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고대 경영학과 창업동아리 출신인 강성우(29)·안승재(30)씨는 2018년 3월 크라우드 펀딩〈키워드〉 플랫폼 카카오메이커스를 통해 탈취제와 향수를 합친 '데일리 리프레셔' 제품을 출시했다. 창업 자본금은 제품 개발비 1500만원뿐. 생산 공장도 없고, 판매처도 없었다. 시제품을 만들어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 올려, 자금 6억1000만원을 모았다. 화장품 전문 생산업체에 제조를 맡기고, 물류회사를 통해 배송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10만개를 팔아 매출 10억원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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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유경제·크라우드펀딩·온라인플랫폼을 발판 삼아 자영업에 뛰어드는 청년이 늘고 있다. 온라인플랫폼이 주문·예약·마케팅·홍보·투자금 유치까지 중개하면서 창업 비용 부담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퇴직금을 가진 은퇴한 중년 세대'가 이끌던 자영업 시장에 '스마트폰과 아이디어를 쥔 청년 세대'가 등장하면서 기존 외식·서비스업·제조업 창업 시장도 변화하고 있다.
◇94년생 미용실 원장
지난해 11월 서울 왕십리역 근처 대로변에 공유주방 업체 이유있는주방이 문을 열었다. 초역세권 요지에 3층 건물(연면적 300㎡ 규모)을 통째로 쓰는 곳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공유주방은 배달 음식을 만드는 주방 시설만 갖추면 되기 때문에 임차료가 싼 변두리 외곽 지역에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유있는주방 정준수(47) 대표는 "B급 상권에 숨어 있어서 '다크 키친(dark kitchen)'이라고 불리던 공유주방이 이제는 노른자 상권으로 진입하는 추세"라고 했다.
공유주방은 보통 1000만원대 보증금에, 매달 100만~200만원 정도 시설 사용료와 임차료를 내고 이용하면 된다. 고정 임차료 대신 매출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받는 곳도 있다. 공유주방에선 손님은 받을 수 없고, 오로지 배달 기사만 오갈 수 있다. 추가 비용을 내고 공유주방 업체에서 메뉴 개발 컨설팅을 받는 창업자도 있다.
현재 공유주방은 배달 수요가 폭발하는 서울 강남 일대에 몰리고 있다. 그동안 임차료가 비싼 서울 강남 외식 시장은 기업형 프랜차이즈의 주무대였다. 하지만 '2030 공유주방 사장님'들이 배달 플랫폼과 손잡고 자본력이 있는 외식 기업이 주도하던 강남 상권에 새로운 경쟁자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업계에서는 강남 지역에서 하루 평균 6만 건의 배달 주문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서울 삼성동과 강남역에 있는 공유주방 고스트키친에는 88년생(生) 보쌈집 사장, 92년생 마라탕집 사장, 93년생 짬뽕집 사장 등이 푸드코트처럼 생긴 주방시설에 모여서 일한다. 고스트키친 최정이(45) 대표는 "40개 입점 업체 중 17개 점포 사장이 20~30대"라며 "급변하는 트렌드를 빨리 파악하고, 온라인 플랫폼 활용에 능숙한 밀레니얼 세대가 요식업에 뛰어들고 있다"고 했다.
공유경제를 활용한 창업의 영역도 넓어지고 있다. 좋은 상권에서 고급 미용 장비를 나눠 쓰는 공유 미용실까지 등장했다. 최근 서울 강남역에 688㎡(약 208평) 규모 공유 미용실 팔레트에이치가 문을 열었다. 강남에서 200평 미용실을 창업하려면 최소 6억원이 필요하고, 1인 미용실 개업도 1억원 이상이 든다. 최민지(26) 원장은 "1000만원이 안 되는 금액으로 강남에서 단독 개업을 하게 될 줄은 상상치 못했다"고 했다. 팔레트에이치 김영욱(31)·나원주(32) 대표는 "입점 원장님과 소비자 모두 디지털에 친숙한 2030세대"라고 했다.
