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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투자迷兒' 기업들, 은행 고액예금에만 300兆…자금 조달 양극화(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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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 이상 정기예금 2년새 80兆 증가…대내외 경제불안 여유자금 쌓아둬

자금난 中企는 1년새 두배 늘어…한은 금리 내려도 시중 돈 안 돌아

유동성 함정 빠졌나…돈 쌓는 대기업 vs 자금난 中企 '조달 양극화'

불황·증시 부진·부동산 규제 등에 대기업, 투자처 없이 곳간에 현금 쌓기

중기, 은행 대출 못받아 자금난…10개월만에 비은행대출 21% 증가

[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김민영 기자]


아시아경제

<1>'투자迷兒' 기업들, 은행 고액예금에만 300兆


10억 이상 정기예금 2년새 80兆 증가…대내외 경제불안 여유자금 쌓아둬

자금난 中企는 1년새 두배 늘어…한은 금리 내려도 시중 돈 안 돌아


기업들이 은행에 쌓아놓는 돈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중장기 자금 조달을 위해 신규 투자를 집행하는 것이 아닌 은행에 돈을 쌓아놓고 쓸 곳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 신용이 낮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중심으로 차입 여건이 악화되는 자금 조달 양극화도 두드러지고 있다.


13일 한국은행 및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ㆍKB국민ㆍKEB하나ㆍ우리은행 등 시중은행 4곳의 10억원 이상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해 말 293조5032억원을 기록했다. 2017년말 214조2136억원 대비 2년 새 80조원이나 불어났다. 10억원 이상 정기예금 계좌 수도 2017년말 3만561개, 2018년말 3만2054개에 이어 지난해 말 3만4426개로 증가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기예금에 10억원 이상 넣은 거액 예금주는 개인(개인사업자 포함)보다는 대부분 법인"이라며 "경기가 좋으면 기업들이 미래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투자를 늘리지만 지금은 대내외 경제 상황이 불안해 여유자금을 내부에 유보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현재 경제 여건 악화에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이 은행에 고이고 있는 것이라는 얘기다.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개인들도 마찬가지.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개인 자금도 경기 불황과 기업 이익 감소 전망에 증시로 가지 못하고 부동산 규제까지 겹쳐 전반적으로 자금 운용이 보수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은행에 10억원 이상 고액 예금이 쌓여가는 동안 다른 한 편에서는 자금난을 겪는 중소기업이 늘고 있다.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가 발표한 '2019년 중소기업금융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은행에서 신규대출을 받은 중소기업 중 전반적 차입 여건이 나빠졌다고 응답한 비율은 2017년 17.6%에서 2018년 31.9%로 1년 만에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주요 원인으로는 금리 상승을 지적한 응답이 35.2%에서 42.8%로, 신용대출 차입 악화를 꼽은 응답이 19.3%에서 32.8%로 늘었다.


결국 한은이 금리를 내려도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한은에 따르면 정부가 돈을 풀면 이 돈이 민간에서 얼마나 유통되는지를 나타내는 통화승수는 지난해 9월말 기준 15.7배로 역대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 중이다. 통화승수가 하락하면 정부가 돈을 풀어도 금융기관 안에서 돌지 않아 통화량을 증폭시키는 효과가 줄어든다. 화폐 1단위가 경제 구성원의 상품ㆍ서비스 생산 등에 몇 번이나 쓰였는지 보여주는 화폐유통속도 역시 지난해 1분기 0.68로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이후 2분기에도 0.69로 낮은 수준을 이어갔다.


경기 둔화 속에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도입 등으로 중소기업의 경영 환경이 악화되면서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인 기업 중 중소기업 비중은 지난해 상반기 49.7%로 2014년(38.2%)과 비교해 5년 만에 10%포인트 넘게 증가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시중 자금이 생산ㆍ혁신적인 분야 즉 기업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는 게 올해 은행업 감독 방향"이라며 "자금난을 호소하는 기업이 많지만 불안한 경기 전망 아래 생산적이면서도 부실 우려가 크지 않은 곳에 자금 공급을 유도하기가 쉽지 않아 고민이 크다"고 우려했다.


