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해부대 작전지역 확대 의미/ 우리 군 지휘 아래 독자적 활동 펼쳐/ 방위비 협상에도 긍정적 영향 가능성/ 교민 안전·이란과 관계 까지도 고려/ 여야 대체로 “존중”… 진보진영은 반발/ 파병 정당성·국회 비준여부 논란도
지난 2019년 12월 13일 경남 거제도 앞 해상에서 해군 청해부대 대원들이 해적에게 선박이 피랍된 가상의 상황을 가정해 훈련하는 모습. 연합뉴스 |
정부가 아덴만에 파견된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확장하는 방식의 호르무즈 해협 ‘독자 파병’을 결정한 것은 한·미동맹과 이란과의 관계까지 고려한 절충안이다.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원하는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고려하면서도, 독자 작전을 펼치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이란과 적대관계에 서지 않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남북협력 진전 구상에 대한 미국의 협력과 이해를 구하고 방위비분담금 협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큰 반면, 파병의 정당성 확보와 국회 비준 논란은 넘어야 할 과제다.
국방부는 21일 “청해부대 파견 지역을 아덴만 일대에서 오만만과 아라비아·페르시아만 일대까지 확대해 우리 군 지휘하에 한국 국민과 선박 보호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 주도의 ‘국제해양안보구상’(IMSC)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
이는 ‘모든 국가가 호르무즈 해협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에 부응하면서도, 이란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중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지난해 여름부터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에 IMSC 파병을 요청했고, 정부도 한때 참여를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하지만 미국이 이달 초 이란군 실세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제거하면서 중동 정세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자 정부의 고민은 깊어졌다. 성급하게 미국 주도의 IMSC에 참여했다가는 이란의 적으로 간주될 수 있어서다. 수십년간 이어온 이란과의 협력 관계는 물론, 자칫 중동에 거주하는 교민 안전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석환 국방정책실장이 21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우린 정부는 현 중동정세를 고려해 우리 국민의 안전과 선박의 자유항행 보장을 위해 청해부대 파견지역을 한시적으로 확대키로 결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허정호 선임기자 |
결국 고심 끝에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독자 파병의 길을 걷기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는 지난해 12월 IMSC에 참여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해상자위대 호위함 1척과 P3C 초계기 1대를 보내기로 한 일본의 결정이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이후 외교경로를 통한 물밑접촉이 이어졌다. 앞서 IMSC는 호주, 영국, 사우디, 바레인, UAE, 알바니아 등 6개국이 참여해 지난해 11월 8일 공식 발족했다. 미국은 이 연합체에 우리의 파병을 촉구했고, 이란은 중립을 지키라면서 반발했다.
국방부가 21일 호르무즈해협 일대로 파견한 청해부대 왕건함 모습. 연합뉴스 |
국방부 관계자는 “미국 측은 한국의 파병 결정을 환영하고 기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주에는 이란에도 사전설명이 있었다. 예상대로 우려를 표시했다. 이 관계자는 “이란은 일차적으로 중동지역의 외국군 파병에 우려를 표시했다. 이란의 입장일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IMSC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란 측에 최대한 강조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독자 파병의 또 다른 배경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밝혔듯 남북협력 진전 구상에 대한 미국의 협력과 이해를 구하고 방위비분담금 협상의 물꼬를 트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정부 당국자들은 이번 결정은 다른 한·미동맹 현안과는 별개라며 손사래친다. 