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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글로컬 라이프] 설 연휴 '보름'은 기본이라는 베트남, 갈수록 쉬는 날 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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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미지 호찌민 특파원


요즘 베트남은 설 명절인 '뗏(tet)' 준비로 한창이다. 호찌민 주석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호찌민시 통일궁 앞 거리는 노란 꽃 장식과 뗏을 축하하는 각종 조형물이 매달려 있고, 길거리에서는 빨간색과 금색 장식이 된 달력과 카드 등을 팔고 있었다. 사원에는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대형 마트에는 고급 브랜드로 꼽히는 한국 오리온의 종합 과자 선물세트와 인도네시아 브랜드인 다니사(Danisa) 쿠키 등이, 시장에서는 선물용 과일 바구니와 어린이용 전통의상 아오자이가 불티나게 팔렸다. 백화점에는 금(金)으로 만든 잉어·용·말 액자 등 고급 선물이 즐비했다.

베트남 설 명절은 같은 동양권 사람이 보기에도 유난스럽다. 우선 정부가 정한 공식 연휴 기간이 길다. 베트남 정부는 올해 뗏 연휴를 오는 23일부터 29일까지 총 7일로 정했다. 우리나라 연휴(24~27일)보다 3일이나 길다. 그나마 지난해 9일에서 이틀이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민간 영역의 실제 연휴 기간은 이보다 훨씬 길다. 웬만한 베트남 기업이나 상점들의 연휴 기간은 보름 안팎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3주 정도였다고 한다. 베트남의 명절 문화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추석은 따로 쉬지 않는 대신(중국은 중추절 하루만 휴무) 설을 길게 쉰다. 농번기인 추석은 쉬기 어려워 농한기인 설에 길게 쉬는 문화가 정착했다는 해석도 있다.

베트남 현지인들은 베트남 땅이 남북으로 길쭉해 오갈 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점도 감안한 것이라고 말한다. 교통 사정이 나아진 지금도 호찌민시에서 하노이시까지 기차로 이동하는 데 1박 2일이 걸린다.

전통적으로 뗏 준비 시기가 3주 전(새 물건을 들이고 명절 선물 등을 준비하는 시기), 2주 전(신들에게 제사 지내는 기간), 1주 전(집을 장식하는 시기) 등으로 나뉘어 있다는 점도 휴무가 긴 것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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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들어 뗏 문화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예전에는 '미리 장을 봐두지 않으면 뗏 명절에 굶어 죽는다'고 할 정도로 시장, 마트, 식당이 모두 문을 닫았는데 최근에는 연휴 기간에도 문을 여는 가게가 크게 늘고 있다. 회사에서는 외국계 공장을 중심으로 특근을 자청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삼성전자 베트남 법인은 일주일간 공식 휴무를 하는데, 마지막 날은 지원자를 받아 일부 직원이 근무하기로 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국경일은 세 배, 공휴일은 두 배 많은 수당을 주기 때문에 휴무에도 특근을 자청하는 직원이 꽤 있다"고 했다. 20대 회사원 팜 롱씨는 "외국계 회사가 많아지면서 설 명절도 점점 짧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설 명절 보너스가 '당연시'된 것도 최근 등장한 신풍경이다. 베트남 노동부가 기업 2만5000곳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올해 뗏 보너스는 평균 671만동(약 33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보다 7.1% 증가했다. 과거에는 기업이나 공장 사정에 따라 명절 보너스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는데 요즘 직장인들은 설 명절 보너스를 '13번째 월급'이라고 부를 정도로 당연시한다. 김한용 주베트남 한국상공인연합회 회장은 "명절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노사분규가 생길 정도"라고 했다. 정부 역시 기업들에 명절 상여금을 지급하도록 권장하는 분위기다.

뗏 보너스를 주지 않았다가는 좋은 인력을 잃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한 설문조사에선 베트남 직장인 4명 중 1명이 "뗏 보너스가 부족하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답했다.

[이미지 호찌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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