 달러 베이스 거래를 못 한다는 말이다. 한국은 외환 거래시 원화를 이란 리얄화로 송금하기 위해선 ‘원화→달러→리얄화’ 등으로 달러를 거쳐서 송금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미국 은행이나 금융기관을 거쳐야 한다.

미국 금융기관을 거치는 과정에서 다야니 측이 받은 금액의 일부라도 나중에 이란 본국으로 흘러 들어갈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 국내 시중은행들 입장에선 까딱했다간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2005년 방코델타아시아의 경우처럼 은행 문을 닫는 경우까지 갈 수 있다. 정부는 유일하게 달러를 거치지 않고 직거래 환전이 가능한 ‘원ㆍ위안화 직거래 시장’도 검토했지만, 활성화가 거의 안 돼 있어 배제했다고 한다.



한국, ‘이란제재 예외국가’ 작년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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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 이란 제재 주요내용.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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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미국이 이란 제재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재무부에 6개월간 예외국가 적용을 받은 적이 있다. 달러 거래가 막히면서 이란에 원유ㆍ컨센테이트 수입을 의존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경제적으로 큰 타격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과 중국 등 8개 국가가 한시적 이란 제재 예외국가를 적용받았다.

여기서 핵심적인 것이 ‘원화결제 계좌’였다. 한국 시중은행에 이란 중앙은행 명의의 계좌를 트고, 석유 수입대금을 이란으로 송금하는 대신 한국 기업의 스마트폰ㆍ가전 등 수출 대금을 상쇄하는 방식으로 원화 결제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작년 5월부터 미 재무부는 이마저도 허용하지 않았다. 미국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이 “이란의 원유 수입을 제로(0)로 만들겠다”라고 공언하는 등 이란에 대한 압박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미국은 아예 작년 11월부터 이란 중앙은행을 직접 제재 명단에 올리기도 했다.



곤란한 한국…이란 돈 최대한 국내서 소화 유도



고육지책으로 한국은 다야니 측에 원화 계좌를 개설해 자회사들이 이를 국내에서 소화하는 방식을 제안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란 돈이 한국 밖으로 안 나가는 게 가장 안전한데, 그렇다고 국제 중재재판의 결정을 무한정 미룰 수도 없어서다. 정부 당국자는 “한국으로서는 미국도 중요하지만, 이란과의 관계도 중요하다”면서 “다야니 측에 (배상금을) 최대한 빨리 돌려줘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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