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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남산예술센터, 40주년 '5·18' 조명···한강 '소년이 온다' 토대(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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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휴먼 푸가'·'더 보이 이즈 커밍' 공연

30대 주목 받는 작가들 작품들도 공연

서울예대로부터 임대해 사용하는 공간

올해 12월 계약 종료, 공공극장 논의 계속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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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남산예술센터 2020 시즌 프로그램 발표 기자간담회. (사진 = 서울문화재단 제공) 2020.01.21.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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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서울문화재단(대표이사 김종휘) 남산예술센터가 올해 40주년을 맞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기억한다. 21일 오후 공개한 올해 시즌 라인업에 5·18 시대의 아픔을 기억하는 두 개의 작품이 포함됐다.

지난해 시즌 프로그램이었던 '휴먼 푸가'(원작 한강·연출 배요섭)(5월 13~24일)와 '더 보이 이즈 커밍(The boy is coming)'(원작 한강·연출 마르친 비에슈호프스키)(5월 29~31일)에 잇따라 선보인다.

두 작품은 모두 5·18를 다룬 작가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를 토대로 제작된다. 지난해 남산예술센터 시즌 프로그램으로 첫 선을 보였던 '휴먼푸가'는 파격적인 무대연출과 공연전개로 주목 받았다. 그해 연말에 한국연극평론가협회에서 주관한 '2019 올해의 연극 베스트3'에 선정됐다.

'소년이 온다'는 2인칭 '너'로 지칭되는 소년 '동호'의 죽음을 중심에 둔 소설로 일곱 장별로 시점, 화자를 달리한다. 이런 태도는 희생자들을 감히 위로하거나 함부로 판단하는 우에서 벗어난다. 조각 같은 장면들을 결국 퍼즐처럼 결합해 거대한 아픔을 형상화한다. '휴먼푸가'는 여전히 제대로 된 장례식을 치르지 못한 이 역사적 아픔에 대한 연극적 장례였다. 소설을 제사장 삼아 인간적 예의를 최대한 차려냈다.

'휴먼푸가'의 연출인 배요섭 공연창작집단 뛰다 대표는 이날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열린 시즌 발표 간담회에서 "20년 동안 연극을 해오면서 연극의 방식과 삶의 방식이 어떻게 견제하고 만날 수 있는가 질문을 해왔다. 그것이 첨예하게 대립한 것이 '휴먼푸가'"라고 말했다.

"일상에서 외면하고 있지만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 것들이 극단적으로 나왔을 때 대규모 학살이 믿을 수 없는 형식으로 나온다"면서 "그것을 어떻게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다"고 전했다.

작년 '휴먼푸가'를 작업하면서 자신과 배우들 그리고 스태프까지 모두 힘들어했기 때문에 올해 공연 역시 두렵다고 했다. 지난해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총 11번의 공연을 했는데 한 퍼포머는 너무 힘들어 결국 마지막 4회 공연 무대에는 오르지 못했다. 공연이 끝난지 3개월이 지난 지금, 아픔의 증상이 나타나는 배우들도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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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남산예술센터 '휴먼푸가'. 2019.11.06 (사진 = 이승희 제공)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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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번에도 버텨낼 수 있을지 걱정이 돼요. 하지만 계속 다짐을 하고 있죠. '휴먼 푸가'의 중요한 점은 '증언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말을 할 것인가'에요. 계속 고민해나가고 있습니다." '휴먼푸가'는 올해 남산예술센터 공연 뒤 같은 달 29~31일 광주 빛고을 시민문화관 무대에도 오른다.

올해는 배 연출이 이끄는 공연창작집단 뛰다가 설립된 지 2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휴먼푸가'를 끝으로 극단을 정리하기도 했다. 배 연출은 "20년 동안 추구해온 방식들을 맺어주는 시점에서 여러가지 고민들이 맞닿았다"고 했다. 배 연출은 내년까지 해온 작품들의 아카이빙 작업과 워크숍, 출판 등의 작업을 한 뒤 연극 동료들과 '극단 장례식'을 한다고 예고했다.

'더 보이 이즈 커밍'은 폴란드 연출가 마르친 비에슈호프스키의 작품이다. 작년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초연했다. 남산예술센터는 그동안 베를린 샤우뷔네 '햄릿'(2010), '고골의 꿈'(2010), '델루즈(DELUGE): 물의 기억'(2015) 등 몇 편의 해외 작품들을 초청한 적이 있다. '동시대 창작초연 중심의 제작극장'이라는 목표 아래 대부분 국내 초연들로 채웠다.

이번 '더 보이 이즈 커밍'은 국내 창작초연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폴란드의 시선으로 5월의 광주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올해 5월 '휴먼 푸가'와 함께 극장의 무대에 오르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남산예술센터는 판단했다.

남산예술센터는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광주의 아픔을 기억하고, 반복하지 않는 미래를 고민하는 것에 의미 있는 만남이 될 것이라 생각해서 시즌 프로그램으로 선정했다"고 소개했다. '휴먼푸가'는 폴란드에서도 공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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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우연 극장운영실장, 남산예술센터 2020 시즌 프로그램 발표 기자간담회. (사진 = 서울문화재단 제공) 2020.01.21.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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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남산예술센터는 이 두 작품을 비롯 올해의 시즌 프로그램 5편을 공개했다. 이번에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대부분의 작품이 30대 젊은 창작자들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1930년대부터 1950년까지의 만주를 그린 '왕서개 이야기'(작 김도영·연출 이준우), 1980년대 이후의 한국 사회의 아픔을 이야기한 '아카시아와, 아카시아를 삼키는 것'(작·연출 김지나), 기독교의 역사를 바라본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공동창작·연출 임성현)가 있다.