<2>유동성 함정 빠졌나…돈 쌓는 대기업 vs 자금난 中企 '조달 양극화'


불황·증시 부진·부동산 규제 등에 대기업, 투자처 없이 곳간에 현금 쌓기

중기, 은행 대출 못받아 자금난…10개월만에 비은행대출 21% 증가


기업들이 은행에 맡기는 돈이 쌓이고 있는 것은 내부 유보금을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은 최근의 경기 상황과 직결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대내외 경기가 불투명해지자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줄이고 부동산 등을 팔아 현금성 자산을 쌓고 있는 결과다. 통화당국이 아무리 돈을 풀어도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 속에서 중소기업 중심으로 자금난도 심화되고 있다. 경기 둔화 전망에 기업의 투자 심리가 잔뜩 움츠러 들다보니 중소기업들의 타격이 불가피한 것. 개인 자금도 증시, 부동산 등 어느 한 곳으로도 흘러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유동성 함정 속에 시중에 떠도는 자금이 언제든 규제 우회로를 찾아 부동산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는 우려도 나온다.


◆불황, 증시 부진, 부동산 규제에 갈 곳 없는 돈=통화당국이 아무리 돈을 풀어도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의 가장 큰 원인은 경기 부진이다. 미·중 무역분쟁이 장기화되면서 제조업 경기 및 투자 부진이 지속되고 국내 경기 침체도 가속화되고 있다. 일본과 북핵 리스크, 이란 사태 등 갈수록 대외 여건 불확실성이 커지는 점도 기업들이 움츠러든 이유로 꼽힌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설비투자 증가율은 2018년 2분기 -4.8%로 마이너스로 돌아선 이후 매 분기마다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1분기 -19.6%, 2분기 -8.7%, 3분기 -3.7%에 이어 4분기에도 마이너스가 예상된다. 올해 경제 상황은 녹록지 않아 시중자금이 투자, 소비로 이어지기 어려울 전망이다.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3%로, 기획재정부는 2.4%로 예측했지만 민간에서는 1.8%까지 성장률 전망치를 낮게 보는 기관도 있다.


중소기업이나 개인 역시 새로운 투자처를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대내외 경제 여건 악화로 증시로 자금이 흘러가기도 어렵다. 지난해 은행이 판매해 투자자에게 대규모 손실을 입힌 주요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증권(DLS) 사태로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수요도 크게 줄었다. 부동산은 정부 규제에 막히면서 관망하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중소 법인들도 여유자금을 DLS 등 금융투자상품에 수십억원씩 넣어뒀다가 손실을 봤다"며 "DLS 여파로 개인 뿐 아니라 법인들도 투자상품보다는 정기예금이나 대기성 자금에 여유자금을 묶어두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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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쓸 곳 없는 대기업과 자금난에 허덕이는 비우량 중소기업=대기업들은 은행에 자금을 쌓아두고 있는 반면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비우량 기업은 은행 대출조차 받기 힘겨운 실정이다. 한은이 집계한 비은행금융기관의 기업대출은 2018년 12월 165조6571억원에서 지난해 10월 200조7385억원으로 21.1% 늘어났다. 같은 기간 예금은행의 기업대출은 861조361억원에서 907조664억원으로 5.3% 늘어나는 데 그쳤다. 비은행금융기관은 저축은행, 새마을금고 등으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하는 중소기업들이 주로 이용한다. 은행보다 금리가 훨씬 높은 2금융권의 고리 대출이 늘어났다는 것은 중소기업의 자금난과 차입 여건이 그만큼 악화됐음을 뜻한다. 올해 경기 전망이 여전히 어둡고 은행이 건전성 관리에 고삐를 죄면서 중소기업의 자금 사정이 점점 악화, 한계기업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 간 자금 조달 양극화 속에 일각에서는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일부 기업과 개인이 움켜쥔 돈이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부동산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중 자금이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 등에 대한 투자로 가야 하는데 개인, 법인 할 것 없이 전부 땅과 건물을 사모으는 등 부동산으로 쏠리고 있다"며 "기업이나 가계 모두 이미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거나 부동산을 위한 대기성 자금을 틀어쥐고 있다"고 했다. 김완중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여유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재유입될 가능성이 있다"며 "12ㆍ16 대책 같은 주택시장 초강력 규제에도 불구하고 경기 활력 제고를 위한 건설투자 확대 등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집행 확대는 부동산 시장 자금 유입 확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김민영 기자 my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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