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마 톤즈' 故 이태석 신부의 의대 동기, 오지 봉사에 써달라며 기부
"투병때 다 나으면 같이 남수단 가자고 했는데… 이틀 뒤 하늘로 떠나"
A 씨는 대학 시절 이태석 신부와 농구를 같이 할 정도로 친분이 두터웠다. 지난 2001년 이태석 신부가 늦깎이 사제 서품을 받은 뒤 남수단으로 가면서 한동안 연락이 끊겼다. 그러다 2008년 대장암 판정을 받은 이 신부가 투병 중이던 서울의 한 병원에서 재회했다. 동문들을 통해 이 신부의 근황을 알게 된 A씨가 상경해 병문안을 온 것이다.
이후 A씨는 이 신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6개월여간 매 주말 이 신부의 병실을 찾아왔다. 주변 친구들에게는 "'개구리 왕눈이'처럼 눈이 크고 예쁜 태석이가 삶과 죽음의 경계 사이에서 힘겨운 투병을 하고 있다는 얘길 듣고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이 신부가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 A씨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태석아, 다 나으면 같이 남수단으로 가자. 나도 너처럼 의술로 사람들을 돕고 싶다." 이 말을 들은 이 신부가 힘겹게 입을 열어 "그래, 함께 가자"고 답했다. 두 친구의 마지막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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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문 연 이태석 기념관 - 지난 14일 개관한 부산 서구 남부민동 ‘이태석 신부 기념관’ 내부. 지상 4층 높이로 들어선 기념관에는 전시실, 프로그램실, 다목적 홀 등이 있다. 기념관은 이 신부의 생가 뒤편에 지었다. /부산 서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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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지난 12일 대학 동문, 사업회 관계자, 천주교 부산 송도성당 신자 등 70여명과 함께 전남 담양군의 이 신부 묘소에서 열린 추모회에 참석했다. 추모회 후 저녁 식사를 하면서 "매년 2~3차례 캄보디아 등 해외 의료 봉사를 갈 때마다 예산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양 위원장의 하소연을 듣고, 다음 날 바로 전화를 해 1억원 기부 의사를 밝혔다.
양 위원장은 "시골에서 작은 의원을 하는 사람이 그렇게 큰 돈을 내면 부담 간다. 해외 의료 봉사 갈 때 필요한 게 있으면 얘기할 테니 그때 도와주면 된다"고 만류했다. 그러나 A씨는 "올해가 태석이 10주기고 그동안 마음에 남아 있던 '병상 약속'의 짐을 덜고 싶다"며 기부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양 위원장은 "'태석이 정신의 빛'이 널리 퍼지려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11년 출범한 사업회는 청소년 교육, 예술인 재능기부 음악회, 해외 의료 봉사, '이태석 봉사상' 시상 등의 활동을 해왔다. 미얀마, 캄보디아, 필리핀 등에서 진행하는 의료 봉사로 2013년부터 지금까지 1만4000여명의 환자를 치료했다. 이 신부의 선종 10주기를 맞아 뜻깊은 소식도 들려왔다. 고인의 남수단 제자인 존 마옌 루벤(33)씨가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해 의사 자격증을 받게 된 것이다. 앞서 2018년에 의사시험에 합격한 토머스 타반 아콧(35)씨에 이어 이 신부의 두 번째 의사 제자가 탄생한 것이다.
이태석 신부의 고향에서도 기념사업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부산 서구는 지난 14일 서구 남부민2동 이 신부 생가 뒤편에 '이태석 신부 기념관'을 짓고 문을 열었다. 이 기념관은 지상 4층에 연면적 893.80㎡ 규모로 전시실, 프로그램실, 다목적홀 등으로 이뤄져 이 신부의 삶을 기리는 사업을 벌인다. 서구는 2014년 10월 이 신부 생가를 복원하고, 2017년 7월 주민들이 만든 공예품과 이 신부 관련 상품을 파는 '톤즈점방'을 조성했다. 서구는 생가, 톤즈점방, 기념관에 더해 주변에 녹지공원을 만들어 그 일대를 '톤즈빌리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부산=박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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