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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에듀테크, 교육의 ‘유토피아’ 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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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 디지털 기기 활용이 늘어나는 ‘에듀테크’ 바람이 거세다. 그러나 에듀테크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에듀테크가 교육의 ‘유토피아’를 열지 ‘디스토피아’를 열지는 디지털 기기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명절을 맞아 고향집에 모인 가족. 모처럼 만났지만 대화보다는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이 더 많다. 아이들은 방 한쪽에 몰려가 나란히 누워 모바일 게임을 한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면 정신 사나운 어른들은 아이들의 손에 스마트폰을 건네고 모른 체한다. 스마트폰은 ‘방임적 양육’ 수단이 된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아이들 밥상 앞에 스마트폰을 올려놓는 부모를 흔히 볼 수 있다.

주변에서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일부 어른들은 우리 아이만은 스마트폰에 중독되게 할 수 없다며 ‘철벽 방어’를 한다. 아이들이 디지털 기기를 쓸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제한하는 온건한 방식부터 아예 금지하는 방식까지 다양하다. 최근 들어 교육현장에서 디지털 기기 활용이 활발해지면서 부모들의 걱정이 늘고 있다. 교육과 기술의 결합을 뜻하는 ‘에듀테크’의 바람과 함께 이런 고민은 더 깊어진다.

디지털 기기를 양적인 사용시간만 따져보면 부정적 인식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교육 전문가들과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는 학생·학부모들은 기기를 이용해 이뤄지는 활동의 내용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디지털 기기 사용이 늘면 수면장애나 신체활동 저하, 사람과의 관계 맺기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일률적으로 나쁘다고 말하기에는 디지털 기기의 사용 양태가 너무나 다양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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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에듀테크 페어 박람회’에서 한 학생이 태블릿PC로 증강현실 공룡 콘텐츠를 보고 있다. 인천 청라초 유미경 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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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교과서, 교육적 효과 높아”

실제 사례를 디지털 교과서에서 살펴볼 수 있다. 디지털 교과서는 종이 교과서에 멀티미디어 콘텐츠와 용어사전, 평가문항, 증강현실(AR) 등 실감형 콘텐츠를 추가한 것이다. 2011년 정부가 ‘스마트 교육 추진전략’을 발표하고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시작했을 때 “국가가 아이들의 건강상 위해 여부를 확인하지도 않고 정책을 추진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디지털 교과서의 학습 효과는 나쁘지 않았다.

권지영 교육부 이러닝과장은 “서책형 교과서는 책과 선생님의 강의라는 제한된 정보만 있지만 디지털 교과서는 외부 정보 검색도 가능해 뇌에서 활성화되는 부분이 다른 것으로 나왔다”며 “디지털 교과서가 학습자의 뇌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결과도 서책형 교과서를 활용할 때 좌뇌만 활성화되는 데 비해 디지털 교과서를 활용할 때 양쪽 뇌가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교과서를 사용한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도 처음의 우려와 달리 긍정적인 효과가 컸다고 말한다. 학생들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자기주도학습, 토론·토의 등 협업 능력과 정보활용 능력이 두드러지게 향상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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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청라초등학교 유미경 교사와 학생들이 지난해 9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에듀테크 페어 박람회’에서 수업 시연에 참여하고 있다. 인천 청라초 유미경 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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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청라초등학교에서 디지털 교과서를 활용하는 유하선양(12)은 “종이 교과서로 배울 땐 자료나 사전을 직접 찾아봐야 해서 번거로웠는데 디지털 교과서는 자료가 함께 있어 편하고 맞춤 설명이 추가로 들어와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다”며 “증강현실과 같은 실감형 콘텐츠도 굉장히 재미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교과서와 연동된 학습 커뮤니티인 ‘위두랑’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 담임 선생이 개설하는 위두랑에 교사가 학습자료를 올리고 아이들은 과제물이나 영상, 사진 등을 올려 친구들과 공유하거나 수업시간에 발표할 수 있다. 유하선양은 “부모님이 처음에는 태블릿PC로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할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위두랑에 제가 올린 수업 발표물을 본 후에는 큰 걱정을 안 한다”고 말했다.

