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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홍콩 패착 덮으려… 中, 월街 갔던 IT 공룡들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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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증시에 상장해 있는 중국개념주(中槪股·해외 상장된 중국 기업)들이 새해부터 '홍콩 회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바이두·넷이즈·씨트립과 같은 거대 중국 IT 기업이 홍콩 증시에 동시 상장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중 무역 분쟁이 오는 15일 1차 무역 합의안 서명으로 소강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이지만 언제 재발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중국 기업이 '탈(脫) 미국 자본'을 통해 장기적으로 위험 분산을 통한 경영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정치적으로 반(反)정부 시위로 휘청한 홍콩 증시를 되살릴 수 있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금융 업계 관계자는 "미·중 무역 전쟁 여파로 미국의 중국 기업 옥죄기가 현실화되면서, 미국에 상장해 있는 중국 기업은 매우 불안한 상태"라며 "중국 정부와 홍콩거래소가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내면서, 중국의 본토로 '자본 유턴' 속도는 빨라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9일 중국 증권시보는 골드만삭스 보고서를 인용하며 "홍콩거래소는 앞으로 미국에 상장해 있는 중국 기업 40~50곳의 홍콩 증시 동시 상장을 유도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현재 뉴욕거래소와 나스닥에 상장해 있는 중국 업체는 240여곳이다. 그중 약 5분의 1을 본토로 복귀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운 셈이다. 증권시보에 따르면 현재 홍콩 증시 동시 상장 조건에 맞는 기업은 21곳으로, 전체 시가총액은 3조홍콩달러(약 446조원)를 넘는다.

◇복귀 시동 거는 大魚

중국 현지에서는 지난해 말 중국 대기업의 홍콩 증시 동시 상장 준비 소식이 잇따라 나오면서 '후이강차오(回港潮·홍콩 복귀의 물결)'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이 여파로 새해 첫 개장일인 지난 2일 뉴욕거래소와 나스닥에 상장해 있는 주요 중국 기업 주가는 2~9% 올랐다. 씨트립은 10% 넘게 급등했다. 동시 상장은 특정 기업 주식을 국내와 해외 증시에 함께 상장하는 방식이다. 보통 국내에는 직상장하고, 해외에선 DR(주식예탁증서)을 발행해 상장한다. 중국 IT 기업은 DR을 발행해 미국 증시에 상장했는데, 홍콩 증시에도 DR 발행을 통해 동시 상장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일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바이두가 홍콩 증시 동시 상장을 위한 내부 평가를 진행했고, 홍콩 현지에서 정부·금융기관을 상대할 인력을 채용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바이두는 2005년 8월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다. 그동안 리옌훙 바이두 CEO는 중국 본토 증시 복귀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선을 그어왔다. 현재 바이두는 홍콩 상장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금융 업계에서는 "그동안 행보로 미뤄봤을 때 침묵으로 인정한 셈"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0일 "중국 최대 온라인 여행사인 씨트립이 홍콩 동시 상장을 위해 중국국제금융공사(CICC)와 JP모건, 모건 스탠리 등과 접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대표 인터넷 업체인 넷이즈도 홍콩거래소 고위층과 만나며 동시 상장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홍콩거래소는 영국과 미국 등 '선진 시장'에 상장했고, 시총 400억위안(약 6조7000억원) 이상이거나, 시총 100억위안(약 1조6700억원) 이상이지만 최근 1년 매출이 10억위안 이상인 기업에 한해 동시 상장을 허용하고 있다. 이 기준에 맞는 업체는 중국 대표 온라인 쇼핑몰 업체인 징둥닷컴·핀둬둬와 동영상·음원 스트리밍 업체 빌리빌리·텐센트뮤직 등 대형 IT 기업이 대부분이다. 신둥팡·하오웨이라이와 같은 교육업체와 중국판 스타벅스인 뤠이싱커피도 유망한 업체로 꼽히고 있다.

◇적대적인 미국 대신 홍콩 선택

현지에서는 특히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 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홍콩거래소에서 동시 상장을 마친 알리바바에 이어 바이두까지 홍콩 증시에 상장하면, 지금까지 홍콩거래소의 대장주였던 텐센트와 함께 BAT 3사가 모두 홍콩에서 직접 투자할 수 있게 된다. 대규모 투자금이 홍콩으로 쏠리는 것은 물론, 가능성을 본 중국 IT 기업의 홍콩 증시 러시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미국 정부는 중국 기술 기업에 적대적인 조치를 잇달아 취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미국 행정부는 미 증시에 상장한 중국 기업의 상장폐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고, 지난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중국 기업에 대한 관리 강화를 예고했다.

때를 맞춰 중국 홍콩거래소는 "동시 상장을 원하는 기업에 절차나 정보 공개 등에서 편의를 봐줄 것"이라고 밝혔다. 언제 미국의 제재를 당할지 몰라 눈치를 보던 중국 기업들에 '탈출구'를 마련해준 셈이다. 금융 업계에서는 이 기업들이 줄지어 홍콩으로 돌아올 경우, 지난해 미·중 무역 전쟁과 홍콩 반정부 시위로 휘청거렸던 홍콩거래소의 국제적 위상을 단숨에 회복시킬 것으로 내다본다. 박승찬 중국경영연구소장은 "홍콩 증시가 활력을 되찾으면 미·중 무역 전쟁에서 자국 기업을 보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경제성장 효과로 홍콩 시위를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로라 기자(auror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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