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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월)

현직 판사, 이재용 재판부 비판 “준법감시위 효과 낮을 가능성 커…일회성 이벤트 아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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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파기환송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가 이 부회장 양형에 준법감시제도를 반영하려는 듯한 입장을 보인 것을 두고 현직 부장판사가 우려를 표하는 글을 올렸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설민수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51·사법연수원 25기)는 지난 17일 법원 내부 통신망인 코트넷에 ‘정준영 부장판사님께’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삼성이 새로 도입하겠다는) 준법감시위원회가 내부 정보에 관해 어느 정도의 접근성을 가질지 등에 관해 정해진 것이 없다면 아무리 화려한 면면이라도 실제 효과는 낮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크게 세 가지 문제점을 들며 준법감시위의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고 했다. 먼저 설 부장판사는 한국에서는 사외이사 제도로 불리는 미국의 독립이사 제도가 회사 내부 정보에 접근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설 부장판사는 “언론에서 떠드는 ‘준법감시위원회’가 무언지는 잘 모르겠다”며 “굳이 찾으면 제가 아는 한 미국의 독립이사로 구성된 감사위원회가 기능상으로 제일 가까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사외이사라는 제도로 현실로 유형화됐다”며 “사외이사라고 하면 회사 내 의사결정구조의 문제점이나 회사내 문제행위를 바로 잡는다”고 했다. 이어 “사외이사제도의 효능은 기본적으로 사외이사가 회사의 정보 흐름이나 회사 내부의 사정에 정통할 수 있을 때 나타난다”며 “현실에서 ‘준법감시위원회’가 내부 정보에 관해 어느 정도의 접근성을 가질지, 회사에 대한 비밀유지의무 등에 관해 얼마나 자유로울지 등에 관해 정해진 것이 없다면 아무리 화려한 면면이라도 실제 효과는 낮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설 부장판사는 미국 에너지기업 엔론사 분식회계 사건을 예로 들었다. 그는 “지금은 사기 사건의 대명사로 굳어진 Enron사의 이사진은 미국 최고의 사외이사 구성으로 상을 수상할 정도로 사회적 다양성, 지명도 등에서 거의 최강의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었다”면서도 “대규모 회계부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내부고발자가 언론에 공개하기 전에는 전혀 몰랐다”고 했다.

설 부장판사는 “규모가 크고 속칭 잘나가는 회사에서 특별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외이사가 이를 반대하거나 판단하기 어렵다는 사례는 미국에도 얼마든지 있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관련 회사집단(삼성)은 한국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글로벌한 독점력을 일부 부분에서 보유하고 있다. 즉, 무얼해도 한국에서는 망하기 보다는 잘나가는 쪽”이라며 “어떤 행위가 위법행위인지 최종적으로 특별히 문제되어 드러나기 전에는 사실 알기가 거의 불가능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설 부장판사는 “지배주주는 일종의 원숭이 무리 속에 800파운드짜리 거대 고릴라”라며 “그 모든 행동을 의심해서 볼 수밖에 없고 지배구조에 관한 독립이사나 그 어떤 보호장치로도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존재”라고 했다. 일정 지분을 갖고 있는 소수가 기업 전체를 지배하는 한국 특유의 재벌체제 구조를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제가 아는 정준영 부장판사님께서는 외국의 제도를 한국의 척박한 현실에 적용해 제도화하려고 그동안 남달리 노력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도 “준법감시위원회’도 그런 의미에서 재판과 관련해 1회성 이벤트가 아닌 그런 의미를 가졌으면 한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서울고법 형사1부는 지난 17일 열린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 공판에서 삼성이 새로 도입하겠다는 준법감시제도가 실질적이고 효과적으로 운영되는지를 평가할 전문심리위원으로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을 지명했다. 이에 준법감시제도 도입을 이 부회장의 양형에 반영하려는 듯한 재판부 입장에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납득할 수 없다”며 강력 반발했다.

경향신문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해 10월25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첫 재판을 마치고 청사를 나서고 있다. / 이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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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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