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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이란 석유시설 파괴될 것”… 美 예고대로 맞보복땐 전면전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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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넘겨받은 트럼프 선택은]

공습 5시간 만에 “모든 것 괜찮다” 즉각 반격 자제하고 신중 접근

측근 “3곳서 조만간 화염” 엄포… 실제 보복땐 이란도 재공격 공산
한국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12월 이라크의 알 아사드 공군 기지를 방문한 모습. 이란은 8일 미국의 이란 군부 실세 제거에 대한 보복으로 이 기지를 로켓포로 공격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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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8일 이라크 내 미군기지 2곳에 대한 보복 공격에 나서면서 공은 다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로 넘어왔다. 이란이 보복해올 경우 신속하고 불균형적인 방식으로 반격할 것이라고 예고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 군사행동으로 응수한다면 ‘행동 대 행동’의 상호 보복전이 꼬리를 물면서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즉각적인 대응을 삼가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이란의 공격 후 5시간여 뒤인 7일(현지시간) 밤 트위터에 “모든 것은 괜찮다”며 “사상자와 피해에 대한 평가작업이 진행중”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8일 오전 성명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는 매우 좋다”면서 “우리는 전 세계 그 어디에서도 단연코 가장 강력하고 잘 갖춰진 군을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군이 이날 즉각적인 반격에 나서지 않은 점으로 미뤄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일단 피해 상황을 평가하고 주변의 의견을 들으며 여러 대응 카드를 숙고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이 예고대로 맞보복 타격에 나설 경우 일차 타깃은 이란의 주요 석유시설이 될 것으로 보인다. 친(親)트럼프 매체 폭스뉴스의 간판 진행자인 숀 해너티는 이날 방송에서 “이란 내 세 곳의 정유시설에서 조만간 화염이 치솟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해너티의 프로그램에 출연한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도 이란의 공격을 ‘전쟁 행위’라고 비난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헌법 2조에 따라 대응할 권한을 갖고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트윗에서 이란 석유시설 파괴를 주장했던 그는 이날도 “이란이 물러서지 않으면 석유산업에서 손을 떼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레이엄 의원과 해너티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주요 사안을 조언하는 최측근들로 꼽힌다. 이란 석유시설 파괴 주장을 단순한 엄포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그레이엄 의원은 이란의 보복 직후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통화하기도 했다. 그는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은 채 “며칠 내에 알게 될 것이다”고만 말했다.

미국이 실제로 이란의 석유시설을 타격하면 이란도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미 동맹국들의 정유시설 등을 공격하며 맞대응할 공산이 크다. 이란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서도 ‘눈에는 눈’ 식으로 비례적 보복 대응을 다짐해왔다. 이란은 중동의 핵심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해협 봉쇄에도 나서 전 세계 석유 공급망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도 있다.

관건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 같은 확전 후폭퐁을 감내할 수 있느냐다. 상호 보복전이 꼬리를 물면 원유 가격이 치솟고 증시가 추락하면서 재선가도에 엄청난 부담이 될 수 있다. 더군다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일으킨 이라크전쟁을 비난하며 중동지역에서 미군 철수를 주장해온 그의 평소 소신과도 배치된다. 친트럼프 매체들은 지상군 투입 없이 미군의 압도적 군사력으로 단기간에 이란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상호 보복전이 꼬리를 물면 점점 더 중동 전쟁의 수렁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당장의 반격 대신 최후통첩성 경고로 냉각기를 가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단은 이란의 공격에서 미군 피해자가 없는 것으로 알려진 점을 명분으로 삼을 수 있다. 반면 이란의 보복 공격에 꼬리를 내리는 모양새가 대선에서 ‘강한 이미지’를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겐 다른 의미에서 악재가 될 수 있다. CNBC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의 유불리를 판단해 향후 대이란 정책을 결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란과의 전면전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미국의 대응 방향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는 비판도 쏟아진다. 이란의 보복이 뻔한데도 큰 판의 중동 전략 없이 이란의 2인자인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 제거 작전을 시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뉴욕타임스(NYT)는 “국방부조차 이라크에서 철군하는지 증원하는지를 모르는 상황에서 다른 나라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전략에 혼란을 느끼는 것을 탓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워싱턴포스트(WP)도 “혼란과 모순 속에서 백악관이 허우적대고 있다”고 비난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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