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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4 (화)

이집트 미라·실크로드 펼쳤더니…발길 뜸하던 박물관 3층이 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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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 변신]

상설관 3층에 차린 옛 아시아실

미라·실크로드 벽화·석상 전시에

관객들 “마치 외국 박물관 온 듯”

기획전시실 ‘핀란드 디자인 1만년’

휴대폰 빼닮은 돌도끼 함께 놓아

시공간 초월한 파격적 비교 호평

제한됐던 유물 진열 관행 깨고

현대 미술품 같은 눈높이 배치 시도


한겨레

“이집트 유물 덕분에 관객들 동선이 확 바뀌었어요.”

요사이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실 사람들을 만나면 흔히 듣게 되는 말이다. 지난 연말 박물관 상설관 3층 옛 아시아실에 미국 브루클린 뮤지엄에서 빌려온 유물로 이집트 고대 문명관을 차린 이래 생긴 변화다.

원래 3층은 올라가기도 불편하고 유물도 낯설어 관객이 잘 가지 않는 대표적인 기피 구역으로 꼽혔다. 그런데 이집트 관에 블록버스터 기획전에나 나오는 미라와 관, 그림문자판, 석상 등을 상설 전시하면서 관객들 대부분이 1층 상설관을 두고 3층부터 감상하는 풍토가 자리를 굳혔다.

출품된 유물들도 보존상태가 좋고 제작수준이 뛰어난 것들이 많다. 2700년 전에 제작한 것으로 전하는 토티르데스 관과 미라, 람세스 2세를 표현한 벽화, 아문호테프 1세의 석비, 주검의 장기를 보관하던 카노푸스의 단지, 왕의 표식인 오시리스 지팡이 등이 대표적인 명품들이다. 브룩클린 미술관의 이집트컬렉션 대여기간은 앞으로 2년이지만, 박물관은 그 뒤에도 유럽, 중국 쪽 국공립 미술관과 교섭해 메소포타미아 유물과 중국 고대 청동기 유물 따위를 대거 전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블록버스터급 전시의 상설화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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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관이 연일 북새통을 이루면서 이어지는 중앙아시아실과 중국실에도 관객이 몰리는 일종의 ‘낙수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20세기 초 동투르키스탄 신장 지역을 탐험하며 수집한 일본 탐사가 오타니의 서역 수집품을 모은 중앙아시아실은 최근 복원을 마친 인물상과 벽화 등 주요 유물을 조밀하게 채워 넣었고, 중국실은 김홍남 전 관장이 수집한 청나라 시대의 각종 서화를 기증하면서 세련된 청나라 문인 화가의 서재 풍으로 단장해 호평을 받고 있다. 미라와 실크로드 벽화, 진귀한 청대 문인의 애장품 등을 감상한 관객들 사이에선 “마치 외국 박물관을 찾은 듯한 느낌”이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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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설관 기획전시실에서 지난달 중순부터 시작한 ‘핀란드 디자인 1만년’전도 일반 관객은 물론 전문가들에게 참신한 자극을 주는 전시로 꼽히고 있다. 친환경 자연주의 디자인으로 유명한 핀란드 근현대 디자인 명품들이 주된 전시품이긴 하지만, 노키아 휴대폰과 수만년 전 구석기 도끼를 같이 놓는 등 시공간을 초월한 비교 전시로 디자인 문화의 보편성을 드러낸 파격이 신선하다는 평이 쏟아진다.

국립박물관에서 디자인 콘셉트로 고대와 현대를 넘나드는 제품과 유물을 함께 놓고 전시를 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기획의 틀거지나 작품 진열에 디자인 전문가들이 전격적으로 개입해 기존 박물관 전시와는 다른 풍경을 펼친 것도 눈길을 끌었다. 고증 문제로 논란에 휩싸이긴 했으나 가야 기획전도 패션쇼 의상처럼 가야 무덤 출토 갑옷을 배치하거나 육각형 유리탑 안에 가야 토기를 잔뜩 뭉쳐놓고 선보이는 등 전시 기법 면에서는 나름 진일보했다는 평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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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최근 1~2년 사이 국립박물관 전시들은 동선과 꾸밈새가 확 달라졌다. 수장고에서 극히 제한적으로 유물을 꺼내 천장 높은 진열장에 전시하던 오랜 관행이 사라졌다. 현대미술품 전시처럼 공간 구성의 파격은 물론 눈높이 작품 배치를 시도하면서 시공을 넘나드는 기획력을 선보이는 시도가 줄을 잇고 있다. 지난해 4~6월 상설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전은 탈바꿈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설치작가 김승영씨와 협업해 나한상들을 현대 설치작품처럼 전시하는 파격을 내보인 이 전시는 일반 관객은 물론 문화재학계와 미술계로부터 두루 상찬을 받으면서, 세계문화관·핀란드디자인전으로 이어진 전시혁신의 물꼬를 텄다.

전문가들은 연구와 수장 관리 기능에 치중하면서 관객에게 시혜를 베푼다는 마인드에 갇혔던 기존 국가박물관의 사고방식과 전시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최근 도드라진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2~3년 동안 전시 혁신, 관객 서비스 혁신을 추구해온 시스템 개선 노력이 본격적으로 결실을 맺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0일 13번째 지방 국립박물관으로 문을 연 국립익산박물관의 전시 얼개는 이런 맥락에서 더욱 돋보인다. 구석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이어지는 판에 박힌 시대사 흐름을 과감히 걷어내고 미륵사터 사리장엄구와 왕궁리 출토품, 쌍릉 목관 등의 핵심 유물을 눈앞에 바로 펼치는 입체적인 전시 기법을 구사해 개관 사흘 만에 관객 4만명이 몰려드는 진기록을 세웠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 지난해 5월부터 국립현대미술관과 큐레이터 워크숍을 꾸리면서 고미술품과 고고유물, 현대미술품을 한자리에 엮어 선보이는 교류기획전의 내년 개최를 추진하고 있어 앞으로 보여줄 전시 행보에 더욱 관심이 쏠린다. 글· 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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