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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만물상] ‘中 폐렴’보다 무서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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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베이징은 유령 도시 같았다.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로 쓰러지는 시민이 속출하자 학교는 문을 닫았고 외국인은 앞다퉈 탈출했다. 옆집 사람이 죽어나가는데도 베이징시는 “곧 통제된다”는 선전만 반복했다. 발표되는 감염자와 사망자 규모가 터무니없이 적었다. 2002년 말 장쩌민에서 후진타오로 정권이 교체된 상황에서 ‘방역에 실패했다’는 비난을 피하려고 통계를 축소했기 때문이다. 대신 사스 전용 병원을 밤새 짓는 ‘쇼’를 보여줬다. 시민은 병보다 거짓말하는 정부가 더 무서웠다.

▶공산당 지도부가 하이난 서기로 내려 보냈던 왕치산(王岐山)을 베이징 시장으로 급히 불러올렸다. 왕치산은 첫 회의에서 "하나는 하나고, 둘은 둘이다. 누구도 정보를 횡령할 수 없다"고 했다. 감염자와 사망자를 매일 솔직하게 공개했다. 감염자가 갑자기 100명씩 불었지만 시민은 정부를 믿기 시작했다. 이후 사스 방역 조치가 먹히면서 그해 9월 불길이 잡혔다. 37국에서 774명이 사망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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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의료계에선 중난산(鐘南山) 중국공정원 원사가 '사스 영웅'이다. 당시 광저우 호흡기질환연구소장으로 '사스 창궐' 사실을 숨김없이 밝혔다. 그러고는 "치료할 수 있다. 가장 위중한 환자를 내게 보내라"고 했다. 38시간 연속 응급 환자를 치료했다. 그 뒤로 전염병이 퍼지면 중국인은 정부 발표보다 중난산 말을 더 신뢰한다. 2009년 신종플루, 2013년 조류인플루엔자가 유행할 때도 그랬다.

▶중난산이 그제 중국 TV에서 "현재 '우한 폐렴'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사람 간 전염되는 것이 확실하다"며 우한에 가지 말라고 경고했다. 양쯔강 중류인 우한에서만 환자 250여명이 발생해 6명이 사망했다. 사스 치사율 9.3%보다는 낮지만 연인원 30억명이 이동하는 '춘제(설)' 연휴가 시작된 만큼 상황이 심각해질 수 있다. 벌써 베이징·상하이·서울 등에서 환자가 발견됐다. 중국 정부는 이번에도 축소 의혹을 받는다. '우한 폐렴'이 다른 지역으로 확산했다는 홍콩 보도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공산당 관료는 불리한 통계나 자료가 있으면 일단 숨기고 본다. 자유 언론이 없으니 숨길 수 있다는 생각이 관료들에게 팽배해 있다. 은폐 조작이 습관이 되는 것이다. 시진핑이 관료들에게 숙청 칼을 휘두르고 나서 복지부동은 더 심해졌다고 한다. 그 사이에 작은 불씨가 점점 커져 대형 화재로 번진다. 공산당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안용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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