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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책과 삶]중국의 일본 전범 개조정책 ‘푸순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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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김효순 지음

서해문집 | 452쪽 | 1만9500원

경향신문

첫 공개 탄백을 했던 미야자키 히로무가 1956년 6월 푸순전범관리소를 찾아온 일본 방송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해문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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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의 야심으로 가득 찬 나는 평화롭게 살고 있는 중국인을 살해해도, 모욕해도, 압박해도, 재물을 빼앗아도 그것이 입신출세로 연결되고 일본제국주의의 이익으로 이어진다고만 하면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는 인면수심의 귀신이었다. 이것이 침략자로서의 내 본질이고 동시에 일본제국주의자의 본질이었다.”

일본이 패망한 1945년 8월 중국의 동북 3성과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에 체포돼 시베리아의 수용소를 전전하던 이들이 있다. 1950년 7월 중국에 인도돼 푸순전범관리소에 수감된다. 중국 대륙에서 침략전쟁의 선봉에 섰던 일본인 전범이다. 뼛속까지 황국신민 정신과 군국주의에 물들었던 이들은 수감 초기에는 “중국 인민을 구원하려 했던 우리를 가둬 두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다” “중국의 근대화와 경제발전을 도우려 한 것뿐이지 잘못한 것은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던 이들이 범행을 고백하고, 자신을 엄벌해 달라며 눈물로 사죄하는 변화를 겪게 된다. 일본으로 돌아가서는 침략전쟁을 증언하며 반전평화운동에 앞장섰다. 60여년 전 푸순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는 중국 푸순전범관리소에서 벌어진 ‘푸순의 기적’을 기록한 책이다. 중국의 유례없는 전범 처리방식이 어떻게 일본인 전범 1000여명을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바꾸었는지를 다루고 있다. 전범들의 구체적 증언과 기록을 통해 전쟁의 광기 그리고 평화와 화해의 의미를 드러낸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중국은 소련이 억류하고 있던 일본인 전범을 넘겨받는다. 스탈린은 사회주의 신중국이 전범을 조사해 법정에 세우면 국제적 위상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마오쩌둥도 국민당 정부가 일본인 전범을 흐지부지 처리한 것에 불만을 가지던 터였다. 중국 정부의 이들에 대한 처우는 이상할 정도로 너그러웠다. 이들은 세 끼 밥을 꼬박꼬박 배급받았다. 관리소 직원들보다 더 양질의 식사였다. 자유시간에 종이로 마작 패를 만들고, 밥알을 이겨 바둑돌을 제조했다. 잔혹한 일본군에 가족과 이웃들이 학살되고 온 마을이 불타버린 전범관리소 직원들로선 견딜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일본 전범 개조정책을 지휘한 저우언라이 총리는 ‘전범의 인격을 존중하라’ ‘일본인의 습관을 존중하라’고 엄명을 내렸다. 전범 재판 과정에서도 관대하게 처리한다는 기본 방침을 정했다. 1956년 6월 시작된 전범 재판에서 1062명 중 대부분은 불기소 처분으로 풀려났고, 45명만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최고형이 20년형이었다. 처형된 사람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다른 전승국의 일본인 전범 재판과 크게 다른 점이었다.

경향신문

‘인죄종관(認罪從寬)’, 죄를 인정하는 자는 관대히 처분한다는 인도주의 정책이 핵심이었다. 자신의 잘못을 숨김없이 털어놓는 ‘탄백(坦白)’이 구호처럼 사용됐다. 하나둘 자신의 전쟁 범죄를 고백하고, 부끄러운 과거와 대면하고, 성찰하게 됐다. 햇볕이 행인의 외투를 벗겼다는 이솝우화를 빗댄 한 병사의 회고에 눈이 머문다. “중국의 인도주의 대우에 일본인 전범이 시대에 뒤떨어진 파시즘의 외투를 벗어던진 것이다.”

일본인 전범의 귀환은 1964년 4월 마지막 3명이 돌아오면서 마무리됐다. 귀환자들은 “침략전쟁은 이제 절대 반대”라는 귀국인사와 함께 일본 사회에 공개적으로 ‘가해 책임’을 묻는다. 고도 경제성장의 부푼 꿈속에 과거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잘못을 잊어가던 일본 사회에 이들은 불편한 존재였다. 이들에게는 중국 공산주의자들에게 세뇌된 ‘빨갱이’라는 딱지가 붙었고, 사회적 멸시와 위협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중국귀환자연락회’(중귀련)를 구성해 중국인 포로와 민간인 학살, 생체 해부, 전시 성폭행, 731부대의 세균전 실험, 노무자 강제연행 등 전쟁 범죄를 책자와 강연으로 생생하게 증언한다. 2000년 1월 도쿄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심판하기 위해 열린 여성국제전범법정에 나와 위안소 운영을 폭로한 두 명의 증인도 중귀련 회원이었다.

중귀련의 외침에도 일본의 ‘인죄’는 주류의 목소리로 확산되지 못했다. 1956년 이들이 첫 귀환을 하고 이듬해인 1957년 A급 전범 혐의자 기시 노부스케가 총리가 됐다. 아베 신조 현 총리가 기시의 외손자다. 중귀련 회원들처럼 몸으로 체험한 전쟁의 실상을 증언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떠났고, 역사수정주의 움직임은 본격화되고 있다. 중귀련은 회원들의 고령화로 2002년 4월 공식 해체됐다. 오늘날 푸순의 일본인 전범 이야기를 기록하고 다시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책에는 엽기적인 전쟁 범죄의 기록이 이어진다. 그와 함께 중국의 ‘교화’에 대한 의구심도 들 법하지만, 결코 납작하게 사안을 바라보는 책은 아니다. 다양한 기록과 증언을 통해 한국을 넘어 동아시아 전체에서 전쟁과 평화의 의미를 조망하도록 한다.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전범 개조의 실무 주역이었던 조선족 김원, 오호연, 최인걸과 만주국 총리 장징후이의 아들 장멍스 그리고 푸순전범관리소에 수감된 만주국 황제 ‘푸이’의 이야기에서 신산한 현대사를 읽는다.

책을 덮으며 남용되는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곱씹어본다. “일본인은 뭐든지 물에 흘려보내면 깨끗하다고 하는데, 물에 흘려도 상관없을 것과 물에 흘려보내서는 안될 것이 있다. 양자를 구분하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악의 근원을 단절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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