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6 (일)

민간기업도 '직무급' 하자는 정부…실상은 공기관도 '난항'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고용부 직무급제 도입 가이드 발표…노동계 발끈

공기관도 2년간 5곳 도입…"시기상조" 비판 쇄도

뉴스1

연봉탐색기를 보는 근로자 (자료사진) 2017.1.4/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세종=뉴스1) 김혜지 기자 = 정부가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직무급' 도입을 독려하는 가이드라인을 내놨지만, 실질적인 제도 확산까지는 오랜 기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계는 정부가 사전 상의 없이 가이드라인을 성급히 내놨다며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노사 간 합의를 유도하고자 펴낸 정부 가이드가 오히려 대화 분위기를 흐린 모양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13일 펴낸 '직무중심 인사관리 따라잡기'는 직무주의 인사관리 필요성에 대한 여러 전문가와 유명 전문경영인의 판단으로서 사실상 정부의 의견을 싣고 있다.

직무주의 인사관리란 근로자 개인의 특성(성별·학력·나이·근속연수)보다는 담당 직무의 내용과 상대적 가치에 따라 채용·보상·평가·교육훈련 등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존 인사관리체계인 속인주의(개인의 특성에 기반한 인사관리)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속인주의 체제에서는 연공서열형 호봉제를 실시하는 것이 대부분이나, 직무주의 체제에 더 잘 부합하는 임금결정체계는 직무급이다.

가이드는 그러면서 직무주의 인사관리가 Δ공정성 추구 Δ전문성 강화 Δ건강한 조직문화 기반 Δ고령화 문제 해결 등의 측면에서 현 시대에 더 적합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기존 임금결정체계는 낮은 기본급과 복잡한 수당, 명목뿐인 상여금 등 기형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며, 근로자가 임금구성을 명확히 이해하고 자신의 역할에 따른 보상을 뚜렷이 인지할 수 있는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결과, 기업 임금결정체계는 직능급·역할급·직무급 등 역할과 능력에 기반한 체계여야 합리적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노동계는 이 같은 정부 가이드를 '강요'로 규정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가이드 배포 당일 성명을 통해 "정부가 민주노총 등과 일절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임금체계 개편을 강요하고 있다"며 "정부는 일방적인 임금체계개편을 강요할 것이 아니다"라고 일침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도 "새로운 집행부 선출을 앞둔 중요한 시기에 (가이드를) 기습 발표했다"며 "수십년간 대표적 임금체계로 자리잡힌 연공급형 임금체계를 개편하기 위해서는 노사정이 충분한 논의 기간을 가져야 하나, 노동계와 어떠한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마련했다"고 발끈했다.

정부의 직무급 독려에 대한 노동계의 비판 요지는 '직무급 도입은 결국은 임금 삭감'이라는 것이다.

노동계는 직무급 도입시 근속연수가 긴 근로자의 임금의 경우 대폭적인 삭감을 피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물론 초임 인상 등 몇몇 측면에서는 가이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비정규직은 최저임금 수준 급여를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서, 정규직의 임금까지 깎으려는 것은 심각한 노동개악 아니냐는 지적이다.

뉴스1

직무급제 도입에 반대하는 공공·금융노조. 2019.7.9/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노동계와의 의견 차이는 이미 공공부문에서 불거진 바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공공기관에 직무급 도입 계획을 밝힌지 2년이 지났지만, 현재 도입률은 1%(전체 339곳 중 5곳) 수준에 불과하다. 그나마 도입에 합의한 공기관은 사실상 직무급제의 탈을 쓴 호봉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가 운영지침을 내릴 수 있는 공공기관에서조차 직무급 도입은 난항을 겪고 있는 셈이다. 사회 분위기가 채 무르익지 못한 시점에 정부 가이드 배포는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노총도 "우리나라에서 임금 연공성이 가장 심한 곳은 민간 제조업 대공장이 아니라 공무원 집단"이라며 "민간으로의 확산을 추진하기보다 공무원부터 먼저 직무·능력 임금체계를 시범 실시하는 것이 절차상 바람직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고용부는 이번 가이드 발표가 '일방적', '강요'라는 비판에 대해 "기업에 의무를 부과하는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이 아닌 참고자료"라며 "호봉제를 폐지하고 그 대안으로 직무급을 민간에 압박하거나 강제하기 위한 취지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또 "기업 임금체계는 노사 자율의 영역으로 정부나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바꿀 수 없으며, 조직 구성원들 간 충분한 협의와 소통을 통해 노동자가 수용 가능한 대안을 만들어가야 함을 다시 한번 말씀 드린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현장에선 여전히 '정부 주도'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꺼림칙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이번 가이드 발표와 함께, 민간 직무급제 확산에 대해 이전보다 강한 의지를 밝혔기 때문이다.

임서정 고용부 차관은 가이드 발표 브리핑에서 "고용부 산하 노사발전재단에서 (직무급제 도입을 위한) 직무평가도구를 8개 업종에 대해 개발했다"며 "올해 8개 업종의 2~3곳을 대상으로 시범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icef08@news1.kr

[© 뉴스1코리아(news1.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