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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줌인] 트럼프의 미국이 이란과 관계 회복 어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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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취임 이후 이스라엘·사우디 축으로 하는 ‘투트랙’ 전략 복귀
사우디, 2009년~2018년 15조7000억원어치 美 무기 수입...세계 1위
사우디와 이란은 전통의 '앙숙’...수천년 이어온 수니·시아 갈등이 뿌리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투자의 귀재 조지 소로스,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 미국 최대 호황기를 이끈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영화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이들에게는 미국 주류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 온 인물이라는 것 말고도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유대인이라는 점이다. 미국 주류 사회에서 유대계 인맥은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해 왔다. '세계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는 연준 의장의 경우 제롬 파월 현 의장 취임 전까지 40년간 유대인이 독식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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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미국을 방문한 무함마드 빈살만(왼쪽)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사우디의 미국산 무기 구매 실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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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자본의 투기성 거래를 제한하는 '볼커룰'로 유명한 폴 볼커(1979~1987년) 전 의장부터, 무려 19년간 재임하며 미국의 최대 호황기를 이끈 앨런 그린스펀(1987~2006년) 전 의장, 금융위기 해결사로 활약한 벤 버냉키(2006~2014년) 전 의장까지 모두 유대인이다.

주류사회의 막강한 '유대인 파워'는 미국의 중동 외교의 양대 축인 이스라엘과의 특수한 동맹 관계의 중요한 근간이기도 하다. 또 다른 한 축은 석유 자원의 원활한 수급이라는 목적을 기반으로 유지돼 온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동맹 관계다.

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동경제담당 연구위원은 ‘이코노미조선’ 인터뷰에서 "이스라엘 입장에서도 이란의 핵무기 보유가 안보에 큰 위협이 되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의 공동 이해관계가 성립된다. 이스라엘과 사우디가 적대관계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미국을 구심점으로 한 동맹관계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미국의 셰일 에너지 혁명으로 국제 유가가 하락하면서 미국과 사우디 관계에 균열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이 셰일원유 생산을 늘리면서 사우디가 재정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셰일혁명으로 '에너지 독립국'이 된 미국이 에너지 안보를 위해 중동에 크게 의존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도 사우디로선 악재일 수밖에 없었다.

불안해진 사우디는 동맹 관계 강화를 위해 미국산 무기 수입을 대폭 늘렸다. 국방기술품질원이 최근 발간한 '2019 세계방산시장 연감'에 따르면 미국은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총 931억달러(약 109조3000억원)의 무기를 다른 나라에 팔았다.

사우디아라비아(134억7000만달러)가 미국산 무기를 가장 많이 구매했고, 호주(77억6900만달러), 아랍에미리트(69억2300만달러), 한국(62억7900만 달러)이 뒤를 이었다. 이에 따라 록히드마틴과 보잉, 레이시온, 제너럴 다이내믹스 등 미국의 대형 방산 업체들은 ‘사우디 특수’를 톡톡히 누려 왔다.

2018년 3월 무려 3주 동안 미국을 방문한 사우디의 차기 권력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미국으로부터 대전차 미사일 6700기 등 10억달러 규모의 무기 수출 계약을 체결해 트럼프 대통령을 흡족하게 했다. 그러면서 미국 주요 언론과 인터뷰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 우려를 부각시켰다.

사우디와 이란은 중동지역 최대 '앙숙'이다. 두 나라의 대립은 수천년을 이어 온 종파 다툼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바로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이다. 사우디는 이슬람 교도 중 80% 이상을 차지하는 주류 수니파의 종주국이다. 이란은 200여개가 넘는 이슬람 종파 중 유일하게 수니파에 대적할 수 있는 시아파(20% 미만)의 맹주다.

◇ ‘탈(脫)석유’ 위한 사우디의 대대적인 변화 노력도 미국에 매력요인
수니파와 시아파는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계승자를 누구로 볼 것이냐에 따라 나뉜다. 수니파는 이슬람 공동체 내에서 능력 있는 자를 칼리프(무함마드 계승자)로 지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시아파는 무함마드 혈통 중에서 칼리프를 내야 하며, 그중에서도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를 계승자로 여긴다. 알리는 쿠데타세력에게 암살당했고, 그의 두 아들도 사망해 무함마드 혈통은 단절됐다. 그러나 시아파는 알리가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며 수니파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각 종파는 사우디와 이란을 중심으로 연합군을 형성, 중동 곳곳에서 분쟁을 벌이고 있다. 올해로 8년째에 접어든 시리아 내전이 대표적이다. 시리아 내전은 독재정권 저항 움직임에서 출발했지만, 이란이 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벨트 건설을 위해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면서 종파 갈등으로 심화됐다. 사우디 등 수니파도 가세했다. 시리아에서 주도권을 잡는 쪽이 향후 중동 세력 구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이스라엘과 사우디를 두 축으로 하는 전통적인 ‘투트랙’ 전략으로 복귀를 천명해 왔다. 2018년 3월 렉스 틸러슨 당시 국무장관을 경질한 것은 이 같은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틸러슨 경질 결정 이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는 이란과의 거래 내용에 대해 끔찍하다고 생각했는데, 틸러슨은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해 이란 핵협정 폐기에 관한 입장 차이가 경질의 중요한 원인이었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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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가운데)이 29일(현지시간)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왼쪽)과 마크 밀리 합참의장과 함께 이란 지원 시아파 민병대 군사시설에 대한 미군 전투기 공습 사실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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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러슨 후임으로 마이크 폼페이오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임명한 것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투트랙 전략 회귀 의지는 더 뚜렷해진다. 친(親)이스라엘 성향의 폼페이오는 2015년 이스라엘을 방문해 "(이란의) 핵무기 보유 억제를 위한 이스라엘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이와 반대로 이란에 대해서는 "핵시설에 대한 군사 공격이 외교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하는 등 이란에 적대적 발언을 해왔다.

중동에서 이란과 거리를 둔다는 것은 곧 이란의 역내 최대 경쟁자인 사우디와의 관계 개선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도 이란의 핵무기 보유가 안보에 큰 위협이 되기 때문에 이번 인사를 통해 미국을 구심점으로 한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의 공동 이해관계가 확고해진 셈이다.

트럼프가 이란 핵협정을 폐기하면서까지 사우디 쪽으로 급속히 돌아선 것은 경제력과 원유 매장량 등 거의 모든 경제지표에서 앞선 사우디 손을 들어주는 것이 득실 계산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사우디가 2016년 4월 국가 혁신 계획인 ‘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 ‘탈(脫)석유’를 위한 대대적인 변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매력 요인이다. 약 2조달러 규모의 국부펀드를 조성해 도시 개발, 관광, 군수업 등 새로운 성장 산업을 육성한다는 계획이어서 미국도 투자 기회가 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용성 조선비즈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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