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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신문사진편지] #11 은지와 은수의 슈퍼히어로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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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나만 들어갈 수 있어요!”

여덟 살 은수(가명)가 침대 아래로 다람쥐처럼 몸을 숨깁니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바닥에 온전히 몸을 눕혀 은수와 눈을 맞춥니다.

“은수야, 카메라 싫으면 사진 안 찍을게. 불편하면 이야기해도 돼.”

조심스레 물으니 아이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은수는 정말 자랑하고 싶었던 겁니다. 자신만이 드나들 수 있는 침대 아래 세계를, 그 안에 숨겨둔 인형 친구들을.

지난달 16일 ‘나눔꽃 캠페인' 취재를 위해 은지(가명)와 은수네 집을 찾았습니다. ‘나눔꽃 캠페인'은 `내가 전한 한 송이 나눔꽃이 세상을 밝고 행복하게 한다'는 믿음으로 지난 2009년부터 시민단체와 함께 펼쳐오고 있는 <한겨레>의 사회 공헌 프로그램입니다. 사례자의 상황에 따라 가명을 쓰거나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등 유의해야 할 점들이 많아 더욱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 취재 현장이기도 합니다.

이날 만난 정은지 양은 원인 모를 내부 면역체계 이상 등으로 척수에 염증이 생겨 신경세포가 파괴되는 ‘급성횡단척수염'을 앓고 있습니다. 발병 지점 아래로 모든 신경 신호가 끊겨 근육의 운동이 정지되는 병이지요. 힘겨운 재활치료 끝에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일상으로 돌아가기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동생 은수 양도 ‘방광외반증'이라는 희귀질환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방광 등을 받치는 골반뼈가 덜 자라 벌어진 채로 태어나 방광이 몸 밖으로 나온 희귀병입니다. 수술 이후 방광 기능이 소실돼 기저귀를 차고 생활합니다. 현재로서는 더 이상의 치료법도 약도 없습니다. 이 같은 내용이 쓰인 취재의뢰서를 처음 받았을 때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은 참 고맙게도 말과 웃음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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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최애 캐릭터가 펭귄이거든요!”

방에 한 가득 쌓인 인형들 중 가장 많이 보였던 펭귄을 들어보이며 은수가 말합니다. “펭귄이 왜 그리 좋아요?” 묻자 은지가 답합니다. “중환자실에서는 아무도 제 곁에 있어주지 못했는데, 그때 저 펭귄 인형을 안고 있으면 위로가 되었어요.” 아주 잠깐, 사진 취재를 위해 카메라를 들여다보다가 `인형이 너무 많은 것은 아닐까' 생각했던 제 마음이 참 미안했습니다. 부러 `불쌍해 보이는 장면'을 연출하진 않지만 혹여 보는 이들에게 “그리 긴급해보이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면 어쩌나 고민한 것도 사실입니다. 아이들이 각자의 햄스터를 자랑할 때에도 아버지 정석진 씨(가명)가 조심스레 말을 보탰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해서 `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청을 마냥 거절할 수 없었어요. 개나 고양이는 엄두를 내지 못하지만 햄스터는….”

정석진 씨는 하루 10~12시간의 노동으로 한 달 380여만 원의 월급을 받는 가장입니다. 부자는 아니어도 여느 아버지처럼 아이들에게 작은 선물쯤은 해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아프고 난 뒤 그 보통의 일상이 뿌리째 흔들렸습니다. 한꺼번에 몫돈으로 들어간 병원비를 제외하고도 한 달에 200만 원가량이 각종 치료에 쓰입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며 어떤 문제가 더 발생할지 모르기에 더 발생할 치료비를 가늠하기도 어렵습니다. 집살 때 받은 대출 1억원은 6년 동안 딱 반을 갚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치료가 시작된 이후, 치료와 생계를 이어가며 나머지 대출금 5천만 원을 갚을 길도 막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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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박'

2000년 박완서 작가가 발표한 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의 끄트머리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이의 별명입니다. 책 한 권을 써 내려간 주인공의 이야기보다, 몇 장 남짓 쓰였던 그 치킨 박의 이야기가 더욱 선연하게 기억된 건, 아마도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 때문이었을 겁니다.

박성남이라는 이름의 그 사내는 아내와 평생을 고생한 끝에서야 동네에 치킨집을 개업한 자영업자입니다. 때마침 동네 사장님들은 우리나라 중년의 사망률이 가장 높다는 신문기사를 보았고, 꼬박꼬박 건강검진받는 대기업 회사원도 아니니 스스로 건강을 챙기자고 뜻을 모아, 단체 할인해주겠다고 나선 동네 병원을 찾아가 건강검진을 받습니다.