공유경제가 고용 시장과 부동산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공유주방 업계 관계자는 "초기 진입 비용은 낮지만, 판매 과정에서 배달 대행 또는 판매 중개 플랫폼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수익성이 나빠질 수 있다"며 "공유주방이 계속 늘어나면 결국 가격 경쟁이 치열해질 거고, 식품의 위생과 청결 관리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뉴욕 맨해튼에 침투 중인 공유주방 현상을 다룬 기사에서 "사업 모델에 대한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있다"며 "공유 주방으로 오히려 부동산 임차료가 오를 수 있다"고 했다.
◇디지털로 기회 잡는 '게릴라 창업'
유통·서비스업계에서는 점차 디지털에 익숙한 점주의 영업력이 좋아질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바뀌면서, 젊은 자영업자가 늘고 있다고 분석한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 2011년 숙박 음식점업 20~30대 창업자 비율은 10.6%였지만 2018년 14.9%로 늘었다. 같은 기간 50대 이상 창업자 비율은 64.9%에서 56.1%로 줄었다.
국내 최대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와디즈에선 작년 한 해 1435억원의 투자금이 모였다. 2012년 설립 이후 6년 동안 모인 누적 자금 조달액(1017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방문자 70% 이상이 20~30대다. 청년들이 십시일반해 창업가를 키우는 구조인 셈이다. 2년 전 생활용품 제조업체 큐어라이프를 설립한 양혜정(30) 대표 역시 크라우드 펀딩 덕을 봤다. 양 대표는 "시중에 없던 다용도 빗자루를 개발했지만, 양산할 돈과 판로(販路)가 없어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찾았다"며 "인터넷에서 소문이 나면서 수억원 투자금이 금세 모였다"고 했다. 그의 빗자루는 일본 최대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마쿠아케'에서도 판매하고 있다. 창업 2년 만에 70만개를 팔았다. 연 매출은 30억원에 이른다.
[창업 준비생들 필독!] 크라우드 펀딩으로 투자 받기는 쉬워요… 문제는 그 다음부터
외국계 의료기 회사에서 제품 디자이너로 일하던 이연택(35)씨는 빈 병에 꽂아 울림통 효과를 이용하는 병마개 형태 소형 블루투스 스피커 '코르크 스피커'로 2016년 열린 정부 주최 '도전! K-스타트업 경진대회'에서 6000여 팀 중 7위로 입상했다. 그해 10월 직장을 떠나 스타트업 이디연을 설립하면서 본격 창업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마땅한 투자자를 찾기 어려웠다. 이때 문을 두들긴 곳은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와디즈'였다. 이 대표는 "처음엔 인터넷에 제품 소개를 한 것만으로 사람들이 돈을 보내올지 의문이었다"며 "하지만 7차례 펀딩에 성공해 2억원이 모이는 걸 보고 많이 놀랐다"고 말했다.
이 대표 말처럼 크라우드 펀딩 창업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쉽다. 모든 과정이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사이트에 회원 가입을 한 뒤 온라인으로 펀딩을 신청하면 된다. 사업계획서와 창업가·제품 소개, 목표 금액 등을 보내면 10~14일 정도의 심사를 거친다. 심사 통과 후 펀딩이 시작되는데, 플랫폼 사이트 방문자들이 제품이 마음에 들면 결제 예약을 하는 방식이다. 목표 금액만큼 돈이 모이면 자동 결제되고, 그렇지 않으면 펀딩이 무산된다. 플랫폼 수수료는 약 10~30% 수준이다.
작년 한 해 와디즈에서 진행된 펀딩만 8000여 건이다. 전문가들은 크라우드 펀딩이 '전가의 보도'는 아니라고 말한다. 신동원 성신여대 교수는 "펀딩 이후에도 신제품을 개발하고, 공격적인 투자 유치를 계속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며 "자금이 말라붙는 순간 창업은 실패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주영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디지털 펀딩이 늘어나면 '가짜 펀딩' 같은 조작도 생겨날 수 있어 창업자와 이용자 모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불특정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모은다는 뜻이다. 인터넷에 자신이 생산하고 싶은 제품·서비스 등을 올리고, 그걸 구매하고 싶은 사람들로부터 돈을 모은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제품·서비스를 만들어 돈을 낸 사람에게 제공한다. 돈이 없어도 창업이 가능하고, 재고가 남지 않는다.
한경진 기자(kjhan@chosun.com);안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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