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들, 19일 내전 사태 중재 회담
“무기 수출 안한다, 내전 개입 않는다”
리비아, 7년째 통합정부vs국민군 내전
국민군 유전 지대 장악하며 거대 세력
주변국들, 석유·성향 따라 이합집산
19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리비아 내전 사태 중재 회담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오른쪽 쇼파에 앉은 사람)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 쇼파에 앉은 사람) 등이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고 있다. 이날 주요국의 대표들은 리비아에 대한 유엔의 무기 수출 금지 조치를 준수하기로 합의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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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는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운동으로 무아마르 알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후 2014년부터 7년째 내전을 벌이고 있다. 유엔 지원 아래 수도 트리폴리 등 서부를 통치하는 리비아통합정부(GNA)와 칼리파 하프타르 사령관이 이끄는 동부 군벌 세력 리비아국민군(LNA)이 대치하고 있다.
주요국들은 이해관계에 따라 통합정부나 국민군 가운데 한 쪽의 편을 들거나 지원해왔다. 하지만 이날 베를린 회담에서 주요국들은 “리비아에 무기 수출을 하지 않고, 내전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데 합의했다. 메르켈 독일 총리와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은 이날 회담이 끝난 후 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참가국은 리비아 내전과 내부 문제에 간섭하기 않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리비아통합정부의 군대가 지난해 4월 리비아국민군과 교전을 벌인 후의 모습.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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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주요국들이 리비아 내전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해관계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는 리비아 내전 종식을 위한 첫 걸음이란 평가가 있는 반면, 실제 종전까진 갈 길이 멀다는 분석이 나온다. 리비아국민군이 리비아 내 유전(油田) 대부분을 확보하며 리비아통합정부보다 훨씬 비대한 세력을 키우고 있고, 리비아를 둘러싼 주변국과 열강들의 입장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특훈교수는 주요국들이 중재 회담에 나선 이유에 대해 “리비아 내전이 길어지고, 격화하면 관련 국가들에게 큰 피해가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각 국가가 이익에 따라 철저히 이합집산하고 있고, 하프타르 장군의 세력이 막강해 이 베를린 합의의 실효성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석유·역사·성향 따라 ‘편’ 달라
19일 베를린 회담에 참석한 각국 대표는 메르켈 독일 총리,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드로안 터키 대통령,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양체즈 중국 특임대사,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등이다.
리비아 내전 사태 중재를 위해 지난 19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회담에서 아메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과 리비아국민군의 칼리파 하프타르 사령관이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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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사태를 위해 한 자리에 모였지만, 이해관계에 따라 리비아 양대 세력의 편이 나뉜다. 대표적인 두 나라가 이탈리아와 프랑스다. 두 국가 모두 지리적으로 리비아와 가까운 데다 리비아산 원유 의존도가 높다. 북아프리카 중앙에 위치한 리비아는 아프리카에서 석유 매장량이 가장 많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오른쪽)와 파예즈 알 사라즈 리비아통합정부 총리가 지난 11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리비아 내전 사태 등에 관해 논의한 후 악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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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를 둘러싼 중동 역시 갈라져 있다. 통합정부는 이슬람 원리주의 성향이고, 국민군은 세속주의를 표방한다. 이슬람 원리주의와 가깝고, 오스만제국 시절 리비아 북부를 지배했던 터키는 통합정부를 지원한다. 지난 5일 통합정부 측에 파병을 하기도 했다. 반면 터키와 사이가 좋지 않으면서 이슬람 원리주의에 거부감이 있는 이집트·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는 국민군 편에 섰다.
19일 베를린 회담에서 만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왼쪽)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대화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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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중립을 지키고 있지만, 내전 확대로 발생할 난민 유입을 걱정한다. 리비아와는 별다른 관련이 없는 독일이 이번 회담에 적극 나선 이유도 이 때문이다.
■ 리비아 내전 지지국
▶리비아통합정부(GNA) 지지국: 유엔·이탈리아·터키·카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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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의 불균형, 열강들 입장 변화가 변수
리비아에선 민주화 운동으로 42년 간 리비아를 통치한 독재자 카다피가 2011년 축출됐다. 그 후 1700여 개 무장세력이 난립하고, 이슬람계와 비이슬람계 간 갈등도 심했다. 유엔이 나서 2015년 통합정부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이미 하프타르 사령관이 이끄는 국민군이 동부를 대부분 장악한 후였다.
내전은 지난해 4월 국민군이 통합정부가 통치하는 트리폴리로 진격하면서 격화했다. 두 세력 간의 교전으로 민간인 약 300명, 군인 2000여명이 숨졌고, 15만명이 피란길에 올랐다.
리비아 내전 사태 중재를 위한 회담이 지난 19일 주요국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독일 베를린에서 열렸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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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베를린 회담에선 휴전을 위한 추가 조치를 논의할 후속 위원회도 며칠 내로 만든다는 데 합의했다. 위원회 첫 개최지는 스위스 제네바가 될 전망이다.
문제는 두 세력 간에 대화 의지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20일 회담에는 통합정부의 파예즈 알 사라즈 총리와 국민군의 하프타르 사령관이 참석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마주치지 않았다. 대신 각 세력에 우호적인 국가의 대표들을 만나 합의 내용을 전달받았다. 회담을 하루 앞둔 19일엔 리비아의 상당수 유전을 장악한 국민군이 통합정부의 원유 수출항을 봉쇄하기도 했다. 두 세력은 지난 13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휴전 협상을 벌였지만 실패했다. 휴전 조건을 놓고 두 세력 간의 견해 차가 워낙 크다고 전해진다.
하프타르 리비아국민군 사령관(오른쪽)이 지난 19일 베를린 회담에서 리처드 놀랜드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와 만나 인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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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통합정부와 국민군 간에 ‘힘의 불균형’도 휴전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통합정부는 유엔의 인정을 받고 있지만, 과도한 이슬람 원리주의를 추구하고, 부패·무능 탓에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반면 반군이지만 세속주의를 표방하는 국민군은 유전을 장악하며 빠르게 세력을 키웠다. 이 여세를 몰아 통합정부가 통치하는 트리폴리까지 장악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희수 특훈교수는 이를 두고 “누가 선이고, 악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내전”이라고 평가했다.
리비아통합정부 측 군인이 지난해 6월 국민군과 교전을 벌인 후 옆에 무기를 놓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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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두 세력의 내전이 장기화할 것을 우려한다. 이희수 특훈교수는 “유전지대를 장악한 하프타르의 세력이 통합정부를 압도하는 상황에서 하프타르가 타협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두 세력은 물론이고, 주변국과 열강들이 리비아의 유전 등을 놓고 이해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에 10년째 내전 중인 시리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주변국과 열강들의 입장 변화도 변수다. 김종률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현재 리비아 사태에 적극적인 개입을 하지 않고 있는 미국에 주목했다. 김종률 교수는 “미국이 현재는 한 발 빼고 있지만, 자국의 상황에 따라 리비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수 있다. 미국은 사실상 하프타르 사령관을 지지하고, 이슬람 원리주의인 통합정부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한다”면서 “유엔에서 가장 힘이 막강한 미국의 태도 변화가 리비아 내전의 또 다른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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