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기 맞아 ‘의사 윤한덕’ 평전 출간
고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2016년 6월 이동형 응급실 도입을 위해 유럽을 찾았을 때의 모습(왼쪽 사진). 생전에 남긴 자필 메모엔 응급의료체계를 걸머진 부담감을 혼자 삭이는 내용이 많았다. 김연욱 마이스터연구소장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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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은 윤한덕이라는 ‘사명적’ 존재에 대해 기대한다. 그래서 (그것이) 내 본모습이 아니더라도, 내가 힘들더라도 노력해야 한다.”
지난해 2월 4일 설 연휴를 앞두고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병원을 지키다가 과로사한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당시 51세)이 생전에 자신의 휴대전화에 남겼던 메모다. 윤 센터장이 이 메모를 쓴 건 2016년 3월 9일이었다. 2002년부터 맡아온 센터 직책을 내려놓겠다며 사직서를 냈다가 센터 직원들의 간곡한 만류로 마음을 고쳐 잡은 직후였다. 윤 센터장의 친구였던 허탁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57)는 “한덕이가 ‘지옥 같다’던 응급실의 현실을 고치기 위해 버거운 짐을 짊어지고 얼마나 외로워했을지 느껴진다”고 말했다.
윤 센터장의 이 자필 메모는 유가족과 동료들이 그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다른 일기와 편지, e메일 등과 함께 발견됐다. 김연욱 마이스터연구소장은 이를 종합한 평전 ‘의사 윤한덕’을 다음 달 초 그의 1주기를 맞아 출간할 예정이다.
취재팀이 받아본 출간 전 원고에선 전국 응급실의 아우성이 집중되는 중앙응급의료센터를 책임져야 했던 윤 센터장의 부담감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2014년 7월 허윤정 당시 아주대 의대 교수에게 보낸 e메일에 “나 같은 사람이 응급의료 최고 전문가 소리를 듣는 현실은 문제가 있다”라며 “가끔은 ‘혹시 내가 응급의료 발전의 걸림돌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을 못 이룬다”고 토로했다. 부인 민영주 씨(51)에겐 아파트에 걸린 태극기를 가리키며 “여보, 저거 보여? 혼자 계속 휘날리는 게 꼭 나를 닮은 것 같아”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부담감 때문에 윤 센터장은 3차례나 사직서를 냈지만 그때마다 동료들이 붙잡았다. 이국종 아주대병원 외상외과 교수는 “윤 센터장은 대체 불가능한 응급의료의 버팀목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평전 인터뷰에 응한 윤 센터장 지인 70여 명은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윤 센터장의 업적을 쏟아냈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가 처음 발생했을 때 그는 국립중앙의료원 메르스 대책반장을 맡았다. 당시 국립중앙의료원은 메르스 환자 67명을 진료했지만 추가 감염이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는데, 윤 센터장이 바이러스를 차단할 수 있는 음압 병실을 단 이틀 만에 만들어낸 덕이었다.
2014년 1월 국가응급환자진료정보망(NEDIS) 관리업체를 선정할 땐 윤 센터장이 ‘제대로 된 곳과 하겠다’며 입찰업체 3곳을 모두 탈락시켜 보건복지부와 조달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고 한다. 그렇게 고집을 부려 완성한 NEDIS는 그가 센터장을 맡기 전인 2001년 50.4%였던 ‘예방 가능 사망률’(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았다면 살 수 있었을 사망자의 비율)을 2017년 19.9%로 낮추는 밑거름이 됐다.
윤 센터장의 편지와 일기엔 부인 민 씨를 향한 사랑도 가득했다. 의대생이던 1988년 2월 14일 그는 일기에 “민영주라는 이름. 그 이름을 듣거나 말할 때, 나는 현기증이 나고 다리에 힘이 빠진다”라며 애타는 마음을 적었다. 이듬해 5월 2일 민 씨에게 보낸 편지엔 “영주가 숨 쉬는 대기, 나도 똑같이 호흡하고 있다는 걸 기억해줘”라며 구애했다. 두 사람은 1996년 결혼했다.
다음 달 4일 오후 2시 윤 센터장의 모교인 광주 동구 전남대 의대 대강당에선 허 교수를 비롯한 전남대병원 의료진이 윤 센터장의 1주기 추모 행사와 함께 평전 출판 기념회를 연다. 동아일보와 보건복지부, 국가보훈처, 대한의사협회 등이 행사 준비에 참여했다. 특히 의대 박물관엔 윤 센터장이 야근을 하다가 잠시 잠을 청하곤 했던 남루한 간이침대가 전시될 예정이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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