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숙 숭실대 초빙교수] 2009년 2월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금융기관간의 업무영역구분이 사라져 우리나라에서도 겸업은행업체제인 유니버설은행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로써 투자상품의 은행판매가 가능하게 되었다. 동법은 금융상품을 투자상품과 비투자상품으로 나누고 다시 투자상품을 원본(원금)초과손실 가능성이 존재하는지를 기준으로 증권과 파생상품으로 구분한다. 증권은 투자자들이 자본시장에서 직접 구매하는 상품으로 기업이 발행하는 주식과 채권 등이 포함된다. 최근 금융소비자보호의 핵심에 놓인 파생결합상품도 증권에 해당한다.
고수익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는 상품의 다량판매를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금융기관의 이익과 맞닿아 있다. 금리하락으로 예대마진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금융기관은 고객욕구를 충족시키고 금융기관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특정조건이 가미된 다양한 상품을 개발한다. 이러한 상품을 일반적으로 파생결합증권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상품개발 당시의 시장 상황을 반영하여 개발되므로 일정기간이 경과하면 수익성이 떨어지게 된다. 조건에 내제된 경제상황이 변하기 때문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신용파생상품에 늦게 진입한 기관투자자들이 엄청난 손실을 경험한 것도 이 때문이다. 파생결합증권이 파생상품의 특징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파생상품으로 간주되지 않는 이유는 위험요인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본시장법이 말하는 원본초과손실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하면 원본 이내에서 손실가능성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파생결합상품을 판매하는 은행은 상품판매과정에 예적금업무를 취급하는 것보다 높은 강도의 판매절차를 거친다. 그 절차에는 상품위험성에 대한 고지를 듣고 이해했음을 확인하는 절차를 포함해 감독기관이 규정한 절차를 이행하도록 되어있다. 이러한 까닭에 필자는 수익률에 대한 언급만 있었지 위험에 고지는 없었다는 일부 투자자들의 주장을 이해하기 힘들다. 마찬가지로 자본시장법하에서 파생결합증권의 판매채널을 문제로 인식하는 것도 그렇다. 이것은 문제의 핵심을 비켜간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언론보도를 접하며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첫째 해당 상품의 투자자들은 비투자상품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예금상품의 수익률에는 만족하지 못해서다. 이에 은행은 더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는 파생결합증권을 추천했다. 예금상품이 아니므로 소비자는 보다 강화된 판매절차에 노출되었고 그 과정에 동의서 등 각종 부속서류에 서명날인을 했다. 소비자는 예금자산이 아닌 원본손실위험이 내재된 증권자산을 소비함으로써 투자의 주체인 투자자가 되었다.
둘째 다양한 서류와 서명날인을 징구하는 등 창구에서의 판매위험관리가 종료되어 증권판매가 완료되면 증권은 소비자의 증권계좌에 등록된다. 이때부터 해당 증권자산에 대한 가격위험관리는 소비자 투자자에게 전가된다.
셋째 판매절차가 끝나면 투자자는 높은 수익률은 기억하지만 위험고지와 함께 ‘이해했음’ ‘들었음’ 등 서명날인한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쉽게 잊어버린다. 안전불감증이 투자현장에서도 나타난다. 금융소비자의 안전불감증은 상품을 많이 팔아야 성과금의 액수가 증가하는 창구직원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
금융사고와 관련된 소식을 수도 없이 접하고 경험했으면서도 우리사회에서는 사고의 근본적 원인을 찾고자 하는 노력에는 소홀한 것 같다. 소비자 스스로의 적극적인 변화 없이는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건전한 금융투자의 시작은 소비하고자 하는 상품에 대한 이해이다. 약의 효능과 부작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올바른 적용이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투자상품을 이해하고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어야 투자성과를 보증할 수 있다. 부작용을 모르고 약을 복용하면 위험하듯이 투자상픔의 위험요인을 확인하지 않고 투자하는 것은 잘못된 약을 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약의 효능을 모르고는 복용해서는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파생결합증권을 이해하지 못하면 투자를 단념하는 것이 좋다.
