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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이란 “피의 보복” 트럼프 “52곳 반격”… ‘화약고’ 중동 전운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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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대통령은 유족 만나 복수 약속 / 이슬람 무장단체, 케냐 美기지 공격 / 美 “공격 땐 최신무기 보낼 것” 엄포

세계일보

‘세계의 화약고’ 중동에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미군이 드론 공습으로 이란의 군부실세 거셈 솔레이마니를 제거하자 이란은 즉각 ‘피의 보복’을 다짐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란 52곳 공격’을 언급하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이란의 대미 보복 위협과 관련해 트윗을 통해 “내가 엄중하게 조언했는데도 (그들이) 다시 공격한다면 우리는 그들이 이제껏 경험해본 적 없는 강력한 공격을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란이 미국 기지나 미국인을 공격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아름다운 최신 장비’를 주저 없이 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에도 “이란은 오랜 기간 골칫거리였다”며 “이란의 공격에 대비해 미국은 이란의 52곳을 이미 공격 목표로 정해놨다”고 말했다. 52곳의 목표물은 1979년 이란혁명 이후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에 억류됐던 미국인 수를 상징한다.

세계일보

‘붉은 깃발’ 올린 이란… 美는 중동에 3500명 추가 파병 4일(현지시간) 이란 중북부 종교도시 곰의 잠카런 모스크(이슬람사원) 돔 정상에 ‘피의 복수’를 상징하는 붉은 깃발이 내걸리고 있는 모습. 잠카런 모스크에 붉은 깃발이 게양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다(왼쪽 사진). 이날 미국 제82 공수사단 제1여단 전투팀 소속 장병들이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 브래그 기지에서 중부사령부 관할 작전지역으로 향하는 항공기로 걸어가고 있다. 이란 국영TV 캡처, 포트 브래그=AP연합뉴스


이란은 즉각 보복을 다짐했고, 이라크 내 미군기지 및 미국 시설에 대한 공격을 예고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이날 솔레이마니 유족을 만나 복수를 약속했다. 테헤란 남쪽 시아파 성지인 곰 지역의 잠카런 이슬람사원에는 ‘피의 복수’를 상징하는 붉은 깃발이 내걸렸다.

이라크에서는 미 대사관이 위치한 바그다드 그린존, 발라드 미 공군기지 등을 노린 로켓 공격이 잇따라 발생해 5명이 다쳤으나 사망자는 없다고 CNN이 전날 보도했다. 또 극단주의 이슬람 무장단체인 알샤바브 요원으로 의심되는 괴한들이 미군과 케냐군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케냐 라무의 군사기지를 공격했다. AP통신은 케냐 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최소 4명의 무장괴한이 사살됐다”고 전했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고향인 이란 케르만주(州) 담당 혁명수비대 골라말리 아부함제 사령관은 “호르무즈 해협, 오만해, 페르시아만(걸프 해역)을 지나는 모든 미국 선박은 우리가 타격할 수 있는 사정권 안이다”라고 경고했다. 이어 ”중동과 서아시아에 주둔한 미군 기지 35곳도 우리가 (미사일로) 쏠 수 있는 사정권 안에 있다”며 미군 기지가 이란 보복공격의 우선순위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라크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도 이라크 군경에 “5일 오후 5시(한국시간 오후 11시)까지 미군 기지에서 최소 1000m 이상 떨어지라”며 이라크 내 미군 기지에 대한 공격을 예고했다.

이란이 보복을 예고하면서 미 국방부는 3500명의 병력을 중동에 추가 배치한다. 미군 당국자는 AFP통신에 “미국인과 미국 시설에 대한 위협 수준 증가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적절하고 예방적인 조치로서 (추가 병력이) 쿠웨이트에 배치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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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트럼프, 연말 휴가 중 즉흥적 작전 명령 … 참모진 ‘화들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제거 명령을 전격적으로 내림으로써 미국과 이란이 일촉즉발의 충돌 위기로 치닫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겨울 백악관’으로 불리는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연말 휴가를 보내다가 솔레이마니 제거 명령을 내렸다. 미 군당국은 특정 국가나 인물을 겨냥한 다양한 군사작전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만, 대체로 대통령이 전쟁이나 무력충돌을 촉발하는 군사작전을 승인하지 않을 것으로 여긴다고 뉴욕타임스(NYT)가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이 다른 주권국가의 장성 지휘관을 죽이는 것은 전시가 아니고서는 법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이란과의 긴장 고조나 중동 내 불안정 확산 등 심각한 후폭풍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솔레이마니 이전까지 미국이 외국의 군부 고위 인사를 제거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 일본 연합함대 사령장관을 처단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러나 미국대사관이 습격당하는 모습을 TV로 보고 격노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솔레이마니 제거를 선택했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이란에 대한 보복 폭격을 몇 분 전에 취소하는 등 군사작전을 기피하는 성향을 보였기에 솔레이마니 제거를 선택한 2일 밤 결정에 참모진도 깜짝 놀랐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사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란 선박이나 미사일 포대, 이라크 민병대에 대한 공습 등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솔레이마니 사령관 제거는 다른 대책이 더 합리적이고 타당하게 보이도록 할 의도로 제시된 ‘비현실적’ 방안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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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군부 실세인 거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이란혁명수비대 정예군) 사령관이 지난해 10월 테헤란에서 인터뷰하는 모습. 솔레이마니는 3일(현지시간)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미군의 공습으로 사망했다. AFP=연합뉴스


특히 솔레이마니는 9·11테러 사건의 주범 오사마 빈 라덴 등과는 차원이 다르다. 빈 라덴은 테러 단체의 최고 지도자였으나 솔레이마니는 이란이라는 특정 국가의 군 책임자이다. 이 때문에 솔레이마니 제거는 이란에 대한 ‘선전포고’로 간주될 수 있다. 이란이 즉각 보복공격을 다짐했고, 미국도 이란의 공격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솔레이마니는 지난 2003년 이후 이란의 미국인 공격에 개입해온 인물이라는 게 미국 측 주장이다.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정부도 그를 제거하는 계획을 세웠으나 이란과의 무력충돌 등 후폭풍을 우려해 이를 결행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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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2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세번째)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 두번째),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네번째) 등이 백악관 상황실에서 이슬람국가(IS) 수장인 알바그다디를 겨냥한 미군의 특별작전 수행을 지켜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트럼프 대통령의 솔레이마니 제거 명령은 그의 즉흥적인 정책 결정 스타일뿐 아니라 탄핵 정국과 대통령 선거전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탄핵 정국과 재선 선거운동에서 대통령으로서 힘을 과시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그것이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솔레이마니 제거는 북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는 대화를, 이란과는 대결을 선택했으나 대북 협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 언제든 북한에도 이란식 접근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정재영·국기연 특파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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