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아도 안오고 뽑으면 나간다...채용 포기 경북 시·군도
분변 속에서 일하고 휴일 없이 근무하는 일 잦아
합격되고 보면 5급 승진은 하늘의 별 따기
[안동=뉴시스] 구제역 발생 방지를 위해 백신 접종을 하고 있는 수의사. (사진=뉴시스 DB) 2020.0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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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뉴시스] 류상현 기자 = 아프리카돼지열병, AI(조류인플루엔자), 구제역, 브루셀라, 닭뉴캐슬병 등 가축 전염병을 막기 위한 예방 및 방역 업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수의직 공무원이 턱없이 부족해 경북도와 관련 산하기관, 시군들이 이와 관련한 업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2일 경북도에 따르면 도내 23개 시·군의 수의직 공무원 정원은 77명이지만 지난해 11월 진행된 수의직 공무원 채용이 있기 전까지 현원은 43명에 불과했다.
모자라는 인원은 34명이다.
◇수의직 공무원 모자라는데 안 뽑겠다는 시·군
경북도가 이 인원을 채우고자 지난해 11월 수의직 공무원 채용을 진행하면서 시·군들을 대상으로 수요조사를 하니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34명이 모자라지만 시·군들은 20명만 채용하겠다고 한 것이다.
알고보니 상당수 시·군들이 "뽑아도 금방 나간다"며 수의직 공무원 신규 채용 자체를 포기한 것이었다.
이 자리를 비워두면 수의직이 아니라 다른 농업 관련 직렬 공무원이 배치돼 전문성은 떨어지지만 수의직 공무원만 고집하면서 장기간 기다리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더 기가막힌 일은 채용시험 마감날 일어났다.
20명을 뽑기로 했지만 10명만 응시한 것이다. 행정직 등 다른 직렬 공무원 신규 모집에 수십~수백대 1의 경쟁률이 벌어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도와 시·군은 이들 10명을 모두 합격시켰다.
그래서 1월 현재 수의직 공무원은 53명으로 지난해 11월보다 10명이 늘었지만 아직도 24명이 모자란다.
현재 봉화군은 수의직 공무원이 3명 정원이지만 한 명도 없고 안동은 6명 정원이지만 1명만 있다.
도 산하기관은 동물위생시험소도 정원은 109명이지만 현원은 104명으로 5명이 비어 있다.
◇수의직 공무원 왜 기피하나
이처럼 수의직 공무원을 기피하는 것은 이 업무가 너무 힘들고 합격해도 승진 등에서 다른 직렬보다 불리하기 때문이다.
수의직 공무원들은 동물의 분변이 있는 곳에서 날뛰는 동물들을 제압해가면서 채혈을 하고 백신주사를 놔야 한다.
연중 비상근무가 많고(매년 6~8개월) 휴일도 없이 근무하는 일도 잦다.
동물이 죽으면 밤이라도 출동해 추위, 더위와 관계없이 바깥에서 부검을 해야 한다.
부검 대상 동물이 아직 살아 있으면 현장에서 죽여 부검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이런 일을 겪은 경북도의 한 수의직 공무원은 채식주의자가 됐다.
이처럼 험한 일로 2016년 이후 도내 8명이 업무수행 과정에서 다쳤다.
농가로부터 가축에 질병이 있는 것 같다며 검사를 요청하면 수의직 공무원은 휴일이라도 나가서 채혈을 하고 가축을 살펴 농가에 전문적 조언을 해야 한다.
이를 '병성감정'이라고 하는데 고도의 전문적인 지식과 많은 임상경험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업무다.
그러나 중도에 그만 두는 수의직 공무원이 많아지면서 이런 업무를 할 수 있는 직원도 갈수록 적어지고 있다.
업무가 힘들다는 것도 이직의 큰 이유이지만 수의직 공무원에 대한 처우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현재 경북도의 수의직 공무원 5급 이상 비율은 15.4%로 일반 행정직렬(행정, 전산, 세무 포함)의 31.9%보다 턱없이 낮다.
이에 따라 승진적체가 극심하다.
한 직원은 1992년에 7급으로 수의직 공무원을 시작해 11년만에 6급 승진하고 17년째 6급 그대로다.
경북도 동물방역과의 한 관계자는 "이 분이 7급으로 있을 때 8급으로 근무한 일반 행정직 직원이 지금은 4급으로 부군수로 나가 있다"며 "수의직 공무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고 말했다.
경북도와 산하기관 가운데 7~6급으로 20년 이상 머물러 있는 직원만도 수의직 13명, 축산직 1명 등 모두 14명이다.
이처럼 고된 업무와 옅은 승진 기회 등을 알고 임용된 지 얼마 안 되는 수의직 새내기 공무원들은 동물병원을 개업하거나 그곳에서 일하고자 미련 없이 떠난다.
경북도에서는 지난해 4명 등 2016년 이후 지금까지 11명이 사직했다.
이같은 현상은 경북도 뿐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이다.
◇처우 등 국가 차원 특단 대책 필요
경북도에 따르면 일본은 인구가 우리보다 2.5배이지만 가축보건위생소 근무인원은 2084명(2014년)으로 한국의 동물위생시험소 382명(2017년)보다 7.2배나 많다.
가축 가운데 소 사육 두수는 일본이 한국의 1.2배, 돼지는 1.1배 많지만 닭은 오히려 한국이 일본보다 2.1배, 오리는 17.5배 많다.
일본과는 상대도 되지 않는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수의직 공무원 부족사태는 막을 수 없다는 게 경북도의 판단이다.
때문에 수의직 공무원들의 이직을 낮추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규섭 경북도 동물방역과장은 "현재의 상태가 계속 유지된다면 가축 방역이 언제 어디서 뚫릴 지 모른다"며 "수의직 공무원들의 처우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spri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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