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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화)

[허진의 문학 속 공간!] 동백(冬柏)은 실은 춘백(春栢)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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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제공 = 한국관광공사]


한겨울에도 대지는 봄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다. 봄이 되면 전라북도 고창 선운사에는 개나리, 벚꽃, 목련, 동백 등이 만개한다. 동백은 원래 겨울에 피는 꽃이지만, 윤대녕의 소설 '상춘곡'에는 "당신이 더 잘 알겠지만 선운사 동백(冬柏)은 실은 춘백(春栢)이지요"라는 구절이 나온다. 3000여 그루에 달하는 선운사 동백이 실제로 개화하는 시기가 겨울이 아니라 3월에서 4월 무렵이기 때문이다. 고운 인연이 때로 늦게 나타나기도 하는 것처럼, 선운사의 동백은 겨우내 늦장을 부리다가, 봄이 돼서야 비로소 꽃봉오리를 터뜨린다.

'상춘곡'은 한 남자가 란영이라는 이름의 여자에게 쓴 편지 형식의 중편소설이다. 10년 전, 그들이 스물여섯 살이던 때, 남자와 란영은 선운사에서 사랑을 나눴다. 긴 시간이 지나 그들은 우연한 계기에 다시 만나게 되고, 남자는 벚꽃이 피면 또 만나자고 한 란영의 말을 떠올리며, 남쪽에서 벚꽃을 몰고 북쪽으로 올라올 결심을 하고 선운사를 찾는다.

선운사에 머물며 남자는 란영에게 긴 편지를 쓴다. 남자는 그 편지에서 젊은 날 그녀와 나눴던 풋풋한 사랑을 돌아보고, 이렇게 그녀에 대한 현재의 마음을 무심한 듯 표현한다. "아, 그리고 인옥이 형이 그날 당신에게 했던 말이 생각나 오늘 벚나무길 좌판의 어떤 아주머니한테서 동백기름 한 병을 샀습니다. 나중 어느 날이라도 생각이 변하고 마음이 바뀌면 머리에 한 번 발라보라고 말입니다. 당신 앞산에 벚꽃이 피면 그때 찾아가서 놓고 오지요."('상춘곡' 중에서)

선운사는 백제시대에 검단선사가 창건한 절이다. 절 입구에는 도솔천이라는 계곡이 흐른다. 이 계곡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 대웅전에 이르고, 대웅전 뒤쪽에 천연기념물 184호로 지정된 선운사 동백 군락이 있다. 선운사에서 5㎞쯤 떨어진 곳에는 미당 서정주의 생가가 있으니, 선운사에 들른 뒤 방문해보는 것도 좋다.

한편 선운사를 다룬 시에는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 최영미의 '선운사에서'가 있다. 이 중에서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 실린 '선운사에서'의 부분을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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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봄에는 사랑하는 이와 선운사에 가서, 봄을 알리는 꽃들을 함께 감상해보는 것도 좋겠다.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만발한 꽃을 영원히 같이 보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허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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