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에 찾은 서울 종로경찰서 민원봉사실 옆 집회신고 접수 대기 장소. 경찰서 담장을 한쪽 벽으로 활용해 만든 한 평(3.3㎡) 남짓한 가건물 안에는 6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에 식수, 담요 등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두 보수단체 회원들은 다음달 22일 토요일 집회를 신청하기 위해 번갈아 가며 대기 중이었다. 720시간(30일) 이내에 개최하는 집회를 신고하도록 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라 다음달 22일 집회는 23일 자정부터 신청하면 되지만, 좋은 장소를 선점하기 위해 공식 접수 일주일 전부터 경찰서 앞에서 '릴레이 대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은 동일 장소, 동일 시간대에 2개 이상의 집회를 열겠다고 신청하는 경우 먼저 신청한 곳에 우선권을 부여한다. 물리적 충돌이나 마찰을 막기 위한 조치다.
대기실에는 의자별로 접수 순번이 정해져 있었다. 1번 의자에 앉은 30대 남성은 "오전 10시부터 대기조로 와서 앉아 있다"며 "교체 인원이 오기까지 한 번에 몇 시간씩 앉아서 대기한다"고 말했다. 2번 의자에 앉은 20대 여성은 "한미동맹 강화 집회를 신고하려고 한다"며 "식사도 중국집 배달음식으로 때우며 여기서 대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리를 잠깐만 비워도 순번에서 밀리기 때문에 집회 신고 대기자들은 식사도 배달음식으로 때워 가며 교대자가 올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이틀 후인 19일 다시 찾은 대기실에는 다른 보수 시민 김 모씨(62)가 1번 순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규탄 대회에 주로 나간다는 김씨는 "특정 단체에 소속돼 있지 않지만 집회 신고 대기는 뜻이 맞아서 돕고 있다"며 "보수 집회 주최 측들끼리는 서로 누군지 알기 때문에 1번 순번 자리를 돌아가며 맡아 준다"고 말했다. '박사모'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다른 장년층 남성은 "수요일 자정이 되면 보통 각 단체들이 다 와서 접수를 준비한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야간에는 통상 경찰서 1층 현관에 위치한 민원접수실에서 집회 신고서를 받는다.
그러나 종로경찰서는 '한 달 뒤 토요일 집회'만큼은 이처럼 별도의 집회신고 대기장소에서 신청을 받는다. 집회 주최 측이 경찰서 현관 앞을 장기간 점유하면서 다른 민원인들을 방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방편이다.
최근 수년간 광화문 일대 등에서 집회가 급증하면서 집회 주최 측 간 신고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서울역 광장과 덕수궁 대한문 앞 등에서 열리는 집회를 관할하는 남대문경찰서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남대문경찰서 민원인 대기 공간에서 만난 보수단체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회원 이종천 씨(67)는 "내가 몸담고 있는 단체는 하루에 4명씩 교대하며 집회 신고 대기를 한다"면서 "3주에 한 번 정도 내 차례가 돌아온다"고 말했다. 이씨는 영하권의 쌀쌀한 날씨 탓에 자리에 1인용 전기요를 깔아놓고 무릎에 담요를 덮은 채 앉아 있었다.
1·2순위 의자 뒤에는 초시계가 하나씩 달려 있고 각각 10분의 타이머가 설정돼 있다. 화장실 등 급한 용무를 볼 때 잠깐 자리를 비울 수 있지만, 10분이 넘어가면 다음 순번으로 자리 권한이 넘어가게 된다. 경찰 관계자는 "집회는 신고제이기 때문에 1순위 신고자가 우선권을 갖는다.
[이윤식 기자 / 박윤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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