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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세상읽기] 성격검사와 세대론의 공통점 / 전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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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전상진 ㅣ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곧 설날이니 정말 꼼짝없는 새해다. 어떤 좋은 일이 생길지 아니면 무슨 흉악한 일이 벌어질지, 기대와 두려움이 살포시 고개를 든다. 이럴 땐 역시 신년운세가 필요하다. 미래를 알아채야 길흉화복에 대비하지 않겠는가.

레트로(복고풍)가 아무리 대세라지만 낡은 방법으로 미래를 알 수는 없겠지. 신년운세보다 훨씬 현대적인 대체물이 필요하다. 엠비티아이(MBTI)나 에니어그램 검사를 받거나, 하다못해 혈액형별 성격을 탐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것이 사뭇 믿음직한 까닭은 신년운세와 접근 방법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신년운세는 감히 미래를 예언한다. 미래는 온갖 요소가 작용한 결과다. 세계정세에서 사소한 우연에 이르기까지 신경 쓸 게 너무 많다. 고려 사항을 줄일 필요가 있다. 외부 요인이 아니라 나 자신에서 출발하면 좋겠다. 엠비티아이와 같은 성격유형검사는 나 자신에서 시작한다. 내가 나를 아는 것, 새해 계획을 세우는 적절한 출발점이다.

하지만 혈액형에 따라 성격이 다르다는 주장의 터무니없음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고대의 지혜와 현대의 심리학을 접목’하여 성격유형을 9가지로 분류하는 에니어그램의 경우 유사과학이라는 혐의가 짙다. 유형을 16가지로 분류하기에 조금 더 정교해 보이는 엠비티아이도 그 과학성이 크게 의심받는다. 대다수 심리학자는 그것의 사용을 말리거나 조심하라고 충고한다.

아카데미의 염려에도 성격유형검사는 대중의 지지를 받는다. 과학과 과학자를 크게 믿지 않게 된 점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두 가지 있다. 첫째, 우리 느낌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어쩜 이건 누가 봐도 딱 내 얘기야!” 성격유형검사(더불어 사주, 관상, 별점)가 맞는 것처럼 보이는 건 일종의 심리적 트릭(속임수)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검사가 제시하는 성격유형은 ‘막연하고 일반적’이어서 모두에게 ‘딱 내 얘기’처럼 들린다. 열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둘째, 영국의 사회학자 니컬러스 로즈가 말한 “심리 산업”의 위세도 중요하다. 성격유형검사와 관련한 비즈니스(검사기관, 전문가 교육과정, 교과서, 조언서, 워크숍, 코칭)의 경제적 규모를 짐작조차 못 하겠다. 규모에서 비롯한 비즈니스의 위세는 학술적 염려와 과학적 비판의 칼을 무디게 만들 수 있다.

흥미로운 건 세대론이 성격유형검사와 흡사하다는 점이다.(앞 내용의 반복이 많으니 주의 바람.) 세 가지 점에서 그렇다. 첫째, 세대 개념의 불명확성을 우려하는 사회학자가 많다. 가령 어떤 사람은 밀레니얼 세대를 ‘자기밖에 모르는 세대’로, 다른 사람은 ‘자기성장에 더 집중하는 세대’라 말한다. 주장이 서로 충돌하는데도 큰 소리 없이 그냥 넘어간다. 세대의 경계가 달리 설정되어도 서로 논쟁하지 않는다. 또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이라는 게 그들만의 특성일까. 난 예전보다 더 이기적이 되었고 내 성장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그럼 나도 나이에 상관없이 밀레니얼 세대인 건가. 아무튼 적지 않은 사회학자들이 세대론을 조심스럽게 사용하라고 충고한다.

둘째, 아카데미의 염려에도 세대론은 대중의 지지를 받는다. 무엇보다 대중의 느낌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베이비붐 세대, 엑스(X)세대, 밀레니얼 세대, 제트(Z)세대로 이어지는 세대 연표를 보면 우리는 이렇게 느낀다. 어쩜 이건 딱 내 얘기야! 남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듯하다. ‘저 친구 왜 이렇게 이기적이야. 맞아, 밀레니얼 세대잖아.’ 여기서도 심리적 트릭이 작동한다. 각 세대의 특성 규정이 ‘막연하고 일반적’이어서 ‘딱 내 얘기’나 ‘딱 네 얘기’처럼 보인다.

셋째, 독일의 심리학자 하네스 차허가 말한 “세대 산업”의 위세도 중요하다. 세대와 관련한 비즈니스(예컨대 밀레니얼 세대를 다루는 경영기법 코스와 조언서, 워크숍, 코칭)의 경제적 규모가 상당할 거다. 규모에서 비롯한 비즈니스의 위세는 학술적 염려와 과학적 비판의 칼을 무디게 만들 수 있다.

성격유형검사와 세대론은 그 한계도 같다. 상대를 사람 그 자체가 아니라 성격유형이나 세대와 같은 고정관념에 따라 예단할 수 있다. 언제나 나쁘진 않겠다. 너무 바쁘거나 골치 아프게 복잡할 땐 그런 효율적인 정보처리장치에 기대야 한다. 설사 그럴 수밖에 없더라도 그 한계를 잊지는 말자. 중요한 건 고정관념이 아니라 눈앞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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