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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거식증에 45㎏, 폭식증에 83㎏” 마른 몸 원하는 사회의 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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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정책연구원, ‘한국사회의 젠더와 건강 불평등 연구’

하루 1~2끼 먹고, 설사약·변비약 복용 경험, 19~39세 女 최다

“키가 168(㎝)인데 무리한 다이어트 하다가 거식증 와서 45㎏까지 빠졌다가 반동으로 폭식증 와서 83㎏까지 쪘어요. 11㎏ 뺐는데 목표는 65㎏이거든요.”

지난해 8월 한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이 여성은 “식이장애 병원도 다니고 우울증약도 먹는다”고 괴로움을 털어놨다. “다시 예전처럼 마르게 되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고도 썼다.

몸 관리가 일상이 된 시대, ‘마른 몸매’를 지나치게 추구하면서 체중을 줄이려다 병적인 강박으로 거식증·폭식증 등 섭식장애를 앓는 사람이 늘고 있다. 성인 10명 중 3명꼴로 외모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갖고 것으로 나타났다.



스스로 외모에 엄격한 잣대..젊은 여성 33.6% 과대왜곡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4일 발표한 ‘한국사회의 젠더와 건강 불평등 연구’에 따르면 2017년 기준(19세 이상) 외모 왜곡을 보인 사람은 31.2%였다. 21.8%는 과대왜곡이었고 9.5%는 과소왜곡이었다. 연구진은 1만명 가량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활용, 신체계측으로 확인된 비만정도와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비만정도 간의 차이를 통해 외모왜곡을 확인했다.

과대왜곡은 체질량지수(BMI)상 저체중이거나 정상체중인데 주관적으로 보통(정상) 혹은 뚱뚱한 편으로 인식하는 경우다. 과소왜곡은 정상체중인데 마른 편으로 또는 과체중·비만인데 마른편 혹은 보통(정상)으로 인식하는 경우다.

과대왜곡하는 비율은 여성(25.4%)이 남성(8.5%)의 3배 수준이었다. 여성 중에도 청년층(19~39세)이 33.6%로 중장년층(40~64세, 26.2%)보다 상대적으로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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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이미지.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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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은 “여성은 정상체형이거나 BMI에 근거해 정상체중임에도 불구하고 과체중으로 인지하는 경향이 강하고 남성은 반대로 같은 상황에서 마른 편으로 인지하는 경향이 강하다”라며 “여성은 살찐 몸에 대해, 남성은 마른 몸에 대해 상대적으로 민감함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몸매 위해서 적게 먹고, 먹고 구토까지



외모관리를 위해 불건전한 행위를 경험한 비율도 여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하루 1~2끼 먹기, 다이어트 제품 섭취, 살빼는 약 복용, 설사약·변비약 복용, 식사 후 구토 등이다. 평생 이런 행위를 얼마나 하는지 누적 평균을 따져봤더니 여성 청년이 4.62개로 가장 많았고 여성 중년(3.5개), 남성 청년(3.35개), 남성 중년(2.17개) 순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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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연령별 평생 또는 최근 1년 외모·체형관리를 위해 불건전한 행위 경험 평균. [자료 한국여성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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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은 “자신감을 얻기 위해 또는 주목을 받기 위해서 자신이 주도적으로 선택한 이유도 있지만, 부모나 연인, 친구·동료가 권하거나 지적을 받고 놀림을 당해서 비자발적으로 선택한 이유도 있었다”고 밝혔다. 청년층의 경우 연애나 결혼, 취업 등이 요인이기도 했다.

여성 청년이 매우 만족하는 키와 몸무게에 근거해 BMI를 내봤더니 18.19로 저체중에 해당했다. 중장년에서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별로 만족하지 않는다는 경우의 BMI 평균은 22.79였다. 정상체중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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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몸무게에 대한 주관적 만족 정도에 따른 실제 비만도(BMI). [자료 한국여성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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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은 “여성에게 몸은 ‘자기 관리의 지표’로 여겨진다"며 "여성은 일과 삶의 터전에서 몸에 대한 평가와 차별을 동시에 경험하는 등 몸 관리를 사회로부터 강하게 요구받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외모 강박은 젊은 여성들뿐 아니라 중년 여성, 노인 여성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 모든 여성이 공통으로 겪는 현상”이라며 “외모강박은 자신과 타인의 외모에 대해 왜곡된 사고를 갖게 하고, 이것이 여성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미용성형에 의존..1000명당 13명



또 여성은 짧은 시간 사회가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몸을 갖기 위해 미용성형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용성형 산업의 활성화가 외모에 대한 강박감과 왜곡을 심화시킨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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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몸매 이미지.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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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하면 신경성 식욕부진이나 섭식장애로 이어져 결국 영양실조, 탈모, 생리불순 등 신체적 건강문제뿐 아니라 우울증과 자살 충동 등 정신건강 문제의 원인이 된다고 연구진은 우려했다.

특히 여성 청년의 경우 미용 성형 광고를 보고 실제 성형을 했다는 응답이 10명 중 1명(10.2%)이었다. “하고 싶은 생각까지 고려하면 여성 청년의 과반이 넘는 57.4%가 해당된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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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외과.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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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미용성형수술협회(ISPAS) 통계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우리나라의 미용성형 시술(수술과 비수술 조치 포함)은 98만313건에 달했다. 미국, 브라질, 일본 다음으로 높다. 인구 1000명당 13명 수준이다.

성형수술이 잇따르고 있지만 비급여 의료서비스인 탓에 관리가 안 되고 있으며 의료 사고 등의 현황 파악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편 보고서는 몸 이미지와 관련 규제가 있는 해외 사례도 소개했다.

이스라엘은 2013년 일명 ‘포토샵 법’을 제정해 텔레비전 등 미디어 광고에서 지나치게 마른 모델이 주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려고 애쓰고 있다. 직업 모델이 패션쇼에 설 때마다 BMI 기록을 제출하도록 의무화한다. 모델 사진을 미디어 등에 공개할 때에는 수정·보정됐는지를 명시하도록 해 대중들이 실제와 다름을 인지하게 돕는다. 프랑스 역시 2015년 이런 법을 제정했는데 위반시 벌금과 징역형에 처한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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