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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학벌 특권효과 정책적으로 차단해야 대치동식 사교육 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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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의 탄생, 대치동 리포트] <7>전문가 좌담

“학부모 노력을 지지하는 움직임이 공적영역서 이뤄져야 대치동 정화돼”

“지원자 배경 고려해 역차별하는 적극적 우대 조치 적용시켜야”
한국일보

박재원(왼쪽부터) 아름다운배움 소장, 신소영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선임연구원,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가 지난 1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대치동’으로 상징되는 한국 사회의 사교육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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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대치동은 중산층의 대물림 욕망을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의대, 명문대 진학을 통해 학력과 부, 계급을 자식에게 물려주려는 부모들은 오늘도 대치동의 문을 두드린다. 학원은 부모의 불안을 부추겨 더 많은 학생을 끌어 모으고, 대학 서열을 체화한 학생들은 문과는 ‘서연고’ 이과는 ‘서카포’를 주문처럼 외운다. 대치동은 대입이 곧 지상 최대의 목표가 돼 버린 한국 교육 현실의 축소판이다.

한국일보는 ‘학벌의 탄생, 대치동 리포트’ 기획을 통해 사교육 최전선, 대치동에서 벌어지는 실태를 집중 조명하고 학벌이란 사회적 자본에 구성원 대다수가 매달릴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적 원인을 살펴봤다. 교육부가 해마다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유치원과 초ㆍ중등 학부모 약 98%(2019년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여론조사)가 사교육을 시키고, 급감하는 학령인구에도 ‘명문대 입시경쟁은 유지될 것(47.5%)’이라는 비관이 팽배하다. 수십년 간 이어져 온 이 견고한 학벌 사회의 토대에 균열을 낼 방법은 없을까. 현장과 학계에서 오랜 시간 이를 고민해 온 박재원 아름다운배움 소장, 신소영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선임연구원,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를 한국일보사 16층 회의실에서 만나 물었다.

-대치동은 어떤 곳이고,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인가.

박재원 아름다운배움 소장(이하 박)=1980년대말, 상류층 자녀들만 다닐 수 있던 고가의 전문 학원이 강남 테헤란로 북쪽에서 인근 개발 지역인 대치동(테헤란로 남쪽)으로 옮겨가면서 중산층 학부모가 상류층의 사교육 소비 행태를 따라가게 된 게 대치동 사교육의 시작이다. 학부모들에게 대치동은 ‘나와 동질성을 갖는 중산층이 사는 곳’이다. 나는 ‘대치동 코스프레’라는 말을 쓰는데, 그래서 대치동 사교육이 움직이면 전국의 중산층 밀집 지역인 수도권 위성 도시, 대구 수성구, 부산 해운대구 이런 곳도 실시간으로 움직인다.

신소영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선임연구원(이하 신)=대치동은 그냥 동네 이름이 아니라 거대 자본이 집적된 최상위 사교육의 고유명사가 됐다. ‘인강(인터넷 강의)’이 들어온 지 20년 넘었는데 여전히 대치동이라는 오프라인 시장이 유효하다. 왜 그런가 보면 같은 학원이라도 대치점은 ‘가장 잘 가르치는 곳’ ‘가장 고급스러운 곳’으로, 프리미엄 상품처럼 시장에 인식되기 시작했다. 대치동 입성을 못한 사람은 배제되고 저렴한 다른 지역에서 대체재를 찾는 분위기다. ‘중계동이 강북의 대치동이다’ ‘대구 수성이 지방의 대치동이다’라는 말처럼 전국의 사교육 시장을 견인하게 됐고 지역으로의 확산을 대치동이 이끌었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이하 조)=대치동은 대입제도가 바뀌면, 이에 맞춰 새로운 사교육 상품을 개발할 수 있는 곳이다. 예를 들면 고교학점제가 2025년 시행을 목표로 연구 중인데 대치동에서는 이미 ‘고교학점제에 대한 분석이 끝났다’는 말이 돈다.
한국일보

박재원 아름다운배움 소장. 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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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종(학생부종합전형) 코디’도 그렇고, 대치동은 정책 변화에 즉각 대응한다.

박=대치동에서 상품을 직접 개발해본 사람으로서 공교육과 사교육을 비교하면 순발력 있게 이슈를 선점하고 스토리텔링을 통해 시장을 창출하는 능력은 대치동이 탁월하다. 학부모를 만나고 학원에 등록시켜서 수익을 발생시켜야 하는 구조니 창의적일 수밖에 없다. 최근의 스토리텔링은 ‘재수 선행’이다. 정시가 확대됐으니까 고등학교를 바로 자퇴하고 재수 학원에 가서 재수를 선행한다는 의미인데 이 게 먹힌다.

