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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버려진 충심, 흔들린 충성, 그날의 총성…‘남산의 부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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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식 작가 동명 논픽션 원작 중

대통령 암살까지 40일간 이야기 뽑아

‘내부자들’ 우민호 감독-이병헌 재회

인물 심리 변화 중심 묵직한 정극으로

우 감독 “10·26 이후가 더 드라마틱

영화가 못다한 얘기 찾아보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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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26일, 서울 궁정동 안가에서 총성이 울렸다. 총탄에 쓰러진 이는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 방아쇠를 당긴 이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었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뒤흔든 10·26 사태다. 이 극적인 사건은 지난 2005년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사람들>로 영화화된 바 있다.

15년 만에 이 사건을 소재로 한 또 한 편의 영화가 나왔다. 22일 개봉하는 <남산의 부장들>이다. <내부자들>에서 손발을 맞췄던 우민호 감독과 배우 이병헌이 다시 만난 것부터 화제를 모은다. 이병헌은 김재규를 연상시키는 인물 김규평을 연기했다. 박 대통령 역은 이성민이, 경호실장 곽상천 역은 이희준이 맡았다. 또 전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을 연상시키는 박용각 역은 곽도원이 소화했다.

원작은 김충식 작가의 동명 논픽션 <남산의 부장들>이다. 기자 시절 1990년부터 26개월 동안 <동아일보>에 연재한 글을 묶은 책이다. 박정희 정권 18년 간 중앙정보부가 저지른 온갖 공작정치를 파헤쳐 한국 정치사의 이면을 들췄다. 1997년 이 책을 처음 읽은 우 감독은 그때부터 영화화를 꿈꿨다고 한다. 880쪽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을 다 담기는 힘들어, 대통령 암살까지 40일간의 이야기만 뽑아내 영화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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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사람들>이 사건 당일을 중심으로 한 블랙코미디 장르로 풀어낸 것과 달리 <남산의 부장들>은 묵직한 정극으로 풀어나간다. 미국으로 망명한 박용각 전 중앙정보부장이 미 하원 청문회에서 박 대통령의 치부를 폭로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회고록까지 내려는 박용각을 막기 위해 김규평은 급히 미국으로 건너간다. 거기서 김규평은 자신도 박용각처럼 버려질 수 있다는 충고를 듣는다. 한국으로 돌아온 김규평은 번번이 곽상천에게 밀리는 분위기에 소외감을 느끼는 한편 박 정권의 종말이 다가옴을 직감하며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영화는 각 인물의 심리 변화를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대통령에게 충성하던 김규평이 어떤 과정을 거쳐 거사를 도모하게 되는지, 2인자들의 충성 경쟁 속에서 권력에 도취한 박 대통령이 어떻게 망가져가는지, 충성을 바치다 버림받은 박용각이 왜 목숨을 건 폭로에 나서게 됐는지 등을 건조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우 감독은 “원작을 보고 흥분하지 않으면서도 날카롭고 깊게 파고든 기자정신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영화도 이런 기조를 최대한 이어받고자 했다”고 말했다.

정치색을 최대한 배제하고 객관적 시선을 지향함으로써 논란을 피해 가고자 하는 의도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때 그사람들>은 개봉 당시 박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가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내면서 일부 장면이 잘려나가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손해배상청구 소송에도 휘말렸다. 실존 인물의 이름 대신 가공의 이름을 내세운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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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력이라면 빠지지 않는 배우들의 호연 덕에 영화는 건조함 속에서도 생명력을 얻는다. 이병헌은 절제된 눈빛과 표정으로 심리를 표현하고, 이성민도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하며 신경질적인 박 대통령의 면모를 잘 드러낸다. 곽도원·이희준의 연기도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원작의 사건을 병렬적으로 나열하기만 한 구성은 극적 재미를 반감시킨다. 건조함과 객관성을 추구한 선택이 정치적 논란을 피하는 데는 도움이 됐겠으나, 영화적 측면에선 긴장감과 밀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은 듯하다.

영화는 마지막에 가서 김재규에 대한 재평가의 여지를 남긴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수사 발표와 김재규의 법정 최후진술을 육성으로 들려준다. 두 목소리는 완전히 상반된다. 우 감독은 “판단은 관객의 몫”이라고 말했다.

막판에는 전두환을 상징하는 인물이 도드라진다.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전두환은 그해 12월12일 쿠데타를 일으켜 또다시 역사의 시계를 되돌렸다. 우 감독은 “사실 10·26 사태 이후가 더 드라마틱하다. 관객들이 극장 밖에 나가 영화가 못다 한 얘기를 찾아보고 나눈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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