국방부는 이날 파병 공식 발표 자리에서 “청해부대가 호르무즈로 향하는 것은 국익 때문”이라며 “오만만과 아라비아·페르시아만을 잇는 호르무즈 해협은 걸프 지역의 주요 원유 수송 루트로, 한국으로 수입되는 원유의 70% 이상이 이곳을 지날 만큼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청해부대를 배치해 유사시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며, 파병의 명분이라는 것이다. 외교부 당국자도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는 방위비 협상 과정에서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며 “이 문제는 방위비 협상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파병의 정당성을 두고선 논란이 예상된다. 사실상 미국의 압박에 따른 수용인 데다 한반도 평화를 강조해온 정부의 행보와는 배치되는 사안인 탓이다. 문재인정부 지지층인 진보진영의 반발이 클 것으로 보인다. 당장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이란과 적대하는 그 어떠한 파병도 반대한다”며 “파병 목적이 변동되는 것이라 반드시 국회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앞으로 청해부대 작전지역 변경을 놓고 국회 비준 여부를 둘러싼 논란으로 상당한 진통이 점쳐진다. 자유한국당 김성원 대변인은 “프랑스 등 국가들이 상선 호위작전을 추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뒷짐만 지고 있을 수는 없다”고 정부의 파병 방침을 존중하면서도 국회를 논의에서 배제한 것에 대해선 강하게 불만을 표출했다. 김 대변인은 “파병 결정과정에서 제1야당이 철저히 배제된 점은 유감이며 ‘파견지역·임무·기간·예산 변동 시 국회 비준동의 절차’에 따른 국회동의절차에 대한 부분도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주평화당 등도 반대 의사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어 이 문제를 놓고 마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다만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대변인은 “정부가 국민안전과 외교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오랜 고심 끝에 해결방안을 찾은 만큼 그 결정을 존중한다”고 논평했다.
◆ 청해부대 임무 어떻게 되나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되는 청해부대는 소말리아 아덴만 일대에서 해적퇴치와 선박호송 등을 지원해온 부대다. 2009년 3월 1진이 처음 출항한 이후 아덴만 해역에 출몰하는 해적을 퇴치하고 우리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활동을 펼쳐왔다. 2011년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삼호주얼리호를 구출한 ‘아덴만 여명 작전’을 비롯해 리비아와 예멘, 가나 등에서 우리 국민의 안전을 위한 작전을 진행해왔다.
현재 아덴만 일대에는 한국형구축함 왕건함(4400t급)이 주축인 31진이 배치돼 있다. 지난달 27일 부산 해군작전기지에서 출항한 왕건함은 21일 오후 5시30분 오만 무스카트항에서 청해부대 30진으로 파견돼 있던 강감찬함과 임무를 교대한 뒤 우리 국민과 선박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2006년 진수된 왕건함은 5인치 함포와 하푼 대함미사일, SM-Ⅱ 대공미사일, 해성 대함미사일, 홍상어 대잠수함 유도무기, 단거리 함대공미사일(RAM)과 골키퍼 기관포 등을 갖추고 있다. 음파탐지기와 슈퍼 링스(Lynx) 해상작전헬기 1대, 고속단정 3척을 탑재하고 있어 잠수함 탐지와 해상 수색 및 검문 등의 임무도 수행할 수 있다. 이번에 출항한 왕건함은 잠수함을 운용하는 이란 해군의 특성을 감안, 대잠수함 능력을 일부 보완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해부대는 기존 소말리아 아덴만 일대의 해적 퇴치 및 선박 호송 임무와 병행해 확대된 작전구역에서 활동할 예정이다. 호르무즈 해협 일대에서 한국 선박에 대한 위협 징후가 발견되면 합참이 청해부대를 지휘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제해양안보구상(IMSC)에서 미국이나 일본 등 제3국 선박 호송을 요청하거나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투입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이번 파병 결정에 따라 소말리아 아덴만 일대에서 오만만, 호르무즈 해협, 페르시아만 일대에 이르는 3900여㎞ 구간 해역을 청해부대 파견지역으로 설정했다. 중동 지역에는 약 2만5000명의 교민이 거주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일대에는 우리 선박 170여척이 통항하고 있으며 통항 횟수만 연간 900여회에 달한다. 청해부대는 호르무즈 해협과 414㎞ 떨어진 오만 무스카트항에 기항하며 우리 국민과 선박을 보호할 예정이다.
박병진·최형창·박수찬 기자 worldp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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