유하선양의 어머니 권윤숙씨(35)도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자주 접하는데 학교에서도 한다고 하니까 고민이 됐다”며 “하지만 처음 걱정과 달리 생각보다 아이들이 건전하게 사용하고 저 역시 접속해 아이들이 뭘 배우는지 알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이재윤군의 어머니 박미옥씨(44)는 “아이가 역사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은데 디지털 교과서에 영상이 많아 굉장히 만족해한다”며 “학교에서는 태블릿PC를 쓰고 집에선 컴퓨터를 사용하겠다며 아이 스스로 휴대폰도 2G폰으로 바꿨다”고 전했다. 박씨는 “몰라서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며 “학교에서만 태블릿PC를 사용하고 학습 위주로만 사용하도록 부모가 관심 있게 봐주면 처음 걱정과 달리 오히려 성과가 더 커 좋아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임아윤양(12)도 “일반 책의 경우 단순한 노트밖에 못 하고 그림만 참고할 수 있지만 디지털 교과서는 동영상과 실감형 콘텐츠를 이용해 이해가 더 잘 된다”며 “과학의 경우 식물 단원이 나오면 실제 관찰하기가 어려운데 증강현실 콘텐츠를 보면서 좀 더 자세하게 공부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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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사회 교과의 디지털 교과서. 인천 청라초 유미경 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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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교과서, 학생을 ‘배움의 주체’로 만들어

디지털 교과서를 활용하는 교사들 사이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앞섰다. 경기도 화성시 숲속초등학교 김태희 교사(43)는 “세계지리의 경우 현실세계에 맞닿지 않아서 어려워하고 재미없어 하는데 다양한 자료와 문제 상황을 제시하면서 함께 토의·토론하는데 디지털 교과서의 역할이 굉장히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멀티미디어 자료가 잘 준비되어 있어서 정보접근성 측면에서 정제된 자료를 아이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크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능동적으로 정보를 탐색하고, 자기 생각을 발표하는 모습을 보면서 학부모들도 만족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강의식 수업을 하면 아이들이 배움의 주체라기보다 주변인으로 물러나게 되는데 디지털 교과서의 경우 교사가 5~10분 정도 설명을 하고 이후 꾸준히 질문을 주고 받으면서 모듬활동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주도성을 가질 수 있고 딴 짓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천 청라초 유미경 교사(49)는 과학시간에 소화기관을 다룬 실감형 콘텐츠를 보면 입으로 음식을 먹으면 식도를 거쳐 위를 지나 똥으로 나오는 과정을 보게 되는데 애들이 너무 좋아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학생들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도 익숙하지만 콘텐츠를 만드는 데에도 능숙하다. 현재 온라인 수업은 교사가 잘 만들어진 특수 교재를 제공하는 방식이지만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아이들은 자기 나름의 관점을 반영한 콘텐츠를 스스로 만들 수도 있다.

유미경 교사는 “학부모들은 처음에 디지털 기기에 중독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마련”이라며 “실제 그런 측면이 있지만 그 중독이 스스로 콘텐츠를 만드는 방향이라면 나빠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학기 초에 아무도 하지 않던 유튜브 크리에이터 활동을 하는 아이들이 생긴 것도 그런 변화 가운데 한 사례다. 유 교사는 “아이들이 직접 글과 영상을 창작해 올릴 수 있는 환경은 아이들에게 ‘내가 수업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심어준다”며 “학기 말에 성격 검사를 간단히 했는데 학기 초에 비해 아이들의 자존감과 자신감이 많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교과서를 활용한 발표 수업을 위해 창작물을 만들고, 이를 발표해 서로를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이런 변화를 낳았다는 것이다.

그는 다만 디지털 기기를 올바로 활용할 수 있는 ‘시민성 교육’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위두랑 게시판에 ‘악플’을 다는 아이가 있으면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보라고 하거나 과제로 유튜브에서 욕설을 많이 쓰는 영상과 그렇지 않은 영상을 찾아보라고 한 것이 이런 교육의 일환이다. 유 교사는 “유튜브를 보지 말라고 하면 부모들이 안 보이는 곳에서 몰래 보게 되는 게 애들”이라며 “그러면 무조건 금지하기보다는 무엇이 좋은 내용이고 나쁜 내용인지 판단하는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고 말했다.

교사·학생·학부모들은 디지털 교과서가 다른 교과목까지 확대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현재 디지털 교과서는 초등~중학교 사회·과학·영어 교과에 개발·적용됐다. 고등학교에는 영어교과에만 적용된다. 지난해 기준으로 연구학교와 선도학교를 포함해 936개 학교가 운영하고 있다. 수업을 원활히 진행하려면 무선 인프라 구축과 태블릿PC 보급이 필수적이지만 예산 제약으로 확산이 더딘 편이다.

