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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이승만도 "임 변사 보고싶소"···대통령들이 사랑했던 임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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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별세한 1세대 스타 아나운서

이승만은 "임 변사"라 부르며 아껴

박정희 권유에 출마했다가 낙선도

전두환 부름 마다하고 방송계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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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별세한 아나운서 임택근의 생전 모습. [한국아나운서클럽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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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별세한 아나운서 임택근은 6‧25 전쟁 중 방송에 입문, 불모지에서 꽃을 피운 ‘방송 1세대’ ‘원조 방송스타’로 불린다. 1951년 전시중앙방송국(KBS의 전신)에 입사한 후 64년 문화방송(MBC)으로 이적해 80년대 퇴사하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에 최전선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2008년 그에 대한 책 『아나운서 임택근』을 펴낸 김민환 고려대 명예교수는 1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방송인 첫 팬덤을 몰고 다닌, 한국방송사의 기린아 같은 분”이라며 “KBS로 입사해 나중에 개국한 문화방송(현 MBC)으로 이적했는데, MBC가 ‘임택근 파워’로 컸다고 얘기될 정도”라고 회고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임택근은 당대 최고의 스타 아나운서에다 권력자들의 동정을 전하는 ‘입’이다 보니 역대 대통령들과의 인연이 깊었다. 특히 그를 좋아한 이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관용차로 남산을 넘어가던 중 KBS 사옥으로 불쑥 찾아가 “임 변사 보고 싶어서 들렀소”라고 하기도 했단다. 당시 이 대통령은 아나운서란 말 대신 ‘변사’라는 호칭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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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6월2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임택근 아나운서가 이탈리아의 니노 벤베누티를 판정승으로 꺾고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 미들급 세계 챔피언에 올른 김기수 선수를 인터뷰 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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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이 그를 기억하게 된 계기는 1959년 4월 필리핀에서 열린 아시아여자농구대회 한‧일 결승전 중계로 보인다. 생전 고인의 회고에 따르면 여자농구단이 숙적 일본을 제쳤다는 승전보를 전하자 동네방네 만세 소리가 터졌다. 금의환향 후 선수단과 함께 경무대(景武臺, 청와대의 옛 명칭)로 초청된 그를 보자 이 대통령은 대뜸 “임 변사 앞으로 나와! 자네 수고가 참 많았네. 어떻게 그렇게 말을 빨리하고,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는 것 같이 생생하게 중계를 하나? 용하구먼” 하면서 그의 손을 잡았다고 한다.

반면 아찔한 기억도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월남(베트남) 방문 후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할 때 당시 현장 중계를 하면서다. “활주로에 대통령 비행기가 굴러들어오고 있습니다”라고 해야 할 것을 “지금 대통령이 굴러들어오고 있습니다”라고 해버린 것. 이로 인해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 아니냐'며 질책당하고 시말서를 썼다고 훗날 방송에서 털어놓았다.

박정희 정부 시절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고인의 생전 회고에 따르면 어느 날 박 대통령이 불러서 “정치할 생각이 없느냐” 권했다고 한다. 그가 대전 유성온천으로 피신해 내려가자 박 대통령은 사람까지 보내서 그를 찾아냈다.

고인은 1971년 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서대문구을 선거구에 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했다. 당시 상대는 신민당 김상현 의원. 김 교수에 따르면 임택근 후보 지지도가 앞선 상황에서 선거 사흘 전 김 후보 측이 뿌린 걸로 보이는 유인물이 돌았다. 유인물에는 임 후보에게 혼외 관계 여자가 있다는 내용이 남겼다. 여론이 요동치더니 결국 김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고 한다.

고인이 다시 MBC로 복귀해서 상무이사, 전무이사를 지내던 중 12‧12 군사쿠데타에 이어 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이 발발했다. 고인은 이환의 사장이 사표를 내자 경향신문사까지 아우르는 사장 직무대행을 맡게 됐다. 신군부의 방송 장악 야욕으로 서슬 퍼렇던 때,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그를 부른다는 연락을 받았다. 마침 당일 MBC 국제가요제 전야제가 있었는데 예정에 없이 인사말을 하겠다고 한 뒤 신군부에는 그 핑계를 둘러댔다.

이후 서울신문 주필 출신의 이진희씨가 1980년 7월 MBC‧경향신문 사장에 취임했다. 고인은 이 사장 취임과 함께 사표를 내고 방송계를 떠났다. 당시 신군부의 언론인 숙정작업에 따른 대대적인 해임 조치 중 하나였다고 훗날 언론 보도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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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과 임택근 아나운서. 이 대통령은 차로 남산 지날 때면 KBS 사옥에 들러 "임 변사 보고싶어 들렀소"라고 할 정도로 좋아했다고 한다.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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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1세대 아나운서 임택근씨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서초동 강남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고인의 빈소를 알리는 화면이 나오고 있다.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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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국회의원 선거 당시 문제가 된 가족사는 이후 장성한 아들들이 연예계 스타가 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01년 배우 손지창씨가 언론을 통해 “임택근씨가 나의 생부이며, 가수 임재범씨가 이복형”이라고 밝힌 게 계기다. 고인은 결혼한 부인과의 사이엔 자식이 없었고 혼외로 둔 두 번째, 세 번째 가정에서 난 아들이 각각 임재범과 손지창이다.

2011년 MBC '나는 가수다'로 다시 인기를 구가하던 임재범은 방송을 통해 고인을 거론하며 “이제는 아버지를 찾아 뵐 때가 된 것 같다. 한 번도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른 적이 없다”고 했다. 아버지를 향한 영상편지에선 "제가 지금 아버지께 채찍 든 이유는 제 아버지여서다. 실수한 거지 용서받지 못할 행동을 한 건 아니다. 먼저 지창이한테 눈물로 사과해보라. 그렇지 못하면 손자들에게라도 하라"고 했었다.



가족사가 공개된 뒤 삼부자는 한동안 교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인도 주변에 '두 아들이 겪은 상처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고인은 첫 부인과는 모친의 말을 따라 이혼하고 다시 얻은 부인과 여생을 함께 해왔다.

빈소는 강남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오는 14일 오전 8시(예정)이며 장지는 용인 천주교회다. 상주는 임재범이다. 가족들이 빈소를 언론에 공개하지 않기로 한 가운데 손지창과 그의 부인 배우 오연수도 빈소를 지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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