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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내가 화분을 치울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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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ㅣ우리 아이 마음 키우기

3~4년 전이었다. 수업도 끝나고 방과후도 끝난 오후, 학교가 한산하고 고요한 그런 시간이 잠깐 있다. 적막함에 잠긴 채 사색하며 복도를 걷는데 누군가 부른다.

“선생님~” “어… 어… 영순아.” 졸업한 제자가 갑자기 찾아왔다.

“정말 오랜만이구나. 지금 중학교 몇 학년이지?” “저, 고등학생이에요.”

시간 참 빠르다. 학생들을 졸업시킨 담임 기억 속에는 아이들의 시간이 초등 6학년에 멈춰 있다. 교실에 들어와 따뜻한 차 한잔 주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 이야기 속에 멈춰진 시간이 조금씩 흘러가기 시작한다.

“교실이 예전 그대로네요. 책상도 그대로고…. 사물함은 바뀌었네요. 어! 지금도 교실에서 식물 키우네요. 맨날 아침마다 물 주고 그랬는데….”

이런저런 멈춰 있는 것들과 변화된 것들을 찾고 있는 제자를 보고 있으면, 다시금 6학년 때의 모습이 보인다. 조용히 물어보았다. “요즘, 친구들이랑 괜찮아?”

조용히 물어본 질문이었지만 영순이에게는 갑작스레 훅 치고 들어온 뭔가 있는지,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래, 그때도 네가 친구들이랑 힘들면 교실 화분에 혼자 물 주면서 맘을 달래곤 했지.”

“선생님 그거 알고 계셨어요?”

“왜 모르겠냐. 네가 물을 얼마나 자주 많이 줬는지 화분에 곰팡이가 필 정도였는데.”

“하하하. 선생님!”

자세한 이야기를 듣진 못했다. 학원을 가야 한다고 자리를 일어섰다. 6학년이나 고등학생이나 똑같았다. 그때도 그랬다. 뭔가 내게 말하고 싶었으나 학원을 가야 한다고 자리를 일어났다. 그래도 자리를 일어선 발걸음이 가벼워짐은 분명했다.

“담에 또 인사드리러 올게요.”

“그래, 아직 퇴직하려면 20년은 남았으니까, 언제든 물 주고 싶으면 와.”

사립초등학교에 근무하면 좋은 점이 있다. 한자리에서 이삼십 년을 기다릴 수 있다. 떠나간 아이들은 적어도 언제든 갑작스레 위로가 필요하면 달려올 조그만 교실과 화분과 옛날 담임이 있다.

과거의 나를 보며 지금의 나를 달래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누구든 달려가기만 할 순 없다. 제자들을 졸업시킬 때면 늘 안쓰럽다. 졸업과 동시에 적어도 6년 동안 얼마나 ‘인-서울’을 향해 뜀박질하고 있을지, 정규직을 향해 또 달리고 있을지, 지금 당장 뛰지 않고도 그냥 같이 걸어가도 되는 시스템을 만들어 주고 싶다. 그럴 수 없다면 적어도 잠깐 쉬어갈 수 있는 곳이라도 만들어 주고 싶다. 그래서 올해도 어김없이 겨울방학 중 화분의 흙을 새걸로 갈아엎는다. 그런데 조그만 버섯이 보인다.

“누구냐 넌, 도대체 얼마나 물을 줬길래, 햇볕 드는 창가에 버섯이 피었냐?”

다행이다. 적어도 앞으로 16년은 그 친구를 기다려 줄 수 있다.

한겨레

김선호 ㅣ 서울 유석초등학교 교사, <초등 자존감의 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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