■“문제라고 보는 시각 자체가 문제”

교육전문가들은 디지털 교과서가 학교 교육을 지식 중심이 아닌 역량 중심으로, 아이들 스스로 배울 수 있는 수업을 만드는데 유용하다고 평가했다. 아이들의 디지털 기기 중독을 걱정하기보다 어른들 스스로 디지털 기기를 올바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김태희 교사는 “아날로그적으로 자란 어른들과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 기기를 접한 아이들은 사고 방식부터 다를 수 있다. 이를 도외시한 채 무조건 나쁘다고 사용을 막으면 오히려 자녀와의 소통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공학자인 장혜승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도 아이들이 디지털 기기를 남용할 것이라는 우려는 지나친 걱정이라고 했다. 오히려 “디지털 기기 사용이 문제라고 보는 시각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장 연구위원은 “아이들이 말도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유튜브를 보는 시대”라며 “그런 아이들에게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활용할지를 교육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국교육개발원은 디지털교육연구센터에서 장기 입원이나 치료로 학교 교육을 받기 어려운 건강 장애학생을 위한 온라인 수업 과정인 ‘스쿨포유’와 희망 학생이 적거나 교사 수급이 어려운 심화과목을 화상 시스템으로 가르치는 온라인 공동과정 등을 운영하고 있다.

장 연구위원은 “온라인 학습 과정을 모니터링한 결과를 보면 아이들이 자주 찾는 시간대가 있고 그때 꾸준히 들어오는 아이들의 성과가 높다”며 “일률적으로 제한하기보다 꾸준하게 짧게라도 비슷한 시간에 들어올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 연구위원은 “자신이 듣는 수업에 다른 학생들이 얼마나 참여하는지, 내 학습 수준은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높은지 낮은지를 보여주는 결과창이 뜨기 때문에 아이들이 생각보다 자극을 많이 받는다”고 덧붙였다.

에듀테크의 흐름은 크게 디지털화와 데이터화로 진행되고 있다. 공교육 분야의 경우, 교육개발원이 제공하는 온라인 학습 사이트에서도 아이들이 어떤 학습을 했는지 데이터를 분석해 적절한 콘텐츠를 추천하는 기능을 넣었다. EBS 초등학생 강좌 ‘만점왕’은 수학 과목에서 학생들의 패턴이나 성적에 따라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기능을 활용하고 있다. 데이터 분석이 인공지능과 결합해 고도화되면 이전까지 평균적 학습 과정에서 소외되었던 학생들에게 이른바 ‘완전학습’을 제공할 수 있다. 아이에게 필요 없는 부분을 빼고 배워야 할 것만 조립해 넣는 모듈화된 맞춤형 교육과정이 만들어질 수 있다.

학생 상담이나 진학 컨설팅에도 적극 활용할 수 있다. 학습관리체계(LMS)가 도입되어 교사용 대시보드에 개별 학생들의 정보가 종합적으로 제시되면 학습이 부진하거나 적응이 느린 아이들을 제때 도와줄 수 있다. 학생 지도를 위한 ‘망원경’과 ‘현미경’을 갖게 되는 것이다. 교사는 티칭보다 ‘코칭’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디지털 교과서처럼 교사와 학생이 상호작용하면 다양하고 실감나는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몸이 아프거나 등교하기 어려운 장애인을 위한 ‘학교 밖 학습의 인증’이 사회적으로 공인되고 확대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교육에서 기술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나 시장의 논리에 교육이 종속될 우려도 있다는 것이다. 교육의 시장화가 진행될 경우, 기업들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낸 교과과정과 수업안이 시장에서 판매되고 교사는 단순히 이를 구매해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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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교과서와 연계된 학습커뮤니티 사이트 ‘위두랑’. 인천 청라초 유미경 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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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기로 인격적 관계 소멸 우려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교육이 상호작용이 없는 단순한 화상 시스템에 그칠 경우 기존 강의식 교육과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교육에서의 인격적 관계는 더 단절될 가능성이 크다. 공감 능력이나 언어발달, 정서발달에도 좋지 않다.

김경애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은 “아이들일수록 마음을 읽고 신뢰 관계를 형성해서 접근하는 부분이 교육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전제하면서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디지털 기기에 익숙해지고 사람과의 친밀한 관계, 애착 관계에 대한 경험이 없는 경우에는 학교나, 그 어디에서든 교육적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한 필요를 못 느낀다”고 말했다. 학생이 관계 맺기에 대한 욕구가 없을 경우 다가갈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에듀테크의 장점을 잘 활용하려면 발달 단계에 따른 고려도 필요하다. 김경애 연구위원은 특히 애착 관계가 필요하고 몸이 발달하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에는 몸으로 부대끼며 하는 활동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놀이는 몸 활동이자 사회생활의 연습, 역할극이기도 하다”며 “미국 실리콘밸리의 초등학교에서는 아예 디지털 기기 사용을 금지한 곳도 있는데, 이는 아이의 상상력이 기계에 종속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에듀테크가 교육의 ‘유토피아’를 열지 ‘디스토피아’를 열지는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축약할 수 없는 문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디지털 기기를 어떻게 활용할지 그 내용에 달려 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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