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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세상 읽기] ‘고아원’ 이제는 없애야 한다 / 황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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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황필규 ㅣ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사람이 보이지 않는 정치의 홍수 속에 구체적인 사람의 삶을 생각한다.

국내외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어린 시절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공간이 보육원, 소위 ‘고아원’이다. 초등학생 때 어떤 교실에서 보육원생들을 접했다. 짧은 머리, 회색 복장, 지저분한 손과 얼굴, 그리고 교사의 공격적인 꾸지람과 체벌. 그 풍경을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대학생이 되어 주일학교 초등부 교사를 할 때, 보육원생들이 몇 명 있었다. “언니들이 뭘 하래요”, “누가 화장을 했어요”, 도움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화를 간절히 원했던 것일 텐데 나는 주일학교 전후로 잠깐 이야기 나누는 것 이상을 생각할 수 없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이들에게도 차별의 내면화와 무관심의 정당화 속에 ‘고아원’과 ‘고아들’은 그렇게 그곳에 있어왔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지난해 12월, 아동권리협약 30돌, 아동의 대안적 양육에 관한 가이드라인 채택 10돌을 맞아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아동의 권리에 관한 결의를 채택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사상 처음으로 이른바 ‘고아원’이 아동을 보호하지 못하고, 아동에게 해가 되고, 점차적으로 없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점이다. 이 결의는 더 나아가 이러한 시설에서의 자원봉사활동이나 선의의 방문이 아동의 시설 유입을 조장하는 해악을 끼칠 수 있음을 경고하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시설 아동의 80% 이상이 부모가 있다.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도록 적절한 지원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도 결의에 참여했고,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내세우고 있는데 왜 정부는 이를 알리지 않는가. 아니 정부는 자신이 찬성표를 던진 결의의 내용을 알고는 있는가. 2009년 아동의 대안적 양육에 관한 가이드라인이 유엔총회에서 채택되고 유엔 아동권리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대한 권고에서 이 가이드라인 준수를 요청했을 때에도 정부의 담당 부처 담당 과에서는 그 가이드라인의 존재와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20세기 초부터 시설의 대안으로 위탁가정이 주장되었고 1960년대에 탈시설이 사실상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 법제 개선을 통한 한부모 혹은 장애를 가진 부모 등에 대한 전폭적인 재정 지원, 위탁 양육의 증가 등이 탈시설 흐름의 기반이 되었다. 유럽, 남미,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거의 전 세계 모든 곳에서 탈시설과 관련된 정책이 논의되고 실행되고 있다. 성공적인 사례들을 보면 복지 시스템의 강화, 아동의 권리 개념의 실질화, 지방분권을 통한 지방정부의 적극적 탈시설정책 도입 등의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왜 한국에서는 탈시설과 관련된 논의가 제대로 공론화된 적이 없는 것일까.

시설에서 성장한 아동들은 많은 경우 신체적, 감정적, 사회적, 인지 발달적 지체를 보인다고 한다. 시설에서는 아동의 발달에서 반드시 필요한 아동과 양육자 간의 장기적인 애착 관계의 형성과 지속이 불가능하다. 시설은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그 안에서 발생해온 인권침해 상황을 볼 때 아동에게는 더욱더 치명적이다. 시설 아동 다수가 물리적인 폭력이나 추행, 정서적 학대, 의도적인 방치를 경험하고, 이런 경험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권침해 사실로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통제를 위해 아동을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키고, 대학 합격생에게 입학 포기와 취업을 강요하고, 휴대폰 사용을 금하고, 폭언과 욕설, 체벌과 폭력을 가하는 등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확인된 사례만 봐도 그때그때의 감독이나 인권교육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여러 연구에 따르면 시설에서 아동을 보호하는 비용보다 아동을 가족이 보호하는 것을 지원하는 비용이 더 적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한국에는 전국적으로 200여개의 ‘고아원’이 존재한다. 현재 약 2만명의 ‘고아’가 존재하고 매년 4천명의 아동이 시설에 들어온다. 숫자 속에 숨은 구체적인 사람을 봐야 한다. 삶의 안정도, 사람에 대한 신뢰도, 미래에 대한 꿈도 갖기 어려운 공간에서 다양한 인권침해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자원봉사자’와 ‘방문객’은 있지만 시스템을 함께 바꾸려는 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포용국가 아동정책에도 탈시설과 비슷한 방향을 잡고는 있지만 명확한 정책적인 결단과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결여되어 있다.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한번이라도 이야기해본 정치인, 학자, 행정가라면 계획이 있었으리라 믿는다. 이제 실행에 옮기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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