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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정효식의 아하, 아메리카] "미국엔 중국 조공(朝貢) 문화엔 없는 동맹이란 DNA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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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코언 존스홉킨스 SAIS 학장

"미국 아니면 세계 이끌 나라 없어,

덜 지배적인 새 질서 균형 찾을 것"

"美 주류 백인→다문화로 전환기,

차기 누가 돼도 트럼프와 다를 것"

중앙일보

엘리엇 코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학장이 지난달 22일 "미국이 아니면 세계를 이끌 나라는 없다"며 "미국에는 중국의 조공 문화에는 없는 동맹이란 DNA가 있다"라고 말했다.[정효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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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미군 사령부에는 한국과 일본, 유럽 각국의 군인이 함께 일한다. 미국은 중국 조공(朝貢)문화엔 없는 동맹이란 DNA가 있다." 엘리엇 코언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학장은 "미국이 아니면 세계를 이끌 나라는 없다"고 단언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코언 학장은 지난달 22일 워싱턴 SAIS 학장실에서 중앙일보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를 진단하는 인터뷰에서 "세계 질서도 미국이 덜 지배적이지만 여전히 리더로서 역할을 하는 새로운 균형을 찾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냉전 이후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고 우려한 존 아이켄베리 프린스턴대 석좌교수와 달리 "미국의 리더로서 역할이 조금 줄어드는 한편 한국, 일본, 인도와 이스라엘 같은 신흥 강국의 역할은 늘어나는" 일종의 조정기로 보기 때문이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가 새로운 이념이나 외교 독트린이라기보다 "미국 사회의 구조적 변화에 대한 일련의 본능적 충동"이라고 했다. "미국 사회는 백인 주류가 비주류로 전락하고, 다문화·다인종 사회로 넘어가는 중대한 전환기에 있으며 트럼프는 일부 백인의 분노와 불안감을 대변한다"고 하면서다. 아래는 주요 인터뷰 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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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코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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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트럼프와 과거 아메리카 퍼스트 운동과 뭐가 다른가



A : "미국 우선주의는 원래 1·2차 세계대전 참전 반대 운동이었다. 존 F. 케네디, 제럴드 포드 대통령조차 대학 시절엔 지지자였다. 당시 강력한 반영(反英) 감정 때문이었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운동은 없어졌지만, 고립주의는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도 1952년 대선 공화당 경선에서 고립주의 대표 주자인 로버트 태프트에 가까스로 승리했다. 의회에는 여전히 세계에서 미국의 철수나 역할 축소를 주장하는 세력이 있지만, 주류가 아닐 뿐이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에겐 이런 역사 지식은 전혀 없다."

Q : 어쨌든 그가 21세기 아메리카 퍼스트의 전형이지 않나

A : "트럼프의 후임이 정상적 사람일지 모르겠지만, 누가 돼도 트럼프 같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아메리카 퍼스트는 이념이나 외교 독트린이 되기엔 포괄적이지도, 충분히 검토된 것도 아니다. 강력한 본능들의 집합일 뿐이다. 이런 충동은 미국 사회가 문화·인종·민족적인 중대한 전환기에 있기 때문에 나타났다. 일부 사람들은 변화를 매우 불안해하고 수용하기 힘들어하며, 트럼프는 그들의 공포와 불안감을 대변한다. 미국에는 언제나 인종차별과 심한 편견, 외국인에 대한 공포심이 있었지만 머지않아 다수가 소수로 바뀌는 진정한 분기점을 통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Q : 미국 스스로 세계에서 떠나고 있지 않은가

A : "세계 질서는 중국의 도래로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미국과 중국 경제의 디커플링(분리)이 시작됐고 심지어 인터넷조차 디커플링이 벌어지고 있다. 언젠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냉전 때와 같은 것이 미국의 국익에 기여한다는 점에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개방된 국제 무역과 안정적인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놀라운 동맹 시스템이다. 미국인 대부분은 개방된 세계 질서로부터 혜택을 본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미 대통령인 트럼프가 피해를 줄 수는 있지만, 행정부와 의회의 두터운 합의가 있기 때문에 미국이 철수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우리의 초점은 유럽에서 중국에 훨씬 집중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Q : 미국이 고립주의로 회귀하는 일은 없다는 뜻인가

A : "우선 미국이 세계를 이끌지 않으면 다른 어떤 나라도 그럴 능력이 없다. 유럽연합도 할 수 없고 중국·러시아도 다른 이유로 세계를 이끌 수 없다. 미국이 철수한다면 진공상태가 초래되고, 그러면 곳곳에서 충돌과 분열이 일어날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 미국이 아니면 세계는 더 나빠진다. 우리는 거대한 권위주의 권력인 중국의 부상과 영향력 확대라는 도전에 대응해야 하며, 기후변화와 같이 초국적 과제도 안고 있다. 소셜 미디어 여론조작 같은 자유 민주주의의 위기에도 우리는 맞서야 한다. 미국이 주도하지 않으면 세계는 혼돈으로 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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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코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학장이 지난달 22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저서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정효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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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앞으로 세계 질서는 어떻게 달라질 것으로 보나