우연 남산예술센터 극장운영실장은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젊은 세대 작가들이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기대가 크다"면서 "2010년대 블랙리스트, 세월호, 미투 운동을 겪으면서 기존 세대관의 가치관이 무너져내렸다. 젊은 세대가 앞으로 방향성에 대한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미래가 불투명한 이 극장에 어떤 작품을 세울 것인가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했다.

'왕서개 이야기'(4월 15~26일)는 남산예술센터 상시투고시스템 '초고를 부탁해'로 시작해 제작 전 콘텐츠를 사전에 공유하는 작가 발굴 프로젝트인 '서치라이트(Searchwright)'를 거쳐 시즌 프로그램으로 안착된 작품이다. '왕서개'라는 인물의 복수를 통해 1930년대부터 1950년대에 이르는 세계사 아픔을 이야기한다. 가해의 역사가 진실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마주했을 때에 대해 질문한다. '왕서개 이야기' 이준우 연출은 "가해자로서 타인의 아픔을 느끼는 감정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고 했다.

'아카시아와, 아카시아를 삼키는 것'(6월24일~7월5일)은 1980년대부터 우리 사회가 낳은 여러 사건의 피해자와 그 자녀들의 기억을 무대화했다. 김지나 연출은 "수채화처럼 방울방울 퍼져 있는 이야기가 결국 마지막에 유화의 그림처럼 겹쳐서저 딱딱하게 굳어 있는 모습으로 나올 것"이라고 예고했다.

시즌을 마감하는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9월 2~13일)는 형식에 잠재돼 오랫동안 잠들어 있는 예배의 제의성과 연극성을 부활시키기 위해 제사장의 위치에 기독교가 배제해온 '퀴어'(Queer·성소수자를 지칭하는 포괄적인 용어)를 전면에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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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2020 남산예술센터 시즌' 프로그램. (사진 = 서울문화재단 제공) 2020.01.21.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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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예술센터는 "주류 기독교가 독점해온 사랑, 공동체, 믿음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한 퀴어를 둘러싼 불안과 혐오, 기독교의 위기와 분열을 한곳에 담아내 극장과 연극의 공공성을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임성현 연출은 "원래 예배는 예수의 가르침과 함께 삶과 죽음을 같이 실천하고 다짐하는 자리였다. 그 시대에서 수고하고 짐진 자들 무대에 세우고 같이 춤추고 했다"면서 "우리는 그런 자리를 위한 공연을 하려 한다. 그래서 현재 탄압받는 퀴어를 제사장으로 세우려고 한다"고 전했다.

남산예술센터는 2017년부터 잠재력 있는 작품을 발견하고, 완성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는 과정을 공유한 '서치라이트'를 올해도 이어간다. 3월에 극장, 관객, 기획자, 예술가들과 함께 작품을 서로 공유한다.

또 격년으로 진행한 일본과 중국의 낭독공연을 처음으로 동시에 추진한다. '일본희곡 낭독공연'(2월 21~23일), '중국희곡 낭독공연'(3월 24~29일)을 차례로 선보인다. 작년 한 해 동안 추진해온 특정 회차 '배리어프리(Barrier free) 공연' 역시 올해도 이어간다.

한편 1962년 개관한 남산예술센터는 2009년부터 서울시가 서울예술대학교(학교법인 동랑예술원)로부터 연간 10억원에 임대해 오고 있다. 서울문화재단이 남산예술센터라는 이름을 걸고 위탁 운영 중이다.

하지만 서울예술대학이 2018년 초 2019년 6월 계약을 종료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연극계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서울예대가 사립학교재단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드라마센터 건축과정과 토지확보 과정을 들여다볼 때, 태생적으로 공공교육기관이라는 주장이 불거지고 유치진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등 다방면에서 쟁점이 불거지고 있다. 2020년까지 계약이 연장됐지만 논쟁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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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남산예술센터. 2018.10.12. (사진 = 서울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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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예술센터는 아직 극장의 미래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이날 올해의 시즌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젊은 작가들도 60년을 향해 가고 있는 남산예술센터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다. '서치라이트'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던 김지나 연출은 "관객으로서도 이곳에 와서 영감을 받았다"면서 "창작자 입장에서는 제작극장이 많지 않은데 극장 관계자분들과 초기 작업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임성현 연출은 "마지막 시즌일지도 모르는 올해 젊은 작가들에게 기회를 줬다"면서 "남산예술센터가 연극계에 기여한 것이 크다. 저희 작품이 남산예술센터 공간을 주제로 삼은 것은 아니지만 극장이 사라지지 않고 진정한 대부흥을 이뤘으면 한다'고 바랐다.

우연 극장운영실장은 "현재는 현장 예술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 극장을 둘러싼 논쟁은 공공극장으로서의 지속성 내지 진정 주인은 누구인가에 대한 것"이라면서 "서울시와 서울예대 측이 논의 중인데 사실 아직 이렇다할 답을 받은 것이 없는 것으로 안다. 6월이 결정의 '데드라인'이라 그 전에 결론이 날 것"이라고 했다.

김종휘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올해는 서울시 내에 문화 인프라가 확충되는 와중에 남산예술센터 방향과 운영의 철학을 확인하면서 성과를 확장하고 다지는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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