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7 (일)

중국, 디지털 화폐 패권국 꿈꾸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2020년, '암호법' 꺼내든 중국 의도는

중국과 미국 간 통상 패권을 둘러싼 갈등은 지난해 연말이 되어 겨우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양국의 통상 갈등은 언제든지 다시 점화될 수 있는 상태이며, 이는 당분간 계속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의 최대교역국인 중국과 미국의 갈등의 지속은 우리의 미래 또한 순탄치 않음을 예고한다.

중미간 통상갈등이 휴전 상태에 돌입했지만,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 2020년 중미 간 패권 싸움은 다른 분야로 확대되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중국이 2020년 1월 1일부터 「암호법(密码法)」을 실시함에 따라 중미 간 갈등은 디지털 금융, 블록체인 기술 등과 같은 분야에서 치열한 싸움이 예상된다. 이는 또한 우리 IT 기업에게는 중국 시장에 대한 새로운 무역규제로 작용할 수 있어 이에 대한 주의가 요구된다.

「암호법」 제정으로 국가의 암호관리 강화

지난해 12월 30일 중국 CCTV <심층보도>(焦点访谈)에서는 2020년 1월 1일부터 실시되는 암호법에 대해 집중보도했다. 법률명도 생소한 암호법이 연말 저녁 피크타임에 보도되었다는 것은 이 법률이 가지는 위상이 어느 정도 인지 알 수 있다. 더욱이 그 형태가 행정법규도 아니고 규범성문건도 아닌 '법률'의 형태로 제정되었다는 것은 국가 디지털 정책과 산업에서 본 법의 중요성을 반증한다.

암호법은 2019년 10월 24일 제18차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시진핑(习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블록체인 기술과 산업의 혁신적 발전을 촉진할 것"을 강조한 후, 26일 제13차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의에서 통과됐다. 이는 암호법의 제정은 블록체인 기술 및 산업의 발전을 규율하는 기본적이고 중요한 법률이며, 중국 정부가 이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암호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암호'는 일반인이 쉽게 접하는 은행계좌나 인터넷의 개인계정에 진입하기 위해 입력하는 암호(password)의 개념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암호법 상의 암호(encryption)는 "정보를 특정한 변환방법을 이용하여 암호화하고, 보안인증을 하는 기술, 제품, 그리고 서비스"로 일종의 암호화 기술인 셈이다.

이러한 암호법은 △암호의 적용 및 관리 규제 △암호산업의 발전 촉진 △네트워크 및 정보 안전의 보장, 국가안전 및 사회 공공이익의 보호 △공민과 법인 그리고 기타 조직의 합법적 권익 보호가 주요 제정 목적이다.

그 목적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본 법은 디지털 사회의 기반인 정보와 네트워크의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에 따라, 암호기술은 국가의 엄격한 관리 및 통제를 기본원칙으로 한다. 암호법 상 암호는 핵심암호, 보통암호, 그리고 상용암호로 구분하여 관리된다. 핵심암호와 보통암호는 국가기밀과 관련된 것으로 암호법을 비롯하여 관련 법률, 법규, 그리고 규정에 근거하여 엄격한 관리(제7조)의 대상이다. 반면 상용암호에 대해서는 그 연구와 개발, 사용, 외국과의 기술 협력 등을 장려하고 있다.

상용암호 시장 개방을 통한 기술개발 촉진

암호법의 상용암호는 개인 및 기관의 네트워크 및 정보를 법률로 보호하고 있다.(제8조) 이에 따라 알리페이(支付宝)와 같은 금융거래에 있어 데이터 보안능력이 한층 강화되어, 종이화폐 없는 사회로의 발전을 더욱 촉진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뿐만 아니라 상용암호는 금융, 통신, 세무, 사회보험, 교통, 위생건강, 에너지, 전자정부 등 국민경제발전과 사회생활에 직접적으로 활용된다. 상용암호 발전의 촉진은 결국 중국이 안정적으로 디지털 사회로 발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특히 암호법의 제정으로 상용암호 시장의 개방이 더욱 가속화 될 전망이다. 특별관리 대상을 제외하고는 중국의 상용암호 시장의 진입문턱을 대폭 낮췄다. 대신 특별관리 대상은 목록을 따로 만들어 관련 책임기관의 검사와 인증을 거치도록 규정했다. 특별관리 대상 암호제품은 "네트워크 관련 설비 및 네트워크 안전 전용제품" 등이 포함된다.

