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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모사데크 축출’로 시작…美·이란, 반세기 넘는 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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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이란 ‘뿌리 깊은 갈등’ / 이란, 미국대사관 444일간 점거 / 北과 함께 ‘악의 축’ 지목되기도

세계일보

전면전 위기로 치닫고 있는 미국과 이란 간의 뿌리 깊은 갈등은 반세기 전인 19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란에서는 민족주의 지도자 모하마드 모사데크 총리가 석유 국유화와 근대화를 단행하며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었다. 서방은 그를 눈엣가시로 여겼다. 영국은 이란과 석유 협상에 실패하자 이란 공산주의화 저지를 명분으로 미국에 모사데크 축출작전을 제안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1953년 팔레비 국왕이 모사데크를 해임하고 미국이 지명한 자헤디 장군을 새 총리로 추대하는 쿠데타에 성공한다. 이후 이란은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을 시도하며 26년간 친미 절대왕조가 자리 잡는다.

이란은 1979년 대전환을 맞는다. 친미 세속주의 정책에 대한 반발이 커지며 팔레비 2세가 외국으로 망명하고, 해외로 추방됐던 시아파 무슬림의 영적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귀국한 것이다. 호메이니는 이슬람 혁명을 통해 ‘신의 정부’를 선언, 신정일치 체제를 수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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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국민의 반미 감정이 폭발한 것도 이 시기다. 팔레비 2세 소환 요청을 미국이 거절한 것이 기폭제가 됐다. 1979년 테헤란에서 팔레비 신병 인도를 요구하던 학생 시위대는 미 대사관에 난입, 70여명의 외교관을 인질로 잡는다. 미국은 각종 제재로 압박하고 특공대를 투입해 구출작전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대사관 점거는 444일이나 계속됐다.

양국의 충돌은 1988년 또 한 번 극에 달한다. 그해 7월3일 호르무즈해협 상공에서 이란 항공 655편이 미 해군 함정의 요격으로 격추돼 탑승객 290명 전원이 숨졌다.

이후 미국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002년 이란을 이라크, 북한과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하며 강경정책을 펼친다. 그해 8월 이란의 반정부 단체가 핵무기 개발 의혹을 폭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6차례에 걸쳐 제재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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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5년 핵합의를 타결하며 미·이란 관계는 개선되는 듯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핵합의 탈퇴를 선언하고 제재를 단계적으로 복원하면서 물거품이 됐다.

지난해 5월 이후 다국적 유조선 피습, 미군 무인기 격추, 사우디아라비아 핵심 석유시설 피격 등으로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됐다. 양측은 최근 이라크 주재 미 대사관 급습, 거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 타깃 공습 등을 주고받으며 ‘보복의 악순환’에 빠졌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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