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공기업에 다니는 정 모 씨는 19년 전 사채업자에게 빌린 400만 원이 자신의 일생을 옭아맬지 몰랐습니다.
브로커 여럿이 옆에서 바람을 잡는 가운데 사채업자 A 씨가 서류를 잔뜩 꺼내놓고 형식적인 절차라고 다그치는 바람에 불러주는 대로 약속어음 여러 장을 쓰고 공정증서에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 모 씨/공기업 직원 : 본인이 불러주는 대로 적지 않으면 돈을 줄 수가 없다, 이 금액은 본인이 (400만 원만) 갚으면 다 파기가 되는 거 (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채업자는 얼마 뒤 공증받은 1억 원짜리 약속어음을 앞세워 월급 압류를 시작했고, 정 씨는 4천200만 원을 빼앗겼습니다.
공증한 변호사 사무실에 확인해 보니 본인 서명이 있는 어음 3개가 더 있었고, 채무액은 모두 5억 500만 원에 달했습니다.
소송을 했지만 사채업자는 2억 500만 원을 다시 청구한 상태입니다.
[정 모 씨/공기업 직원 : 가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막막합니다.]
교육공무원이었던 김 모 씨는 A 씨로부터 빌린 250만 원을 모두 갚고도 같은 수법에 당했습니다.
[김 모 씨/전직 공무원 : 어쩔 수 없이, 월급 압류가 되니까 직장을 그만두고 자영업을 시작했고요.]
사채업자는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고 현금으로만 돈을 빌려줬습니다.
그리고는 법률 지식이 부족하고 절박한 채무자를 압박해 채권액을 부풀린 허위 증서에 도장을 찍게 만드는 수법을 썼습니다.
[강 모 씨/공무원 : 죽어야만 끝나거나 아니면 재판으로 이 사람을 처벌을 해야 하는데….]
이런 피해자들이 확인된 것만 30여 명에 달하지만 사채업자는 딱 잡아뗍니다.
[사채업자 A 씨 : 그런 적은 없죠. 누가 그런 말을 해요. (상환 금액을) 원금보다 조금 높게는 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죠.]
피해자들은 꼼짝 못 하게 만든 것이 바로 이 공정증서입니다.
법적 다툼을 예방하고 권리행사를 쉽게 하기 위한 공증은 법원 판결과 같은 강력한 효력을 갖기 때문입니다.
---
물론 아무리 절박해도 이렇게 중요한 문서에 덜컥 서명해버린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공증인의 무책임, 나아가 공증 제도의 허점이 피해자들을 양산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공증 절차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김 모 씨/전직 공무원 : 한 30초도 안 걸렸어요. 서류 다 쓰고 본인이 맞냐고 확인하고 맞다고 하면 그냥 나가라고 그래요. 그게 끝이에요.]
사채업자가 채무자를 대신해 공증받는 것은 불법이지만 암암리에 이뤄집니다.
[김 모 씨/전직 공무원 : 백지도 있었고, 최소 스무 장 정도는 한 것 같아요. 서류 사인을.]
공증을 해 준 법무법인에 찾아가 봤습니다.
[A 변호사/공증인가 법무법인 : 당사자들이 양쪽 다 '맞다, 이렇게 하기로 했다'고 하니까 (공증)하는 거죠. 실제로 (빌린 금액이) 300만 원이고 이런 내용은 저희로서는 물어볼 수도 없고.]
공증을 실제와 다르게 하면 형사 처벌을 받지만, 입증이 어렵고 적발돼도 대부분 소액 벌금에 그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지만 정작 공증인은 무책임합니다.
[B 변호사/공증인가 법무법인 : 공증인 입장에서는 어떻게 그걸, 금전 거래 내역을 보여달라든가 그런 권한은 없는 거니까. 의무도 없고, 권리도 없죠.]
법무부가 매년 공증 지침을 위반한 공증인을 징계하지만 대부분 견책이나 과태료로 끝납니다.
실제 돈이 오간 내역을 확인하지 않고도 공증이 가능한 제도적 허점이 문제입니다.
[송태경 사무처장/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 : 반드시 채권액을 입증할 수 있는 서류를 공증 작성 시 첨부하도록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처럼 공증을 근거로 압류를 집행할 때 법원이 실제 빌린 금액과 공증에 기재된 금액이 일치하는지 심사하는 방안도 검토될 필요가 있습니다.
인생을 파괴하는 공증 사기를 막기 위해서는 사채업자와 공증인 사이 유착 의혹에 대해서도 철저한 수사가 필요합니다.
(SBS 비디오머그)
▶ [뉴스속보] 네팔 안나푸르나 한국인 실종사고
▶ SBS가 고른 뉴스, 네이버에서 받아보세요
※ ⓒ SBS & SBS Digital News Lab. : 무단복제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