특별관리 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상용암호제품은 별도의 검사 및 허가를 요하지 않기 때문에(제28조) 일반 소비 암호제품의 판매와 이용이 보다 용이해 졌다. 다만 암호제품에 대한 강제성 인증 규정은 없어졌지만, 자발적 인증을 권고(제25조)하고 있어, 이에 주의가 필요하다. 권고성 규정은 특정한 상황에서 중국 정부에 의해 정치적 보복조치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상용암호제품의 수입 및 사용에 대해서도 한결 쉬워졌다. 암호법 실시 전에는 국외나 경외(境外)에서 생산된 상용암호제품을 국내 이용자가 사용하고자 할 경우, 반드시 수입허가를 얻어야만 했다. 또한 수입된 암호제품은 중국의 외자기업이나 경외 기관 및 개인에게만 제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1월 1일부터 수입 암호제품이 단순 소비제품일 경우, 수입 상용암호제품의 사용자에 대한 제한은 없어졌다. 또한 외국기업의 투자와 기술협력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중국 중심의 디지털화폐 시장 구축 본격화

암호법 실시는 중국의 디지털화폐 시장 선점과 통화 패권 논쟁으로 확대되는 분위기이다.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디지털화폐를 발행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이에 매우 적극적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바이다. 2014년부터 이미 인민은행은 디지털화폐 발행에 관한 연구단체를 설립하고 기술적 법률적 쟁점에 대한 검토를 시작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중국의 디지털화폐 발행은 준비가 이미 거의 끝난 상태며, 그 발생 시기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인민은행이 디지털화폐를 발행하면, 중앙은행으로서는 최초로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암호법 실시를 근거로 중국이 세계 디지털화폐 시장을 선점할 것이라는 조심스런 예상이 나오고 있다.

암호법은 페이스북이 개발한 민간 디지털화폐인 리브라(libra)와 같이 금융리스크가 비교적 높다고 판단되는 외국의 디지털화폐나 암호화폐를 '국가 및 공민의 안전'이라는 이유로 엄격하게 통제 관리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이 될 수 있다. 경쟁 디지털화폐의 진입을 차단함으로써 중국 자체 디지털화폐 생태계의 성장이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인 셈이다.

한편, 중국이 발행을 계획하고 있는 디지털화폐는 비트코인(bitcoin)과 같은 암호화폐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리브라와 같이 현행 통화시스템을 그대로 적용한 것으로 인민은행이라는 중앙은행의 통제를 받으며, 위안화라는 법정화폐를 기반으로 1:1 교환이 가능하다. 단지, 거래의 수단이 실물화폐가 아닌 디지털화폐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중국의 디지털화폐 발행의 영향에 대해 매우 제한적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중국 정부도 암호기술의 연구 및 발전, 관련 산업의 진흥에 보다 초점을 두며, 달러 패권에 대한 도전이라는 인상을 남기지 않으려 조심하는 모양새다.

중국의 의도가 어떤지는 조금 더 지켜 볼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중국은 이미 디지털 화폐가 확산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과 중앙정부의 강력한 통화 통제권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종이화폐를 디지털화폐로 전환하는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암호법 실시 이후, 제정될 관련 정책성 문건, 규범, 표준 등을 활용하여 자국의 블록체인 기술 능력을 제고하고, 이를 일대일로 등 정책과 연계하여 강력한 디지털 위안화 체계를 구축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중국이 세계 통화패권 장악을 위한 '도광양회'(韬光养晦)를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기자 : 윤성혜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연구교수

- Copyrights ©PRESSian.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