창구직원의 말만 믿고 무조건 상품을 구입했다가 낭패를 보았다고 한다. 상품을 파는 직원의 목적이 무엇인지 올바로 인식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독일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문구 하나를 소개한다. Vertrauen ist gut, aber Kontrolle ist besser. 의문이 발생하는 있는 상황에서 흔히 사용하는 문구로 ‘남을 무조건 믿는 것도 좋다. 하지만 확인하고 비교하는 것은 더 좋다’라는 내용이다. 돌다리도 두드린다는 우리속담과 같다.
높은 수익률의 또 다른 표현은 높은 손실가능성이다. 고수익 가능성을 제공하는 증권은 절대로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다. 재산을 안전하게 보존하고 추가적인 수익을 기대한다면 그에 합당한 노력, 즉 투자하고자 하는 상품을 이해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다. 판매채널이 은행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금융투자에서 수익을 추구하고 손실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스스로 손실을 관리할 능력이 없다면 전문가를 고용하면 된다. 전문가를 고용할 능력이 없다면 금융투자에서 손실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스스로에게 있다. 적극적인 행동의 주체가 되지 않으면 금융기관과 금융소비자 사이에 존재하는 정보의 비대칭성은 절대로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줄이는 것의 시작은 금융소비자의 인식변화라고 생각한다. 자본시장에서 아무리 제도적 장치가 잘 마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금융투자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과 행동의 변화 없이 건전한 자본시장을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투자상품의 특성과 투자자의 책임에 대한 고려 없이 성과금에 집착한 은행직원의 일탈행위를 은행전체의 문제인양 확대 보도하여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는 현실이 안타깝다. 과도한 소비자보호가 자본시장을 건전하게 발전시킬 수 있을까. 성숙한 금융소비의 주체로서 소비자의 자기 책임원칙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때다.
여기서 필자가 경험한 소비자보호의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독일의 금융소비자보호는 금융소비자를 소극적 행동주체로 만들지 않는다. 금융상품과 서비스의 내용을 고객이 읽고 판단하도록 유도한다. 필자가 모 자동차회사 독일법인에서 자금을 관리할 때의 일이다. 펀드상품에 가입하려고 은행지점을 방문했다. 창구직원은 어떤 펀드를 생각하고 있는지 물었다. 추천해달라고 하자 그 직원은 잠시 기다리라며 자리를 떴다. 자리로 돌아왔을 때 그 직원은 그 은행에서 취급하는 몇 몇 펀드설명서를 뭉치로 나에게 건네주었다. 족히 백장은 되었던 것 같다. “댁에 가셔서 이 자료들을 조용히 읽어보세요. 그리고 마음에 드시는 상품이 있으면 그때 다시 이야기 하시죠”라며 나를 되돌려 보냈다. 펀드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필자는 상품설명서를 읽는데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이해를 못한 까닭에 펀드가입을 포기했다. 당시 그 직원은 의도한 바는 아니겠으나 필자에게 펀드를 팔려는 적극적 행동을 취하지 않음으로써 필자가 소비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고민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우리나라의 펀드창구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그 당시 독일은행의 창구직원이 ‘금융기관의 면피용 서류(동의서)’에 연한 색으로 인쇄된 문구를 덮어 쓰도록 유도하고 서명날인이 필요한 곳에만 형광펜으로 표시하여 펀드가입신청서를 제공했다면 필자도 부정적인 투자결과가 생겼을 때 책임을 금융기관에 전가하려고 했을지 모른다. 투자행위의 주체로서 자기 책임성에 대한 고민을 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펀드판매직원의 단호한 행동은 투자책임은 소비자의 것임을 이해시켰다.
프랑크프르트에 본부를 둔 독일은행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필자는 금융파생상품스페셜리스트로서 리스크관리본부에 소속된 마켓리스크부서에서 파생상품의 시장위험관리를 담당했다. 동료 한명이 콜옵션 매도로 짭짤한 수익을 자랑했다. 필자도 옵션거래를 하려 하자 부서에서 필자의 역할을 알고 있던 지점동료는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회사에서 업무와는 무관하게 개인투자자로서 증권투자에 대한 경험도 없는 초보자가 어떻게 옵션거래를 할 수 있느냐는 이유에서다. 순간 당황하고 서운했지만 건전한 투자문화를 이해하는 또 다른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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