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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후후월드] ‘北 흡혈귀’가 트럼프 물었다···트윗해고 볼턴의 달콤한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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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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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탄핵 국면에서 새 핵심 플레이어로 부상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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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외교안보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출간도 되지 않은 책 한 권이 미국 워싱턴을 뒤흔들고 있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그 일이 일어난 방(The Room Where It Happened)』이다. 3월 출간 예정인 이 책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의 방아쇠를 당긴 우크라이나 사태의 진실을 지근 거리에서 목도했던 인물이 볼턴이기 때문이다.

볼턴에겐 수식어가 여럿 붙는다. 미국에선 ‘외교안보 매파’ ‘네오콘(신 보수파)’으로 통한다. 볼턴과 오랜 앙숙인 북한의 표현을 빌자면 ‘인간쓰레기’ ‘흡혈귀’ 등이 있다. 북한의 정권교체는 볼턴의 오랜 지론이다. 핵·미사일 도발을 계속하면 선제공격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파다. 워싱턴에서 그를 오래 지켜본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중앙일보에 “북한의 정권교체는 볼턴에겐 종교적 신념”이라고 말했다.

볼턴은 한 번 마음 먹은 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낸다. 그의 과거 저서 『항복은 옵션이 아니다(Surrender Is Not an Option)』 제목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강경파인만큼 적도 많다. 볼턴 반대파들은 그가 때론 스토킹을, 때론 압박을 넘어 협박도 불사한다고 말한다. 미국의 대표적 싸움닭인 셈.

그런 그가 트럼프와 맞짱을 뜰 준비를 마쳤다. 한번 물면 놓지 않는 볼턴의 등장에 트럼프도 긴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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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볼턴(오른쪽)이 지난해 백악관 국가 안보보좌관 시절 백악관에서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 정상회담 전 기자들과 대화 중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켜보고 있다. 표정이 탐탁치 않아보인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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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윗 해임 굴욕 겪은 볼턴, 탄핵 게임체인저가 되다



트럼프 탄핵 국면은 볼턴 전(前)과 볼턴 후(後)로 나뉜다. 그의 등장 전까지 트럼프 측은 여유가 넘쳤다.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이 탄핵 소추안을 가결시켜 상원으로 보내긴 했지만, 상원에선 공화당이 수적 우세이고, 탄핵은 불발탄이 될 거라는 게 정설이었다. 하지만 볼턴이라는 게임 체인저가 등장하면서 판이 바뀌었다. 상원이 그를 증인으로 소환하고, 그가 트럼프에 대해 치명적 증언을 한다면 상황은 바뀔 수 있다.

공화당의 내분은 이미 가시화했다. 공화당의 전 대선 주자였던 밋 롬니 상원의원은 27일(현지시간) “다른 (공화당) 상원의원들도 볼턴의 증언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합류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했고, 같은 당 수전 콜린스 상원의원도 “볼턴의 책 내용에 대한 보도는 그의 증언 필요성을 강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볼턴을 증인으로 소환하기 위해선 표결을 거쳐야 하는데, 현재 100석 중 53석을 가진 공화당에서 4명 이상 이탈하면 볼턴 증언은 현실화된다.

트럼프 측은 애가 탄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7일 수차례 “볼턴의 주장은 거짓이다”라고 트윗했고, 트럼프의 변호인 제이 세쿨로우는 28일 “(볼턴의 주장은) 근거 없는 의혹”이라고 주장했다. 총공세다.

정작 볼턴 본인은 현재 침묵을 지키고 있다. 전략적 침묵이다. 먼저 불을 지른 건 볼턴 자신이었다. 지난 6일 홈페이지와 트윗을 통해 “상원이 소환장을 발부한다면 증언할 준비가 돼 있다”고 폭탄 선언을 하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9월 그를 트윗으로 해고한 지 약 4개월 만이었다. 그로서는 달콤한 복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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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도 한때는 사이가 좋았다. 2018년 백악관 한 회의에서 악수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존 볼턴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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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의 영재 아들, 예일대 최우등 차지하다



볼턴은 개천에서 용 된 전형적 ‘흙수저’다. 1948년 미국 동부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소방관 아버지와 전업주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볼턴은 학업에 두각을 나타냈고, 10대 시절부터 장학금을 타가며 예일대에 입학했다. 70년 예일대 학부를 최우등(summa cum laude)으로 졸업한 뒤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그런 그에게 베트남전은 딜레마였다. 학생에게 주어진 입영 연기 권한으로 징집을 계속 미루다 70년 고향 메릴랜드주의 공군 예비군에 입대한다. 베트남으로 징집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뼛속까지 보수인 그로서는 국가를 위한 기본 책무인 국방 의무를 등한시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볼턴은 당시 예일대 동창회보에 “나는 동남아의 논밭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다”며 “베트남전쟁은 이미 진 전쟁이다”라고 썼다. 그러나 그는 2007년엔 『항복은 옵션이 아니다』에서 “되돌아보면 당시의 내 계산이 아주 자랑스럽지만은 않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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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방한한 존 볼턴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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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콘 볼턴, 부시 만나 날개를 달다



전쟁은 끝나고, 그는 74년 워싱턴의 한 로펌에서 일하다 국무부로 자리를 옮긴다. 이후 2001년 아들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국무부 차관에 임명되며 외교안보 분야에서 본격 활동을 시작한다. 군축과 국제안보 담당으로, 북한ㆍ이란ㆍ시리아를 옥죄는 게 그의 역할이었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ㆍ이란 등을 들어 ‘악의 축(axis of evil)’이라 명명한 데도 그가 핵심적 역할을 했다.

당시 콜린 파월 국무부 장관은 북한과 대화를 시도했으나 볼턴은 공공연히 어깃장을 놨다고 한다. 켄터키대 월터 클레멘스 연구원은 당시 상황을 다룬 논문 ‘북한과 세계: 인권, 군축과 협상의 전략’에서 “볼턴은 파월의 (대북 대화 시도를) 막으려 했고, 자주 성공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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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신문이 2018년 6월12일 열렸던 북미정상회담을 보도하며 게재한 사진.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이 눈엣가시로 여기는 볼턴 당시 국가안보보좌관과 악수하고 있다. [노동신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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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턴은 자신의 목표와 신념에 배치되는 사람은 가리지 않고 압박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브라질 외교관 호세 부스타니는 2002년 한 미국 매체와 인터뷰에서 “존 볼턴은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이라며 “나를 포함해 그에게 괴롭힘을 당한 외교관들이 여러 명이다”라고 주장했다. 부스타니가 당시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자 볼턴이 부스타니에게 전화를 걸어 ”24시간 안에 사임하지 않으면 복수하겠다”고 협박했다는 게 부스타니의 주장이다.

그런 볼턴이 새로운 목표물로 삼은 인물이 트럼프 대통령이다. 볼턴이 실제로 상원 증언대에 설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그러나 트럼프 탄핵 여부를 떠나 이미 볼턴은 트럼프 저격수로서의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이번 상원 증언 여부는 3월 회고록 출간을 앞둔 예고편에 불과하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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