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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답정너 확증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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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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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경제학 시즌2-22] 민수는 친구와 모처럼 저녁 약속을 잡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민수에게 먼저 "먹고 싶은 메뉴가 있느냐"고 물었다. 민수는 중국음식, 초밥, 돈가스 등 생각나는 음식들을 제안했지만 친구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결국 친구는 날씨가 추우니 해물탕을 먹자고 제안했다. 민수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지만 기분이 상했다. 원하는 메뉴가 있었는데 나한테 왜 물어봤지? 어차피 '답정너'였네. 요즘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의 줄임말로 '답정너'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답정너'의 상황은 앞 사례처럼 반드시 상대가 있을 때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혼자서도 특정 사안에 대해 결정을 잠정적으로 내려놓고 몇 가지 대안들을 고려하는 척하다가 원래 결정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확인하기 위해 차를 새로 구매하려는 현수의 상황을 가정해보자. 현수는 자신의 재정 상황을 생각하면 소형차를 사야 하지만 좀 더 큰 중형 승용차를 사고 싶다. 현수는 더 중형차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거의 굳힌 상태에서 자신이 결정한 선택의 합리적인 근거를 더하고 싶다. 그래서 그는 소형차들의 단점만 찾는다. '소형차는 차체가 너무 약해서 사고가 나면 위험할 수 있다.' '실내 공간이 너무 좁아 장시간 운전하면 무릎이나 관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반면 중형 승용차에 대해서는 장점만 찾는다. '카드를 이용해 중형차를 할부로 구매하면 매달 납입하는 금액이 크게 부담되지 않는다.' '카드 사용액은 세금을 낼 때 공제받을 수도 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은 미리 선택지를 정해놓고 마치 여러 대안을 객관적으로 고려하는 척 흉내만 내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선택한다.

이와 같은 답정너의 오류를 행동경제학에서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심리학자이자 행동경제학인 대니얼 사이먼스(Daniel Simons)와 크리스토퍼 샤브리스(Christopher Chabris)는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그들은 흰 옷을 입은 사람과 검은 옷을 입은 여러 명의 사람들이 농구공을 주고받는 영상을 녹화했다. 그리고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화면에 나오는 사람들 가운데 흰 옷을 입을 팀이 몇 번의 패스를 하는지 세어보라는 주문을 했다. 화면 속 선수들은 쉴 새 없이 공을 주고받기 때문에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이 흰 옷을 입은 인물들의 패스만 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이 실험의 숨겨진 목적은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이 농구공을 주고받는 사람들 가운데 고릴라 인형을 입고 지나가는 인물을 관찰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체육관에 뜬금없이 나타난 커다란 고릴라 인형을 놓칠 리가 없다. 심지어 실험에서 커다란 고릴라 인형은 화면 정중앙으로 가로지르며 가슴을 치는 행동까지 했다. 그런데 40% 이상의 실험 참가자들은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패스하는 숫자를 카운팅하는 데 집중한 나머지 화면에서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이 실험은 왜 확증편향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제공한다. 사람들은 특정 사실에 집중하면 그것을 해결하는 데 많은 지적 에너지를 소모해 다른 중요한 사실들은 놓치게 된다. 즉 우리 뇌가 어떤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면 피곤한 뇌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자신이 살아오면서 구축한 신념이나 세계관을 수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보수적인 태도 역시 확증편향의 오류에 매몰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기존 생각을 지키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뇌를 덜 작용시키는 수월한 선택이다. 새로운 정보, 특히 자신의 생각과 반대되는 정보를 인정하고 자기 신념이나 확신을 수정하는 것은 정신적 에너지를 소진하게 한다. 새로운 세계관을 다시 정립해야 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피하려는 것이 있다. 따라서 편안한 것을 추구하는 우리 뇌는 기존 생각들을 쉽게 수정하려고 하지 않고 그것을 유지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확증편향은 자동차 구매 사례에서 확인한 것처럼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결론을 내릴 때 발생하는 오류다. 문제는 확증편향을 만들어내는 근거가 잘못된 정보가 아닌 사실인 경우가 많다. 다만 이런 사실이 의사 결정을 할 때 고려해야 할 정보의 일부일 뿐인데 그것을 전부라고 예단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최근 인터넷의 발달로 무한대에 가까운 정보가 쏟아지고 있으며, 다양한 미디어가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수많은 정보 가운데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고 자기 결정을 강화하기가 전보다 쉬워졌다. 더욱이 검증되지 않은 가짜 뉴스가 1인 미디어나 SNS를 통해 생산·유통되고 있다. 객관적이고 냉정한 기준을 마련하지 않으면 확증편향으로 잘못된 자기 생각에 매몰될 위험성이 더 커진 것이다.

페어홈 캐피털 매니지먼트(Fairholm Capital Management)를 설립한 펀드매니저 브루스 버코위츠(Bruce Berkowitz)는 월가에서도 최고의 펀드매니저 가운데 한 명으로 손꼽힌다. 그의 투자전략을 살펴보면 확증편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다. 그는 투자 종목을 선정할 때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하는 뉴스보다는 해당 기업이 파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더 주의 깊게 분석한다. 자신이 투자하려는 기업이 불리한 시장 환경에서도 버틸 수 있는 우월한 사업성을 검토하는 것이다. 이 같은 버코위츠의 투자전략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더욱 빛을 발했다.

투자자들이 부동산을 매입하거나 지출 규모가 큰 투자 결정을 할 때 확증편향에서 벗어나려면 긴장하거나 피곤한 상황에서 판단하는 일은 회피해야 한다. 투자자들은 가능한 한 평안하고, 충분히 휴식한 상태에서 투자 검토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자신의 결정을 반박할 수 있는 근거나 문제점을 추가로 찾는 시스템을 가져야 한다.

[최병일 경제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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