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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 (화)

기발한 덕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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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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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이영희 수필가

유년시절은 보릿고개를 운운하던 어려운 때라 많은 사람들이 배를 곯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명절 때만은 한껏 풍족해서 철부지들은 설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모처럼 고운 설빔도 입을 수 있고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이다.

어머니는 썰기 좋게 굳으라고 제일 먼저 동네 방앗간에서 줄을 서서 가래떡을 빼오셨다.

그다음 조청과 유과, 강정을 집에서 직접 하셨는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리본 모양.

동물 모양의 유과를 만드셨다.

제사상에 올라갈 음식을 먼저 담아 시렁에 올려놓으면 우리들의 손은 누구보다 빨라졌다.

서로 많이 먹으려 완전히 속도 경쟁을 벌였는데 보물찾기 하듯 또 광을 살피곤 했다.

까치설날 묵은 세배를 하고 설날에는 새해 세배를 하며 덕담을 듣던 세시풍습을 핵가족 시대의 아이들은 들어 봤을지.

형제자매들과 같이 동네를 돌던 정겨운 모습 위에 고향의 소리가 들리는듯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머니는 손님을 대접하듯 가장 예쁜 그릇에 담은 맛있는 음식들을 내놓으셨다.

허겁지겁 게 눈 감추듯 하는 내게 어머니는 지금처럼 밝게 살라고 덕담을 하셨다.

그러면 선친께서 꽃부리 영(英)에 돌림자 밝을 희(熙)를 넣어 '꽃부리가 밝다' '꽃부리가 빛난다'라고 영희라 지어주신 이름에 대해 생각을 했다.

그때는 부리를 발음 나는 대로 뿌리로 알고, 어떻게 흙 속에 있는 꽃 뿌리가 밝을 수 있는지 내 이름이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 커서 사전을 찾아보고 꽃부리는 '꽃 한 송이에 있는 꽃잎 전부를 이르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무식의 소치를 깨닫게 되었다.

인상 좋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늘 밝고 빛나는 꽃으로 살라는 소망이 덕담이 되어 피그말리온 효과를 일으킨 것은 아닌지.

자기 효능성을 믿고 나이 들어 신춘문예에 도전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이 부모님의 덕담에서 출발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수상식 자리에 참석한 친구가 손수 만든 가방에서 유려한 필치의 덕담을 꺼냈다.

'이 ~ 이럴 수가 영 ~ 영롱하게 희 ~ 희망 기쁨 넘치는 그 모습, 아름답고 더불어 행복합니다.' 기발한 삼행시의 덕담이 새삼 기쁨을 배가시킨다.

새해가 되면 "삼가 새해를 축하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을 많이들 한다.

현재의 복은 수많은 선행이 이루어진 결과라고 하는데 먼저 복을 지어야 하고 복을 넘치지 않게 써야 비로소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작복, 석복, 수복의 삼 단계를 거치는 것이다.

10여 년 전 같이 근무한 직원의 전화를 받았다.

그때는 설이 지나고 토요일 오후에 친목을 도모하는 척사 대회를 열었다.

각 과별 시합을 했는데 우리 과가 유독 잘해서 우승을 했다.

여자 과장이라 봐준 것 아니냐고 하자 '철수 애인 영희라서.'라는 우스갯소리가 따라왔다.

척사한테 주는 상금을 자기가 다 받아 어려울 때 도움이 되었다며 지금은 세종시에서 덕담처럼 잘 살고 있다고 한다.

하나를 더 업는 잉태, 모두 다 퐁당 빠지는 안타까운 지옥이 있던 윷판을 말하는데 생생하게 보이는 듯하다.

그 시절이 못내 그리워지는 것은 더 젊은 날이었기 때문이리라.

아름다운 추억의 윷가락과 작은 정성을 보냈다고 하는데 듣기만 해도 흐뭇해진다.

이렇듯 인품이 좋은 이들이 화향 천리(花香千里), 인향 만리(人香萬里)라는 좋은 문구를 떠오르게 한다.

대개의 사람들은 눈 속에서 피어나는 복수초를 보듯 자신이 좋은 이미지로 떠올랐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대화의 거리를 언어 학자들은 친밀 거리, 평상 거리, 예의 거리로 나누는데 에드워드 홀은 친밀함의 거리, 개인적인 거리, 사회적인 거리, 공적인 거리로 나누었다.

이영희 수필가3포 시대 5포 시대라 칭하는 어려운 시대이다 보니 '올해 취직해라' '올해는 꼭 결혼해라'라는 덕담은 친밀 거리 내에서도 절대 사절이란다.

잘못 썼다가는 꼰대 소리를 듣기 십상이니 적절한 거리 유지에 불안한 시대상이 겹쳐 씁쓸해진다.

덕담도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적절히 소통이 될 때 효과가 있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내가 바라는 것을 남에게 먼저 배려할 일이다.

'영롱하게 희망 기쁨 넘치는 그 모습, 더불어 행복합니다.'라고 느낄 기발한 덕담을 눈보라 속에서도 피어난 매화의 향기처럼 전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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