그 검진에서 유일하게 “큰 병원 가보시라”는 권유를 받은 박성남씨는 수술로 완치할 수 있는 ‘초기의 폐암'을 진단 받습니다. 주인공인 의사는 아무리 운수 좋은 환자라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일이라며 기뻐했지만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의사의 설명에도 극복할 수 없었던, 평생의 노동 끝에 이룩한 집과 가게를 자신의 치료비로 써버리고 가족 모두 다시 가난의 밑바닥으로 추락할 것이라는 두려움. 그가 남긴 유서에는 죽음보다 더 무서운 그 공포가 고스란히 나타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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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보통의 일상..

한 달의 월급으로 생활비를 쓰고, 주택 대출을 갚고, 약간의 저축으로 만약을 대비하는 `보통'의 삶은 쉽지도 않지만, 깨지기도 쉽습니다. 가족의 실직, 혹은 투병-그 무엇으로도 서민의 삶은 휘청이기 쉽습니다. 건실하게 자신의 삶을 영위해 오던 이들이 예상치 못한 사고로 잠시 휘청일 때 이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손길이 있다면…. 지구를 구하는 슈퍼히어로보다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건 현실 속에서 내 이웃을 보살피는 그 마음 아닐까요?

웹툰 작가가 꿈이라는 은지의 작품을 독자들께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에, 웃음꽃을 피우며 나눈 대화 끝에 그림을 그린 스케치북을 들어서 보여주겠냐고 청했습니다. 순간 은지가 멈칫합니다. “제가 스케치북을 들 수가 없어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은지의 오른팔은 아직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언니를 대신하겠다며 은수가 두 손 번쩍 스케치북을 들어 올려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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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진들을 취재했는데, 기사에 실려도 괜찮을까요?”

은지네 집을 떠나기 전, 다시 한번 우리는 부모님과 머리를 맞대고 상의합니다. 가족의 일상이 고스란히 보이는 그 사진들을 놓고 정석진 씨 부부는 다시 고민합니다. “어른은 아무래도 괜찮아요. 다만 아이들이 혹여 놀림을 당할까 봐….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전혀 상관없습니다.”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의 어떤 상황이, 사진 선택의 기준이 된 상황은 얼마나 난감한지요. 그러나 자녀를 위해 나의 모든 것은 내려놓아도, 그 아이들이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하는 그 마음은 너무도 선명합니다.

그 선명한 마음에 비해 제 사진은 너무도 모호하여 이 편지를 씁니다.

그날의 사진에 혹독한 치료와 재활 끝에도 아직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은지의 오른팔은 보이지 않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몸 밖에 있던 방광을 복원하는 수술 뒤 배꼽이 사라진 은수의 배도, 여태 기저귀를 해야 하는 그 상황도,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자녀의 투병생활 끝에 극단적인 생각을 품었던 어머니의 절박한 심정이나, 성실한 노동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의료 재난을 맞은 아버지의 암담한 마음도 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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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을 돕고자 하는 단체들의 모금 광고들은 짧은 시간 후원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좀 더 절박하고 자극적인 가난의 이미지를 쏟아내곤 합니다. 선한 의도에서 시작된 그 과정들은 오히려 `빈곤 포르노'라 지칭되며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들의 최선이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일에서 완벽을 기대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그 우를 피하기 위한 저의 노력도 부족했습니다. 그 부족함을 감히 우리의 마음으로 채워달라 청해봅니다. 나와 마주잡은 당신 손의 온기, 함께 안은 그 품의 포근함은 분명 `우리'의 힘이 되리라 믿는 까닭입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캠페인 참여하시려면

은지네 가족에게 도움을 주시려는 분은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우리은행 269-800743-18-309 예금주: 나눔꽃 사회복지법인 월드비전) 월드비전 누리집(www.worldvision.or.kr)과 네이버 해피빈(happybean.naver.com)에서도 후원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방식의 지원을 원하시는 분은 월드비전(02-2078-7000)에 문의해주십시오. 기부금 영수증도 받을 수 있습니다. 목표 모금액은 2500만원입니다. 후원금은 은지와 은수의 의료비, 교육비, 생계비로 사용되며, 목표액 이상 모이면 은지네 가족처럼 어려운 사연의 가정에 지원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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