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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머리 깎고, 낮잠 자고, 커피도 한잔 하시죠… 이 전시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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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서울284 '호텔사회'展]

호텔과 함께 도입된 근대 문화, 현대미술가 50人 작품 곳곳에

관객이 직접 이발·카페 체험 "내가 전시의 일부가 된 느낌"

"앞머리는 너무 짧지 않게…."

관람객이 의자에 앉는다. 이발사가 가위를 든다. 서걱서걱, 머리털이 바닥에 떨어진다. 미술 전시장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실제 상황이다. 이윽고 모발이 단정해진 관람객 윤경환(34)씨는 "일종의 행위 예술처럼 느껴지고 내가 전시 일부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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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설치된 이발소에서 실제 프로 이발사가 관람객의 머리를 깎고 있다.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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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가 전시장에 들어섰다. 옛 서울역사(驛舍) 문화역서울284에서 3월 1일까지 열리는 전시 '호텔사회' 일부다. 서울역사의 역사적 배경과 걸맞은 근대의 시작(호텔)을 반추하는 전시로, 국내 첫 이발소가 생긴 1901년 이래 호텔에서도 이발소가 정갈함을 추구하는 멋쟁이들의 필수 공간이 됐음을 보여주는 퍼포먼스다. 이발사와 손님은 두런두런 천변의 소문을 나누고, 다른 관람객들은 면도까지 말끔히 끝나는 전 과정을 구경한다. 선착순 인터넷 예약을 통해 매일 10명이 근대식 이발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다.

호텔은 기본적으로 잠을 자는 곳. 전시장 2층 40평 규모 구회의실은 관람객을 위한 침실로 변모했다. 침대 시트 110여 개가 여러 겹으로 쌓여 있는데, 누구나 제한 없이 전시가 끝날 때까지 쉬어갈 수 있다. 이 공간 전체는 어엿한 설치 작품이고, 이름하여 '낮잠용 대객실'이다. 백현진 작가가 공들인 푸른 등(燈)이 깜빡이고, 수면을 돕는 규칙적인 음악이 잠잠히 흐른다. 피로한 자들이 침대 위에 뻗어 있다. 매주 토요일 작가가 현장에서 직접 자장가를 부르는 퍼포먼스를 펼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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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2층 침대로 가득 찬 ‘낮잠용 대객실’에서 누구나 지친 몸을 누일 수 있다.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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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의 역사를 담은 각종 아카이브가 나열돼 있으나 단순 생활사(史) 전시에 머무르지 않도록, 곳곳에 현대미술 작품도 비치돼 있다. 이상적 아름다움을 조경한 호텔 내부 이미지를 그림으로 옮긴 화가 장종완, 서울의 대표적 호텔 내부 조경을 기록한 사진가 이강혁, 호텔을 상징하는 샹들리에 두 점을 공업용 다이아몬드 1만 캐럿과 사카린 2㎏으로 코팅한 설치작가 최고은, 이국의 동식물을 목조로 세워둔 조각가 이동훈 등 50여 작가가 재해석한 호텔의 천태만상이 모여 있다.

씻고, 자고, 이제 먹어야 한다. 전시장 1층 가운데 차려진 카페에 가면 근대의 또 다른 증거인 커피, 그리고 단팥빵이 선착순 제공된다. 이 호텔은 체크아웃할 때까지 단 한 푼도 받지 않는다.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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