신=‘현강(현장 강의)’에서만 나눠주는 자료 관련 보도(본보 1월 3일자 3면)도 나왔던데, 학생들이 그걸 중고나라에서 지방 학생들에게 되판다. 최근에는 단과학원이 종합학원보다 대세인데 단과가 많이 생기면서 그 학원들을 어떻게 다녀야 하는지 컨설팅해 주는 사교육도 생겨났다. 단과학원들 다니는 사이, 공강 때 가는 프리미엄 독서실이 생겼고 입학 어려운 학원이 있으면 그 학원 입학 시험에 대비해주는 새끼 학원이 만들어지면서 사교육을 품은 산업이 연쇄적으로 거대해지고 있다.

조=교육학자들 중에는 그래서 공교육에는 인성 교육을, 사교육에는 지식 전달을 맡기는 식으로 역할 분담을 하자고 체념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많다. 사교육을 교육의 영역으로 보자는 거다. 하지만 사교육은 박 소장님 말씀처럼 명백하게 시장의 논리다. 비즈니스고, 마케팅이다. 물론 문제를 빠르게 풀 수 있게 훈련시키는 것은 학원이 탁월하겠지만 교육이란 게 지식이나 기술 습득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지 않나. 사교육을 교육의 한 영역으로 바라보자는 이야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국일보

신소영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선임연구원. 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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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입장에서 사교육을 안 시키는 게 쉽지 않다. 사교육에 기대서라도 어떻게든 명문대에 입학하는 게 취업 등 이후의 삶에 평생 유리한 현실에서 대입에 연연하는 건 당연한 결과 같다.

박=대치동 방식에 대한 한국 사회의 환상이 매우 심각하다. 대치동에 몰려서 엄청난 고강도의 경쟁 압력을 가하고 거기서 일부 살아 남는 애들을 보고 대치동 효과라고 착각하는데, 소수의 성공 사례이자 다수를 들러리로 만드는 위험천만한 방식이다. 학부모들이 합리적으로 사교육을 소비할 수 있도록 과잉 소비, 과잉 학습노동 같은 사교육의 폐해를 집중 조명하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중산층 학부모들에게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신=통계청의 사교육비 의식조사를 보면 사교육비 지출 이유 1위가 ‘기업 채용 때 출신학교 차별이 분명하기 때문에’다. 출신학교 차별 안 받으려면 인서울,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가야 하고 이들 대학에 가기 유리한 고등학교, 중학교 가야 하고 영어유치원 가게 되고 계속 이렇게 하향되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학부모에게 경쟁과 불안 놓으라고 하는 건 굉장히 무책임하고 공허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학벌을 취득한 다음의 사후 결과물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채용 시장에서 면접 기회를 한 번이라도 더 얻을 수 있고, 승진에서도 고학력자를 우대하는 관행이 여전하고, 고임금에 훨씬 안정적으로 진입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이라면 이미 작용하고 있는 학벌 특권효과를 정책적으로 차단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조=한국 사회에서 사교육이 팽창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는 근본적 이유는 사교육이 학벌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 차원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이 보기에 자녀들이 미래를 설계하고 준비하는데 교육 이외의 대안이 없다. 한국에서는 교육 사다리뿐이다. 미국은 사다리가 여러 개다. 유럽 같은 경우는 학교 트랙을 밟지 않아도 밥 먹고 살 수 있는 정도의 미래가 보장되니까 교육에 목을 매지 않는다. 한국은 그렇지 않다. 교육 문제는 그래서 노동시장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노동시장, 대학서열화 문제를 혁파하면서 위에서 밑으로 내려와야 하는데 지금 교육부는 초ㆍ중등 교육의 정상화라는 측면에서 입시를 바꾸고 교육과정을 개선하는 식으로 아래에서부터 해결하려고 하니까 안 되는 거다.

박=두 사람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현재 사교육의 소비자인 학부모에 초점 맞추는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단순히 학부모들의 인식 전환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학부모들이 사교육을 소비하더라도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공적 시스템이 존재해야 한다. 예를 들어 메가스터디 설명회 외에도 공공 영역의 다른 설명회가 존재한다면 대안이 될 수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도 이번에 구청에서 사교육업체 강사를 불러서 대입 설명회 한다고 지적하지 않았나. 당장 불안한 학부모에게 효과적인 사교육 소비, 부모 역할 안내 이런 것들은 가볍게 여기고 계속 사회적 문제 해결이 우선돼야 한다고 이야기하면 해결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학부모들은 사교육에 더 의존하게 된다. 그 해결책이 맞아도, ‘나는 지금 내 자식이 좋은 대학 가는 게 중요하다’ 이렇게 나올 수 있다.

-정부 정책 방향이 사교육을 부추기는 경향은 없나.

신=정부가 교육적 가치와 철학을 가지고 정책을 내야 하는데, 정책이 정치 논리와 뒤섞이는 측면이 있다. 이번에도 정시 상향 방향하고 지금 학교 교육 안에 들어와 있는 정책하고 충돌하는 지점이 많다. 이렇게 정책을 내면 학교 현장은 혼란스럽고 사교육 시장은 훨씬 더 자극적으로 마케팅을 한다.

