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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이란, 핵합의마저 걷어찼다···중동 곳곳 미군기지 타격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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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군부 실세 거셈 솔레이마니가 미국의 공습으로 사망한 이후 보복을 경고한 이란이 5일(현지시간)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불이행을 선언했다. 핵합의에서 정한 동결·제한 규정을 더 이상 지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이란이 핵합의마저 사실상 탈퇴 의사를 밝히면서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5일 알카에다 연계 조직인 알샤바브는 케냐 미군기지를 공격했다. 이 습격으로 미국인 3명이 사망했다. 수니파인 알카에다는 시아파인 이란과 적대 관계에 있다. 미국과 이란 간의 갈등을 틈타 중동전역에서 세력 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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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이란 핵기술의 날을 맞아 하산 로하니(오른쪽) 이란 대통령이 핵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이란은 더 이상 2015 년 맺은 핵합의의 어떤 제한도 지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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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란이 미국과의 전면전은 피하면서 중동 지역에서 친이란 단체를 앞세운 ‘대리전(proxy warfare)’을 벌여 미국을 공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중동 전역이 대혼란에 휩싸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특훈교수는 “솔레이마니 사망 사건은 중동 전역의 반미 집단을 결속시키거나 테러단체가 활개를 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 “IS(이슬람국가)를 괴멸한 이후 한시름 놓았던 중동 정세가 다시 격랑 속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진단했다.



“미온적인 유럽에도 경고, 성난 이란 민심 잠재우기”



이란 정부는 5일 성명을 통해 “이란은 핵합의에서 정한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 수량 제한을 더 이상 지키지 않겠다”면서 “이는 곧 우라늄 농축 능력과 농도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이란은 우라늄을 5% 농도까지 농축한 상태다.

2015년 7월 이란은 미국·영국·프랑스·독일·중국·러시아 등 6개국과 핵합의를 타결했다. 핵합의는 이란이 핵 개발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대신 이란에 가해졌던 각종 제재 조치를 해제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미국은 이 핵합의에서 탈퇴하면서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재가동했다. 이란 정부는 이번 불이행 의사를 밝히면서도 “미국이 이란에 대한 경제·금융 제재를 철회한다면 핵합의로 복귀하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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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레이마니의 시신이 도착한 이란에서 그를 추모하려는 시민 수 천명이 모였다. [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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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교수는 “이란의 이번 결정은 솔레이마니를 살해한 미국은 물론 이번 사태에서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유럽에 대한 경고”라고 진단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이란으로서는 더 이상 비굴한 핵합의를 따르지 않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분노한 이란 민심을 잠재우려는 정치적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정상률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미국이 제재를 철회한다면’이란 전제 조건을 단 것으로 볼 때 핵합의를 미국과의 협상 카드로 이용하려는 전략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스 크리스텐센 미국과학자연맹 핵정보 프로젝트 책임자는 미 CNN과의 인터뷰에서 “아직 이란이 핵합의를 탈퇴하거나 핵무기를 만드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면서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과 다른 제재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친이란 단체 앞세워 제3국서 미국 공격하는 ‘대리전’ 가능성 커



이란의 핵합의 불이행으로 전쟁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지만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대신 중동 곳곳에서 이란과 미국 간에 ‘대리전(proxy warfare)’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란이 전면에 나서지 않은 채 친이란 단체를 앞세워 이라크 등의 미군 시설을 공격하는 것이다.

또 이란의 대리군이 사우디아라비아 등 미국의 우방국에 있는 미군 시설을 공격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솔레이마니를 이라크에서 살해하면서 이란에도 제3국에서 미국을 공격할 명분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톰 베켓 국제전략연구소 소장은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20년 동안 솔레이마니는 중동에서 친이란 무장조직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이란은 이런 네트워크를 통한 보복을 가장 먼저 염두에 둘 것”이라고 예상했다.

나아가 반미 정서로 결집한 시아파 세력(시리아·레바논 등)이 미국을 위협할 수 있다. 호세인 데흐건 이란 최고지도자 군사 수석보좌관은 5일 미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란의 대응은 분명 군사적일 것”이라면서 “미군 군사기지가 대상”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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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이란 민병대인 카다이브 헤즈볼라 지지자들이 5일 레바논(시아파)에서 솔레이마니의 사진을 들고 추모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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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미국과 이란의 충돌 여파가 중동 전역으로 확산할 것을 우려한다. 5일 알케에다와 관련된 알샤바브가 케냐 미군기지를 공격한 사건이 시작이 될 수 있다. 이희수 교수는 “솔레이마니는 미국과 함께 IS를 소탕하는 데 선봉에 섰던 인물이다. 이런 인물을 미국이 ‘테러리스트’라고 칭하면서 제거한 것을 보면서 중동사회는 혼란스럽다”면서 “이번 일이 명분이 돼 테러 단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정상률 교수는 “이란과 미국이 싸우는 동안 견제 세력이 사라진 틈을 타 중동 내 세력 다툼과 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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