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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與 "美대사가 조선총독이냐"…당정청 모두 해리스대사 맹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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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북정책 한미 충돌 ◆

매일경제

문재인 대통령(왼쪽 둘째)이 17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권구훈 북방경제협력위원장의 `신북방정책 전략` 보고를 받고 있다. [사진 제공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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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당, 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의 북한 개별 관광 추진 방침에 제동을 건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에게 이례적으로 '십자포화'를 퍼붓고 나섰다. 그동안 대북정책에서 긴밀한 한미 공조를 앞세웠던 정부가 올해 들어 독자적인 남북 협력사업 확대를 선언한 후 한미 간에 거친 신경전이 펼쳐진 모양새다. 해리스 대사 발언을 둘러싼 이번 파장은 지난해부터 지속된 한미 갈등의 결과인 측면도 있다. 한미는 지난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 △방위비분담금 협상 △대북제재 등 굵직한 현안마다 큰 입장차를 드러냈다. 한미 관계의 불편한 모습이 이어지는 것은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만큼 양측 모두 추가 대응을 피하고 확전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7일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대사가 주재국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언론에 공개적으로 언급한 부분은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일갈했다. 통상적인 한미 관계를 고려하면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외교적인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이 관계자는 "남북 협력 관련 부분은 우리 정부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의지를 실어 추진하는 남북 관계 개선 드라이브에 "향후 (한국에 대한)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 다루는 것이 낫다"고 견제구를 날린 것에 대한 불쾌감이 그대로 실린 셈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조선총독' '내정간섭'과 같은 자극적인 단어를 쏟아내며 해리스 대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이날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해리스 대사를 겨냥해 "의견 표명은 좋지만, 우리가 대사가 한 말대로 따라 한다면 대사가 무슨 조선총독인가"라고 비판했다. 설훈 민주당 최고위원도 이날 확대간부회의에서 "내정간섭 같은 발언은 동맹 관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이같이 해리스 대사의 언급에 작심 비판을 가한 것은 본격적인 남북 관계 개선 작업 추진에 앞서 미국에 '결기'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대북정책과 관련해 미국과 긴밀하게 협의하겠지만 제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부분까지 세세하게 간섭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다. 이날 청와대의 거친 대미 언급은 북한에 대한 명확한 대화·협력 메시지로도 읽힌다. 청와대는 신중하지 못한 언행을 보인 해리스 대사를 때리며 북측에 '미국에 얽매이지 않는다. 남북 관계는 미국이 아닌 한국과 이야기하라'는 시그널을 보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문 대통령이 언급했던 개별 관광 허용 문제에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며 북측에 대화를 제의하는 등 주체적 모습을 부각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이번에 불거진 한미 간 대북정책 마찰음은 해리스 대사 특유의 정제되지 않은 화법에 기인한 측면도 크다. 군 출신이다 보니 외교적 수사법에 익숙하지 않은 데다 직설적 표현을 많이 쓰는 스타일이라 그의 발언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동안 정부와 청와대도 이런 점을 감안해 직접적인 대응을 자제해 왔지만 해리스 대사의 돌출 발언이 반복되다 보니 이날 공개적으로 강한 유감 표명을 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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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스 대사


해리스 대사의 '문제 발언'은 이번뿐만이 아니다. 그는 문 대통령이 지난 7일 신년사에서 남북 관계 진전을 통해 미·북 대화 재개를 이끌어내겠다는 뜻을 밝히자 이를 반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KBS와 인터뷰하면서 "남북 관계 진전이 북한 비핵화 속도에 맞춰져야 한다"고 말해 정부와 청와대의 신경을 긁었다. 당시 청와대는 공개적으로 유감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내부에서는 '강경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는 통일부가 이상민 대변인을 통해 "우리나라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만큼 독자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진전시켜 나간다는 입장"이라며 에둘러 유감을 표했다. 해리스 대사는 지난해 9월에는 여야 의원들을 만나 "문 대통령이 종북 좌파에 둘러싸여 있다는 보도가 있다"고 언급했던 것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이에 여당 의원이 "그런 얘기는 그만하자"는 취지로 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해리스 대사의 '콧수염'이 한국인들 사이에서 조롱과 분노의 대상이 되며 외교 문제로 떠올랐다고 뉴욕타임스(NYT)와 영국 가디언 등 외신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해리스 대사는 외신 기자들과 만나 "내 인종적 배경, 특히 내가 일본계 미국인이라는 점에서 언론, 특히 소셜미디어에서 비판받고 있다"고 말했다. 해리스 대사는 일본계 어머니와 주일 미군이던 아버지 사이에서 일본에서 태어났다. 해군에 복무하던 시절 대부분 깔끔하게 면도한 모습이었던 그는 해군 퇴임을 기념해 콧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일제시대 조선 총독 8명이 모두 콧수염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여론도 있었다.

[박용범 기자 / 김성훈 기자 / 백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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