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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한은화의 공간탐구생활] 노인들 살맛나는 핫플레이스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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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자 맞춤 시흥시 ‘늠내 건강학교’

보건소 앞마당 자투리 땅 활용해

고령층 생활패턴 맞는 공간 지어

함께 모여 운동·요리·가드닝·식사

2026년이면 한국은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 사회가 된다.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속도다. 초고령 사회는 사회 구조를 바꾸고 있다. 그런데 공간은 어떨까. ‘나이 듦’을 감싸 안을 공간은 충분히 마련되고 있을까.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신천동은 시흥시 전체 노인의 22%가 사는 대표적인 노인 밀집 지역이다. 지난해 10월 이 동네 노인들에게 ‘핫 플레이스’가 생겼다. 공식 명칭은 ‘늠내 건강학교’다. 시흥시 보건소 앞마당, 자투리 공간이 변신했다.

중앙일보

시흥시 늠내 건강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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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시 보건소가 ‘공공디자인으로 행복한 공간 만들기 공모 사업’으로 따낸 예산 8억원으로 앞마당을 바꾸려고 한 것이 2018년. 국내 서비스 디자인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이경미 사이픽스 대표가 나섰다. 이 대표는 시흥시보건소·대야종합사회복지관 주변에 사는 노인들의 패턴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독거노인이 많아 복지관에서 제공하는 점심을 먹으러 오는 노인들이 하루 300명에 달했다. 이 대표는 “주로 집과 복지관만 오갈 뿐 여러 군데를 다니지 않는 어르신들에게 제3의 공간이 절실하게 필요했다”고 전했다.

그래서 앞마당에 냉·난방이 되는 가변공간을 만들었다. 동그란 트랙 위에 얹힌 세모 지붕 집이다. 폴딩도어를 열면 외부 공간처럼 바뀐다. 안쪽에 대형 오븐이 있는 주방이 있어 요리 교실을 열 수 있다. 화·목·금요일 오전 10시면 체조 교실을 연다.

채소를 재배할 수 있는 온실도 있다. 이 대표는 “어르신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운동·정서·영양·위생’이다. 계절과 관계없이 운동할 수 있고, 서로 교류할 수 있고, 요리하며 영양도 챙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밖에 놓인 운동기구는 이 대표가 모두 디자인했다. 기억력과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번호가 매겨진 손바닥 그림이 잔뜩 있는 코너 ‘벽을 짚어보아요’, 하체 근력을 키우기 위해 계단으로 만든 ‘오르락내리락’ 등이다. 이 대표는 “일본 야마구치 현에 있는 노인주간 보호시설(데이케어센터) ‘꿈의 호수촌’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와 보건소 건강문화팀은 지난해 2월 ‘꿈의 호수촌’을 다녀왔다. 꿈의 호수촌은 일본에서 우수 노인돌봄시설로 손꼽힌다. 야마구치 현에서 시작해 일본 전역에 10여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 대표는 “살아있는 것처럼 살게 하는 곳”이라며 “노인을 따로 격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사회에서 함께 늙어갈 수 있게 커뮤니티를 만들고 생활 훈련을 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꿈의 호수촌은 멋있게 디자인된 곳이 아니다. 폐공장을 개조해 만들었는데 장애 없는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장애물이 많다. 손잡이도 불편하고 계단도 많다. 집에서도 잘 생활할 수 있게 돕는 장치들이다. 그뿐만 아니라 하루에 시간별로 수백개의 프로그램이 돌아간다. 노인들은 아침에 꿈의 호수촌에 도착하면 하루 스케줄을 스스로 짠다. 스트레칭을 열심히 하거나 촌에서 기획한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면 가상화폐를 준다.

네덜란드는 정부 차원에서 농장형 데이케어센터를 활발히 지원한다.

노인을 위한 요양 시설이나 기관이 침상 개수만 따지거나, 가격으로만 이야기되는 국내 현실과 사뭇 다른 풍경이다. 보건소의 윤현주 건강문화팀장은 “어르신들을 위한 공간에는 살뜰히 배려한 공간만큼이나 프로그램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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