박=공교육 내부에서도 사교육을 유발하는 요인이 존재한다. 문제를 어렵게 출제한다거나, 아이가 공부를 못해서 어려워하면 학교에서 학원을 보내라는 상담이 이뤄진다거나 하는 것이다.

조=외국 학술 용어로도 사용되는 개념으로 한국의 ‘교육열(Education Fever)’이라는 게 있다. 병원에서 환자가 열이 나면 수술을 못한다. 열을 낮추고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의 교육 생태계 자체가 열병에 휩싸여 있다. 여기다 어떤 교육 정책을 내놓아도 다 실패한다. 생태계를 복원하려면 외곽을 포함한 전체를 아울러야 한다. 교육부에서만 기능적으로 접근하면 안 되고 노동, 경제 관련 유관 부처들과 협의해야 한다.
한국일보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 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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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을 대표하는 집단인 한국 중산층의 학력과 부, 계급 대물림 행태가 고착화됐다는 지적이 많다.

조=한국 사회는 해방 이후 학교 교육을 매개로 한 계층 이동이 엄청 활발했지만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2000년대 초에 이미 학교 교육 통한 사회 이동이 어려워졌다는 실증 연구가 많이 나왔다. 그 게 바로 기사에 나왔던 의사 대물림(본보 1월 8일자 1면)이다. 유럽 사회도 자기 아버지가 변호사면 자녀도 변호사, 의사면 의사로 부모의 직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수 백 년간 직업 대물림이 중산층의 재생산 방식이 됐다. 그래서 계층 이동이 불가능하다. 비극적이지만 한국 사회도 유럽 사회처럼 가는 초기 증상이 보인다.

신=교육을 통한 대물림이 바람직한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건데, 이렇게 되면 개인의 노력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본다. 개인의 일상을 파괴하면서까지 노력해야 한다는 사회 논리가 형성될 거다. 하지만 노력을 하려고 해도 못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능력이 뛰어난 애들은 원래 그랬을까, 그렇지 않다.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타고난 가정 환경, 시대적 배경 같은 운에 영향을 받았을 텐데 그것을 오롯이 개인 스스로 일궈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회라면 부나 권력이 더 고착화될 수밖에 없게 된다.

조=공감한다. 중산층은 자녀의 미래를 준비 하는데 여러 길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다. 프랑스 역사학자 앙리 르페브르도 중산층의 힘이 기동력이라고 했다. 중산층 가정의 공부 잘하는 아이는 의대, 로스쿨 가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그들대로 또 (계층 유지를 위한) 여러 경로를 찾아내는 기동력을 발휘한다. 유학으로 유턴하고, 의전원 보내서 의사시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치동식 사교육, 즉 학벌을 얻기 위한 과도한 경쟁을 완화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

박=중산층 학부모의 태도가 교육개혁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공교육 버리고 사교육으로 각자도생의 길을 가고 있다. 학교 교실만이 유일하게 다양성이 남아 있는 공동체지만 학부모들은 공교육에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는다. 학부모가 굳이 사교육을 하지 않아도 우리 아이들이 공교육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것이라는 최소한의 믿음을 갖도록 하는 게 우리 사회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대치동 안가도 애들 잘 키울 수 있고 애들 잘 크고 있어’라는 학부모들의 건강한 노력을 지지하는 움직임이 공적 영역에서 이루어져야만 대치동도 정화될 거다.

신=우리 단체에서 블라인드 채용을 정책 운동한지가 4년이 넘었다. 그런데 20대 국회에서도 너무 미온적이었다. 얼마 전 한 언론사 기고를 읽었는데 군산대에서 지역인재 의무채용 이후 7명이 공기업에 취업했더니, 학부모들이 무슨 과냐 물어보고 난리 났다고 하더라. 취업 시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학부모 인식도 개선 안 될 거다. 제도적 장치를 통해서 최소한 학력 차별 없이 노동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게 꼭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직업간 임금 격차 문제도 정책 운동으로 실현할 계획이다.

조=현재 기업에서는 역설적이게도 블라인드 채용이 가능한 시점이 됐다. 그 이유가 학벌 사회에 대한 문제 인식에서라기 보다는 기업에서 짧게, 단기간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해서다. 기업 근속연수가 보통 13년이라고 한다. 단물 빼 먹고 내뱉는 구조인 거다. 원인이 좀 씁쓸하긴 하지만 이런 흐름을 정책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에 더해 결과적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서 지원자의 배경을 고려해 역차별하는,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ㆍ적극적 우대조치)’이 필요하다고 본다. 대입에서는 수시를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으로 다 채우는 방식을, 노동시장에서는 특히 공기업이나 공공부문과 같은 좋은 일자리에서 적극적 우대조치를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이주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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