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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미국이 이란을 하나로 만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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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현지 르포…“우리 모두가 솔레이마니다”



경향신문

고향 추모행렬 중 ‘압사 사고’ 40명 사망 7일 가셈 솔레이마니 전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의 고향인 이란 남동부 케르만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고인의 운구차량 주변에 추모객들이 운집해 있다. 이날 갑자기 몰려든 추모 인파로 40명이 압사하고 213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장례위원회는 “불행한 사고가 일어나 장례식을 중단하고 안장식 일정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케르만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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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6일 오전 6시쯤 아직 어둠이 짙게 깔렸지만 테헤란 대학교 부근 엥겔랍 광장에 인파가 몰리기 시작했다. 이날 오전 8시 이곳에서 열리는 가셈 솔레이마니 전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시민들의 손에는 이란 국기와 솔레이마니 사진이 들려 있었다. 대형 붉은 깃발과 노랑 깃발이 휘날렸다. 붉은 깃발은 복수를 상징하고 노랑 깃발은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PMF)와 연대를 의미하는 뜻이라고 한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비롯한 하산 로하니 대통령, 사법부 수장 에브라힘 라이시, 알리 라리자니 국회의장 등 이란 고위층 대부분도 장례식에 참석했다. 하메네이는 추모기도를 하면서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고, 엥겔랍 광장은 눈물바다로 변했다. 이란의 최고권력자가 공개 석상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추모행렬에는 수백만 인파가 몰려 거리 교통이 마비됐다. 이란 국영방송은 “이렇게 테헤란에 사람이 많이 모인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시민들은 ‘솔레이마니들’이라는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추모행렬을 따랐다. “우리 모두가 솔레이마니”라면서 그의 죽음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진 것이다. 시민들은 “마르그 발르 움메리카”(미국에 죽음을), “엔테검, 엔테검”(복수하라, 복수하라) 등 구호를 외쳤다.

솔레이마니의 고향인 이란 남동부 케르만에서도 7일 수십만명이 참석한 가운데 장례식이 열렸다. 추모행렬 중 압사 사고가 발생해 40명이 죽고 213명이 다쳤다. 관을 실은 차량으로 접근하려는 추모객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사고가 났다.

이란 시아파에 순교자 각별

내부 경제·정치 혼란 덮고

대미 강경 ‘복수’ 촉매제로

“13개 보복 시나리오 점검”


알리 샴카니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의장은 이날 “이란은 미국에 보복할 13개의 시나리오를 점검하고 있다. 가장 약한 시나리오조차 미국인에게 역사적인 악몽이 될 것”이라고 했다. 알라메 타바타바이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쇼자 아흐마드반드는 “서방세계는 이란의 문화를 모른다”면서 “이란과 시아파에서는 순교자의 의미가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미국은 한낱 테러리스트를 제거했다고 주장하지만, 솔레이마니 사망은 이란 국민들에게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시아파 이슬람이 순교를 중시하게 된 것은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함마드의 손자인 이맘 후세인의 죽음과 연관됐다. 680년 10월10일(무하람 10일) 이라크 카르발라에서 우마이야 왕조 칼리프에 저항하다가 전사했다. 이맘 후세인은 시아파 이슬람 역사를 관통하는 ‘분노와 저항’의 상징적 인물이 됐으며, 시아파 이슬람들은 그를 지키지 못한 자책을 종교적 다짐으로 승화한다. 그가 순교한 날을 기리는 ‘아슈라’는 시아파 이슬람 최대 종교행사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깔고 있는 시아파 이슬람들로선 미국에 맞서다 사망한 솔레이마니 죽음을 순교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솔레이마니는 이란 군부에서 매우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는 ‘그림자 사령관’이라 불리며 지난 20여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이라크·시리아·예멘 등지에서 이란의 중동 내 군사작전을 지휘하면서 이란 군부의 실세로 등장했으며, 수많은 승전과 전장에서의 담대한 행동으로 이란에서는 영웅 대접을 받고 있었다. 지난해 3월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그에게 이란 최고의 군사 명예 훈장인 줄피카르(제1대 이맘 알리의 검)를 수여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휘발유값 인상에 분노한 이란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는 데 솔레이마니가 개입했다고 알려지면서 명성에 흠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의 암살은 흔들리던 그의 명성을 일순간에 회복하게 했다. 한 시민은 “솔레이마니 사령관은 이제 ‘21세기 이맘 후세인’이 됐다”고 했다. 테헤란대 정치학과 교수 다부드 페이라히는 “미국이 그를 전설로 만들었다”고 했다.

중동국가 ‘반미감정’ 커져

미, 중동정책 위기 맞을 듯


경향신문

솔레이마니의 죽음은 최근 혼란에 빠져 있던 이란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를 하나로 결집시키는 계기도 됐다. 미국의 대이란 경제 제재가 복원되면서 이란 화폐 리알화의 가치가 크게 떨어지고 이란 경제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다. 경제난 등으로 이란 국민들 사이에는 정부와 대미 강경책을 펴는 보수파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솔레이마니의 죽음이 내부 분열을 덮는 촉매제가 된 것이다. 테헤란대 정치학과 교수 자한기르 모이니는 “미국이 이란을 하나로 만들어 주었다”고 했다.

이번 사건은 이라크 및 여타 중동 국가들의 반미 감정도 증가시켰다. 이라크 의회는 지난 5일 개최된 긴급회의에서 미군 철수 결의안을 가결했다. 이라크는 지정학적으로 중동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로, 이라크의 미군 주둔 공군기지는 중동 내 미국의 군사전략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라크가 미군에 떠나라고 한 것이다. 터키와 시리아도 이번 공습을 비난했으며, 미국의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조차도 미국이 군사행동을 자제하고 중동 내 긴장을 완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강한 지도자상’을 국내 지지층에 과시했을지 모르지만, 이번 암살 사건으로 미국의 대중동 정책은 커다란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테헤란|유달승 한국외대 교수 (이란 알라메 타바타 바이대 교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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