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까지 무역협정 포함 협상 진행…규제일치·서비스 등 쟁점 수두룩
전환기간 연장 놓고도 이견…합의 불발시 사실상 '노 딜' 브렉시트 우려
영국 브렉시트 (PG) |
(런던·브뤼셀=연합뉴스) 박대한 김정은 특파원 = 오는 31일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더라도 브렉시트(Brexit) 서사극의 1막이 막을 내리는 데 불과하다.
지금 상황은 양측이 영국의 EU 탈퇴조건, 즉 이혼조건을 마무리 짓고 서류에 도장을 찍은 상태에 비유할 수 있다.
이혼 후에도 옆집에 살게 되는 만큼 이웃으로서 어떻게 새로운 관계를 맺을지에 대해서는 다시 논의해야 한다.
문제는 시간이 얼마 없다는 점이다.
양측은 연말까지인 브렉시트 전환(이행)기간 내에 미래관계를 매듭지어야 한다.
그러나 시한 내 무역협정을 포함한 방대한 미래관계 협상 합의에 도달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만큼 브렉시트 이후에도 불확실성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 英, 규제일치 수용 안 하면 EU 단일시장 접근권 제한할 듯
양측은 EU 탈퇴협정에서 브렉시트의 원활한 이행을 위해 오는 2020년 말까지 전환기간을 설정했다.
전환기간에 영국은 현재처럼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 잔류에 따른 혜택을 계속 누릴 수 있다. 주민 이동도 현재처럼 자유롭게 유지된다.
영국은 EU 규정을 따라야 하며, 분담금 역시 내야 한다.
갑작스러운 EU 탈퇴에 따른 충격이 사회경제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완충장치를 둔 셈이다.
이같은 전환기간에 양측은 기존에 합의한 '미래관계 정치선언'을 기반으로 무역협정을 포함해 안보, 외교정책, 교통 등을 망라하는 미래관계 협상을 진행하게 된다.
일단 양측 모두의 이익에 부합하는 만큼 안보 협력과 교통 연계 등의 분야에서는 합의가 쉽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간격이 예상되는 분야는 바로 규제 및 기준이다.
EU 시장 내에서 제품을 팔기 위해서는 EU 규제를 따라야 한다. 여기에는 장난감에서 자동차 엔진, 화학약품, 식품에 이르기까지 수천개의 규제기준이 있을 수 있다.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에 EU 회원국이 아닌 만큼 그동안 지켜온 EU 규제를 따르지 않으면 단일시장 접근권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사지드 자비드 영국 재무장관은 이미 한 언론 인터뷰에서 "영국은 단순히 EU 규칙의 수용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규제 일치는 없을 것"이라는 단호한 입장을 나타냈다.
유럽과 가장 가까운 영국의 도버항 [EPA=연합뉴스] |
비단 상품 규제만이 아니다.
EU는 영국이 브렉시트 이후 환경 및 노동, 조세, 사회정책, 정부보조금 등과 관련한 분야에서 규제 완화를 추진해 공정경쟁환경(level playing field)을 저해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EU는 공정경쟁환경에 저촉할수록 영국의 EU 시장 접근 역시 제한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영국은 기존 EU 회원국일 때와 마찬가지로 EU 규칙과 기준을 계속 따를 경우 미국 등 다른 나라와의 무역협정에 걸림돌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서비스 분야도 양측간 입장이 엇갈리는 지점이다.
통상 무역협정은 전통적으로 상품 교역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금융을 포함해 서비스 분야에 강점을 가진 영국은 향후 무역협정에서 EU 서비스 시장에 대한 접근권을 강력하게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EU는 영국이 역내 자유로운 이동 등 EU 규정을 따르지 않는 한 EU 서비스 시장에 예전처럼 자유롭게 접근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농업과 어업도 마찬가지다.
EU는 회원국 어선들이 영국 수역에 제한 없이 접근하기를 원하지만, 영국은 브렉시트를 계기로 자신들의 어획량을 대폭 늘린다는 계획이다.
프랑스 등 농업에 강점을 가진 EU 회원국들은 브렉시트 이후에도 영국 시장에 대한 제한 없는 접근을 요구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영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대로 영국이 미국과 무역협정을 먼저 체결하면서 EU 내에서는 금지된 미국의 식품안전 기준을 받아들인다면 향후 영국 농산물의 EU 수출 길이 막힐 수도 있다.
◇ EU '전환기환 연장' 요구에 영국 아예 법으로 금지
문제는 협상 시한이다.
미래관계 협상은 지난 3년여간 진통을 거듭한 영국의 탈퇴 조건에 대한 협상보다 더 복잡하고 방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초 영국이 예정대로 지난해 3월 29일 EU를 탈퇴했다면 전환기간은 약 1년 8개월에 걸쳐 적용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영국 하원이 합의안을 잇달아 부결하면서 브렉시트 예정일은 세 차례 연장돼 오는 31일로 정해졌다
과거 EU가 캐나다 등과 벌인 무역 협상에 수년이 걸린 점을 감안하면 11개월로 줄어든 전환기간에 영국과 EU가 여러 분야에 걸친 미래관계 합의에 도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에 따라 EU 측은 2022년까지 전환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에 열려있지만, 영국은 '전환기간 연장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아예 전환기간 연장을 불허하는 내용을 EU 탈퇴협정법에 넣어 통과시켰다.
존슨(왼쪽) 영국 총리와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신화=연합뉴스] |
EU 집행위원회 필 호건 무역 담당 집행위원은 최근 이같은 영국 정부의 입장에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게임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끄는 능력, 벼랑 끝 전술을 펼치는 능력은 이번 경우에는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사실상 영국 정부와 존슨 총리에 경고를 보냈다.
문제는 올해 말까지 협상이 타결되지 않는 경우다.
전환기간이 끝날 때까지 미래관계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양측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적용받게 된다.
이미 브렉시트를 단행한 상황인 만큼 엄밀히 말하면 영국이 아무런 협정을 맺지 못하고 EU를 탈퇴하는 '노 딜'(no deal) 브렉시트는 아니지만 사실상 '노 딜' 브렉시트와 다름없는 상황이 펼쳐지는 셈이다.
최근 미셸 바르니에 EU 브렉시트 협상 수석대표는 최선을 다하겠지만 올해 말 '노 딜'이 발생해 관세 등 무역 장벽이 발생하는 상황에도 계속해서 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EU는 협상에 필요한 권한 위임 등 절차를 거쳐 2월 말이나 3월 초께 협상을 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브렉시트는 일단락됐지만 또다른 불확실성이 빈자리를 채우면서 영국과 EU는 계속해서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하는 고난의 시기를 보낼 것으로 전망된다.
pdhis9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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