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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휴가갔던 전차 조종수, 여자 되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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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성전환수술 받은 하사 "전역 때까지 여군으로 복무 원해"

軍은 장애 판정해 전역 대상 올려

미국은 트랜스젠더 입대 불허, 英·獨 등 유럽은 대부분 허용

현역 남성 직업군인이 휴가를 나갔다가 성전환 수술을 받고 여성이 되어 부대로 돌아왔다. 군(軍) 당국은 그의 전역을 검토했지만, 군인은 "여군으로 계속 근무하겠다"고 했다. 요청이 받아들여지면 국군 최초 '트랜스젠더(성전환자) 군인'이 탄생한다.

"저 여자가 되고 싶습니다." 16일 군 관계자 등에 따르면, 작년 7월 경기 북부의 한 육군 부대에서 전차 조종수로 복무 중이던 A 하사가 직속 지휘관에게 상담을 요청해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현재 우리 군은 '성별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을 '성 주체성 장애'로 분류해 입영 대상에서 제외한다. 하지만 A 하사는 군 입대 당시엔 자신의 성(性) 정체성에 대해 전혀 알린 바가 없었다.

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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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하사는 이후 육군 병원에서 '성별 불일치' 판정을 받고 수차례 심리상담 및 호르몬 치료를 받아왔다. 그러다 작년 11월 "성전환 수술을 받고 오겠다"며 19일짜리 휴가를 신청했다고 한다. 당시 육군본부 측이 "수술 후엔 복무가 어려울 수 있다"고 미리 알렸지만, A 하사는 수술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결국 작년 말 부대 허가를 받는 데 성공한 그는 여권을 발급받아 태국으로 출국했고, 여성이 되어 돌아왔다.

수술은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외관상 여성이 되는 데 성공한 A 하사가 이번에는 "여군으로 만기 전역하고 싶다"고 요청하며 벌어졌다. A 하사는 복귀 후 후속 치료를 위해 입원한 국군수도병원에서 '심신 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현행법상 장애등급 판정을 받은 군인은 전투 등 불가피한 사정으로 장애가 생겼는지 확인하는 의무 심사(전공상 심의)를 거친 뒤 전역 심사 대상이 된다. A 하사의 경우 '성기를 고의로 훼손해 장애를 유발했다'는 이유로 비(非)전공상 판정을 받고 전역 심사 대상에 올랐다.

육군본부는 이달 22일 전역심사위원회를 열고 A 하사의 전역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원칙적으로는 '군 복무 능력 상실' 여부가 중점 심사 대상이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A 하사처럼 남성이 성기를 잘라내면 신체가 훼손돼 업무에 지장을 주는 장애로 여겨져 '군 복무 능력 상실'에 해당될 수 있다. 그러나 A 하사가 아예 여성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되는 것이다. A 하사는 최근 법원에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을 여성으로 정정해달라"고 신청했으며, 판결 때까지 전역 심사를 미뤄 달라고 요청했다.

김현 전 대한변협 회장은 "신체적·정신적으로 여성이란 법적 지위를 확보하면 전역 판정이 나오더라도 소송으로 이를 뒤집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A 하사 전역 여부가 트랜스젠더 군 입대 허가에 대한 새 판례 기준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현행법상 일반 직장에서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란 이유로 직원을 해고하면 불법이다. 또 성별 정정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주민번호 뒷자리가 아예 바뀌기 때문에, 구직 등에서 '과거'를 노출하지 않을 수도 있다.

군 당국이 A 하사에게 성전환 수술을 위한 휴가를 허용한 것 자체가 군 내 성소수자 대응 방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시각도 있다. 윤형호 건양대 군사학과 교수는 "기존 군의 관례에 비춰본다면 성전환 수술 허용 이전에 군복무 부적합 심사를 통해 전역시켰어야 맞는 일"이라며 "이번 정부 들어 국방부가 수차례 성소수자 관련 인권위 권고를 받은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내부에선 비판과 불만도 터져나온다. 육군 관계자는 "현역 군인들 사이에선 솔직히 '얼마나 군기가 빠졌으면 휴가 중 성별 바꾸는 게 가능하냐'는 반응도 많다"고 했다.

해외에서도 트랜스젠더 군복무 허용 여부는 뜨거운 감자다. 미국에서는 2015년 오바마 행정부 때 처음 인정됐던 트랜스젠더의 신병 입대가 작년 1월부터 다시 원칙적으로 금지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7월 "성전환 군인은 미국 군대에 허용되지 않는다"고 트위터에 쓴 뒤 트랜스젠더 군복무 금지 행정지침을 내렸고, 이를 연방대법원이 받아들였다. 호르몬 치료 등에 돈이 들고 군 내 분열을 조장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다만 기존 입대가 금지되기 전 들어온 트랜스젠더를 강제 전역시키지는 않는다. 반면 네덜란드·영국·독일·프랑스·스웨덴 등 대다수 유럽 국가는 트랜스젠더의 군복무를 허용하고 있다.

[윤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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