A : "우린 2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통계학에 평균으로 회귀 개념이 있는 데 시간이 지나면서 편차가 줄고 평평해진다는 뜻이다. 다소 혼란스럽지만, 미국이 여전히 가장 중요한 나라로서 지도자 역할을 하는 일종의 새로운 균형(new equilibrium)을 찾아갈 것이다. 미국이 과거처럼 마음대로 하거나 지배적일 수 없겠지만 한국, 일본과 인도, 이스라엘이 대신 더 많은 역할을 하는 괜찮은 세계를 상상해볼 수 있다. 다만 여기엔 미국 지도자를 포함해 세계 지도자들의 더 많은 정치력이 필요할 것이다."

Q : 중국이 유일한 패권국이 될 가능성은

A : "성장률이나 힘의 크기에 압도돼 과대평가하기 쉽지만, 중국은 몇 가지 거대한 문제를 안고 있다. 그들은 14개국과 국경을 접하지만 대부분 나라와 관계가 나쁘다. 내부적으론 엄청난 인구와 환경 문제를 갖고 있고 국영기업 부채와 같은 경제적 문제들도 뒤늦게 드러나고 있다. 중국이 중화(中華) 왕조 시절 사방에 조공국을 거느리고 좋은 거래를 하던 식으로 세계를 이끌기는 어렵다. 그들은 매우 위계적인 지배 체제에 익숙하다. 반면 나는 미국 군사력과 동맹을 연구하면서 전 세계 미군 사령부를 방문해 때 한국과 일본, 유럽 각국의 많은 사람을 만났다. 미국의 DNA에는 중국의 DNA에 없는 것이 있다. 수평적 동맹이다."

Q : 중국이 패권국이 될 것이란 워싱턴의 공포는 과장된 건가.

A : "중국 스스로 그 점을 부각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이 자신들이 부상하고 점점 강력해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기대에 따라 행동하게 한다. 물론 조금은 기회가 있다. 미국은 오랫동안 중국의 군사적 부상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고 이제야 대응에 나섰다. 따라서 우리가 견제를 시작한 때부터 그들이 성장할 때까지 이 기간에 실제 가장 위험해질 가능성도 있다. 중국 경제 지난해 성장률은 6.1%로 떨어졌지만, 언젠가 세계 1위 경제국이 되고, 미국 같은 초강국에 올라설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Q : 중국이 그렇게 되지 못하도록 봉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A : "소련과 달리 중국과 경제적 연계가 너무 깊기 때문에 어렵고 또 유럽ㆍ아시아 국가들을 중국 상대로 단합할 수 있느냐는 문제도 있다. 중국이 엄청나게 막강한 제조업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상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중국이 소련처럼 세계 혁명 국가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도 다르다. 따라서 이건 다른 차원의 경쟁이다. 화웨이 5G 네트워크 장비처럼 일부 영역을 안보적 이유로 제외할 수는 있겠지만, 중국과 다른 민주주의 국가와 무역을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Q : 트럼프는 동맹에도 거래적으로 접근한다



A : "그는 모두와 무역 전쟁을 하고 싶어한다. 정말 별종(freak)이다. 그래서 우리 시스템이 삐걱거리고 유감스럽지만 이게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 동맹엔 정치 지도자 간 개인적 관계란 요소도 있지만 동시에 아주 깊은 제도적 유대관계가 있다. 예를 들어 미군과 한국군 간의 유대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Q : 방위비 분담금이 적다고 철수를 명령할 수는

A : "트럼프가 동맹 관계를 심각하게 훼손한 건 인정하지만, 이 관계는 특정인, 특정 시점을 뛰어넘는 다른 많은 요소가 있다. 의회가 2020년 국방수권법에 주한미군 감축 금지를 명기한 게 완벽한 사례다. 미국은 복잡한 시스템을 갖고 있고 의회도 발언권을 갖고 있다. 방위비 협상에서 엄포를 놓는 것은 그의 협상 비결이고 연극의 일부다."

Q : 북한ㆍ이란에 대한 최대한 압박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A : "내 관점으로는 분명히 제재는 강력한 무기이지만 지나치게 남용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 보면 북한은 물론 이란과도 성과를 내지 못했다. 최대한 압박 때문에 일부 우리 동맹국과 소원해지는 대가도 치르고 있다. 동맹은 트럼프보다 오래갈 것이지만 그는 전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Q : 김정은이 ICBM을 발사한다면 군사 충돌 가능성은

A : "그 가능성은 언제나 있었고 북한이 ICBM을 발사한다면 트럼프가 군사옵션을 쓰는 건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 어떤 종류의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고, 대통령이 얼마나 많이 위험을 감수할 의향이 있는지 등 많은 것에 달려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전쟁을 피하려는 무수한 이유가 있는 상황에서 북한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기 매우 힘들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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