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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수사정보 유출’ 판사들, 검찰 실형 구형에 “진실은 길을 잃지 않는다”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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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신광렬 판사에게 징역 2년, 조의연·성창호 판사에게 각 징역 1년을 선고해달라고 검찰이 법원에 요청했다.

검찰은 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유영근) 심리로 열린 신·조·성 판사에 대한 결심 공판에서 이같이 구형했다. 검찰은 “엄중한 사법적 단죄를 통해 더 이상 재판이 사법행정권자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되지 못하게 하고, 헌법상 재판의 독립을 더 굳건히 확립되게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경향신문

2017년 5월2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의 대법정으로 통하는 출입구에 사진기자들의 취재용 사다리가 놓여있다. 김창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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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판사는 2015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으로 있으면서 영장 담당 판사들로부터 ‘정운호 게이트’ 관련 수사 정보를 받아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혐의(공무상 비밀누설)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성 판사는 영장을 담당하면서 신 판사에게 수사기록 내용을 알려줘 정보 유출을 공모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법관에 대한 검찰 수사를 저지할 목적으로 수사 정보를 수집하는 데 세 사람이 협조했다고 본다.

검찰은 구형 의견에서 영장 담당 판사의 의미를 짚었다. 헌법이 체포·구속·압수수색 등의 강제수사를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따라서만 하도록 규정해 영장 판사에게 시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중요한 임무를 맡겼는데 피고인들이 이를 외면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피고인들은 국민의 중대한 기본권 보장을 위해 수사기밀을 취급하게 된 것을 악용해 헌법이 부여한 중차대하고 신성한 직무의 본질을 망각했다”며 “영장 재판을 수사기밀을 빼돌리는 루트로 전락시켰고, 헌법상 영장주의의 취지를 오염시켰다”고 했다.

피고인들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신 판사 측은 정운호 게이트 관련 수사 정보를 정리해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이는 조사가 필요한 법관 비위 관련이거나 언론·국회 대응 등 사법행정상 목적에 의한 것이라서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조·성 판사는 통상적인 중요사건 보고 절차에 따라 신 판사에게 보고했을 뿐이고, 신 판사가 법원행정처에 알려줬는지는 전혀 몰랐다고 했다.

피고인들은 모두 최후진술에서 검찰 기소가 타당하지 않다며 재판부가 현명한 판단을 내려달라고 호소했다.

신 판사는 “현직 법관으로 공개소환을 거쳐 세 차례 검찰 조사를 받은 뒤 피고인석에 앉아있는 데 대해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며 “사법 신뢰의 실추를 막기 위해 대처한 것에 공무상 비밀누설이나 직권남용을 들이댄다면 과연 누가 사법행정을 수행할 것인지 심히 우려스럽다”며 “검찰의 처분(기소)는 사실관계나 법리, 정당성 면에서 모두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조 판사는 “(공소장에서) 저는 하루하루 묵묵히 재판 업무를 하는 보통의 판사가 아닌, 부당한 목적을 위해 법관의 양심을 저버린 부도덕한 사람이 돼있었다”며 “법관으로서의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느낌이었고 불과 10개월 전까지 (서울중앙지법) 502호 법정에서 형사재판을 진행하고 있던 탓인지, 지금도 피고인석에 선 제가 낯설기만 하다”고 했다. 그는 “진실은 길을 잃지 않는다는 말처럼 제 천직이고 일터인 이 법정에서 정당한 평가가 이뤄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했다.

성 판사는 “검찰의 논리는 저 개인으로서도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법관과 재판을 이토록 왜곡해 공격할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검찰이 이런 논리로 법관을 함부로 기소하면, 법관은 자신이 한 재판에 대해서도 혹시라도 나중에 범죄행위로 추궁당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1심 판결 선고는 다음달 13일 오전 10시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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