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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 (수)

[오후 한 詩] 돈암탕/이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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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 무렵 북의 남대현과 남의 김훈이 백두산 밑 삼지연 려관 마당에서 만났다. 내가 중간에 끼어들어 둘이 돈암국민학교 동기일 거라고 말해 주어도 처음엔 서로 서먹하기만 했다. 그런데 가만히 팔짱을 끼고 있던 김훈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남대현을 향해 “정릉천 쪽에 있던 돈암탕 알아요?” 하고 물으니 남대현이 “그 동네에서 제일 높던 빨간 굴뚝?” 하며 반색을 하는 것이었다. 둘은 그날 밤 삼지연 매점 안 들쭉술을 다 마셔 버려 남의 술꾼 이문재를 무척이나 섭섭하게 했을 뿐더러, 다음 날 새벽 아무런 준비 없이 반팔에 반바지 차림으로 천지에 오른 김훈은 자동차 시트로 온몸을 감싸고 매서운 추위에 오돌오돌 떨어야 했다.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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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훈과 남대현은 각각 남한과 북한의 유명한 소설가들이다. 정치체제도 경제체제도 그에 따른 이념도 전혀 다른 곳에서 수십 년 동안 따로 살았으니 참 서먹하고 낯설었을 두 사람은, 그러나 '돈암탕'을 떠올리자 순식간에 깨복쟁이 친구가 된다. 어쩌면 그 둘은 까까머리 시절 "동네에서 제일 높던 빨간 굴뚝" '돈암탕'에서 빨가벗고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담백하고 비교적 짧은 시지만 그 사연과 인정의 깊이는 남북한 현대사를 다정하고 유쾌하게 가로지르고 있다. 이제 곧 설이다. 고향 동네에 아직 그 목욕탕이 남아 있을까, 동무들은 지난 한 해를 무사히 건넜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벌써부터 설레고 아련해진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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