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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사유와 성찰]함께 사는 세계를 위한 지구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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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과 도덕적 능력이 있어야

인간성의 존엄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독점·독식에 의한

강자의 횡포와 복수가 오간다


새해 벽두부터 세계는 전쟁 직전까지 간 이란과 미국 간 갈등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사이 민간항공기가 미사일에 격추되어 힘없는 민중들만 희생당했다. 슬픔을 가눌 길 없는 가족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 또는 그녀의 죽음이 언젠가는 우리 자신이 되지 않을까. 국가 간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무력행사 금지를 위해 1차 세계대전 후에는 국제연맹을, 2차 세계대전 후에는 국제연합을 설립했음에도 지난 한 세기 동안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원인은 힘을 앞세운 국가들의 폭주에 있다.

경향신문

국가는 인권을 기반으로 한 국민의 평화적 생존권과 행복권 보호를 제1의 의무로 한다. 그렇다면 분쟁에 동원되는 젊은 병사들과 그 가족들은 과연 행복할까. 국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웃나라와 싸워야 한다고 하지만 국가가 전쟁터로 내보내는 국민 개인의 목숨은 도구에 불과하다. 백성들에게는 불안과 공포뿐이다. 헌법에 각인된 국민의 행복권을 지키지 못한 국가는 매뉴얼에 따라 그들을 사지로 몰아세운다. ‘동물의 세계’에서 보듯 죽은 뱀을 건드리면 독이 발사되는 것과 같다. 죽기 직전 본능으로 장착된 것이다. 국가는 폭력을 독점하여 합법적으로 휘두른다고 하지만 폭력의 해독은 이처럼 개인이든 국가든 다르지 않다. 미국이 이라크전쟁에 쏟아부은 돈만 2조달러로 우리나라 1년 예산의 4배다. 이 또한 얼마나 어리석은가.

세계에는 과연 무질서를 바로잡아줄 국가를 초월한 정의가 없는 것일까. 이대로 약육강식의 정글법칙이 횡행하도록 방치할 것인가. 예의도 염치도 없는 야만적인 국제사회의 정의를 위해서는 보편윤리가 필요하다. 지구 또는 세계윤리라고도 할 수 있는 것으로 지난 20세기 말부터 유네스코 철학·윤리국에서는 보편윤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1997년 파리에서 ‘보편윤리를 위한 개념적, 철학적 기초’를, 1999년 한국에서 ‘보편윤리와 아시아 가치’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세계종교자평화회의는 1970년 함께 사는 세계를 위해 행동해야 할 7개 항의 내용을 선언했다. 공동의 인간성, 공동의 안전, 상호의존성, 공동의 미래, 공동의 삶, 포괄적 교육, 희망과 헌신이다. 세계보편윤리를 확립할 기초인 셈이다.

실제로 종교는 보편윤리의 덕목을 풍부하게 갖추고 있다. 소위 황금률이 그것이다. ‘내가 대접받기를 바라는 대로 이웃을 응대하라’ ‘내가 당하고 싶지 않은 것을 상대방에게 강요하지 말라’와 같이 나와 이웃을 동등하게 대하는 것이다. 철학자 칸트는 <윤리 형이상학의 정초>에서 인간 존재 자체를 목적 그 자체로 보아야 하며, 그 유일한 조건은 그의 도덕성이라고 본다. 이 도덕성을 통해서만 그는 목적의 왕국에서 입법적인 구성원이 될 수 있다. 도덕성과 도덕적 능력이 있는 인간성만이 존엄을 가진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내가 원하는 만큼’의 독점과 독식에 의한 강자의 횡포와 ‘내가 당하는 만큼’의 함무라비 법전식 동해(同害) 복수가 오간다.

그나마 이 악순환을 끊어보겠다는 국제연맹과 국제연합은 그 기반을 칸트의 <영구평화론>에 두고 있다. 그는 그때그때 싸움을 멈추었다 또 싸우는 평화조약보다는 전쟁을 영원히 종식시키기 위해 연방제에 기반한 평화연맹을 만들 것을 주장한다. 어떻게 보면 칸트가 주장한 대로 인류는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는 이란·북한과 미국의 관계에서 보듯이 긴장과 공포의 연속이다. 어느 쪽이든 지도자들의 판단 하나에 지구는 당장 화염으로 뒤덮일 수 있다. 지구시민의 연대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랜 왕권국가에서 민주국가로 넘어와 철들 때가 되었는데도 제왕적 정치가들은 민중의 정서를 오독하고 있다. 위임한 권력을 폭력과 전쟁에는 쓰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 또한 소망하는 자유와 평화를 위해 구호를 외치든, 벽을 치든 무언가 해야 한다. 올해는 지구 위기의 축소판인 한반도의 고통이 평화로 승화되어 이 땅이 진정한 평화연맹의 발원지가 되길 간절히 빌 뿐이다.

원익선 원광대 정역원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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